고통·상처의 인생조차 그녀에겐 예술의 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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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사마 야요이 - 강박과 사랑 그리고 예술 | 엘리사 마첼라리 지음, 김희진 옮김 | 미메시스

“나는 그렇게 태어났고, 그렇게 살아왔다. 앞으로도 나는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결연한 다짐과 자기 확신. 자신이 그리고, 지우고, 반복하며 새로운 ‘예술적 언어’로서 창조한 ‘원’들을 닮았다. 일본 현대 미술의 거장 쿠사마 야요이. 빨강·검정·하양·노랑 등 강렬한 색과 그 위를 수 놓은 강박적이고 단단한 ‘점’으로 연상되는 작품들. 최근 나오시마 섬에 설치된 대표작 ‘호박’이 태풍에 손상돼 국제 뉴스에서도 연일 그의 이름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삶은 그의 예술에 대한 격렬한 찬사만큼이나 시기와 질투, 그리고 불온한 소문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미국에서 활동하던 그가 신경쇠약으로 일본으로 돌아가 지낸 약 20년의 세월은 마치 블랙홀처럼 까맣다. 모두가 그를 잊었던 그 시기를 포함해, 정신적 장애를 일종의 자기 치료로 변모시키며 예술에 대한 열정을 끝없이 꽃피운 쿠사마의 일대기를 그래픽 노블로 들여다보는 건, 쿠사마의 작품을 마주하는 것처럼 생생하면서도 몽환적인 체험이다. 책은 그가 중요시한 물방울무늬로 가득하다. 유연하고, 무한한 에너지를 지닌 그의 삶과 작품을 사각 프레임 안에 가두는 건 그가 제일 싫어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빨간 물방울무늬 옷을 입은 쿠사마가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책 속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다. 쿠사마가 창조한 물방울이 무한대로 이어지는 세계 어느 한 귀퉁이에 존재하는 소우주 말이다. 고통으로 점철된 인생을, 상처 가득한 마음을, 의지와 열정·재능만으로, 그러니까 오로지 ‘자신’으로 극복해내는 삶이 오롯이 담겼다. 매혹당할 것이고, 위로받을 것이다. 136쪽, 1만68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