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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파워인터뷰 게재 일자 : 2021년 10월 06일(水)
김대진 “자기만의 개성 찾아주는 게 예술교육… 콩쿠르에 목맬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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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30일,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은 김대진 총장. 시간에 쫓기다 보니 피아노 쪽을 쳐다보지 않기 시작했다는 그는 “오늘은 피아노 연습을 해야겠다”고 했다. 그날 밤늦게까지 총장실에선 피아노 연주 소리가 흘러나왔다는 후문이다. 김낙중 기자

■ 파워인터뷰 - 김대진 한예종 신임총장

음악·연극 등 6개 원 협업해
인접예술 체험통한‘융합’시도

젊은 예술가가 인정받는 통로
콩쿠르밖에 없는 게 안타까워
연주자로 계속 활동할 수 있게
매니지먼트 시스템 등 구축을

많은 제자들의 ‘우승’ 비법?
개성 발현과 무의식 컨트롤
팬데믹으로 콩쿠르 취소되자
부담덜어 실력 향상된 학생도


인터뷰 = 최현미 문화부장

피아니스트 김대진(59)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총장은 음악계의 ‘멀티맨’이다. 8세 때 피아노를 시작해 11세에 국립교향악단과 협연하고 23세에 클리블랜드 콩쿠르에서 우승해 일찌감치 정상급 연주자 반열에 올랐다. 수원시립교향악단을 일정 수준에 올려놓은 지휘자이고 클래식 대중화를 향한 음악 해설가이며, 무엇보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김선욱, 문지영과 최근 부조니 콩쿠르 우승자 박재홍 등을 키워낸, 존경받는 선생이다.

음악이라는 세계에서 영역의 경계를 넘어 정체성을 확장해온 그가 내년 한예종 개교 30주년을 앞두고 총장직을 맡았다. 첫 직선제 총장이다. 한예종 개교 2년 뒤인 1994년, 음악원 교수로 합류해 연습실 복도에 비가 새던 시절, 차별되는 커리큘럼을 짜기 위해 몇 날 며칠 밤을 새웠던 날들 이후의 모든 하루하루가 추억이고 역사라는 그가 30년 성과를 딛고 한예종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취임 한 달여 만인 지난달 30일, 스스로 ‘감독’이 아닌, ‘플레이어’라는 그를 서울 성북구 석관동 한예종 총장실에서 만났다. 김 총장과의 인터뷰는 ‘운명’이라는 단어에서 시작해 소명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됐다. “운명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데, 운명 같아요.”

―어떤 운명인가요?

“모든 일이 (지난해 세상을 떠난) 이강숙 초대 총장님 추도사를 쓰다 시작됐어요. 쓰다 보니 옛날을 돌아보게 되고 이 초대 총장님의 뜻이 계승돼야겠다는 생각, 이를 발판으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적어도 그런 노력을 해봐야겠다는…. 저도 교수로서의 마지막 시간을 위해 준비한 계획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저에게 ‘계시’를 주시는 것 같았어요.”

맨해튼 음대에서 가르치면서도 늘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었던 그가 서울대 공채에 떨어져 자신의 ‘꿈’을 접으려 했을 때, 그를 잡은 사람이 이 초대 총장이었다. 영원한 작별일 것 같아 찾아간 자리에서 이 초대 총장은 “우리 학교에 오라” “지금 당장 결정하라”고 했고, 그는 마력에 끌리듯 “네”라고 답했다. 가족과 주변을 ‘멘붕’에 빠뜨린 이 결정은 1994년 6월 미국행 비행기가 뜨기 하루 전날이었고, 김 총장은 그해 9월 한예종 교수로 돌아왔다. 한예종과의 시작과 교수 생활 마무리가 “예술학교는 직업이 아니라 사명”이라고 했던 이 초대 총장과 이어졌으니 ‘운명’ 같다는 것이다.

―‘제대로 예술하는 학교’, 제2의 도약을 내거셨는데요.

“내년이 개교 30년이에요. 30년이면 정말 얼마 안 된 학교인데 엄청난 성과를 거뒀어요. 저희가 한국예술을 선도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초대 총장님께서 유학 안 가도 콩쿠르 1등 하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저도 믿지 못했는데 이뤄졌어요. 하지만 예술이나 교육의 목표는 사회와 가치관의 변화 속에 바뀌죠. 불과 10년 전만 해도 예술교육은 ‘모범’을 추구했지만 이젠 더 이상 모범적인 것이 필요하지 않아요. 봉준호 감독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고 말했을 때 굉장히 마음에 와 닿았어요. 이젠 나만이 할 수 있는 것, 개성, 아이덴티티, 그런 것들이 필요해요. 그럼 학교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자 숙제예요. 누가 한 번에 답을 줄 순 없으니 일단 포럼을 만들어 교수님들과 경험을 바탕으로 의견을 나누려 합니다.”

―개성, 아이덴티티를 위해 구체적으로 생각하신 게 있으신지요.

“요즘 ‘융합’이라는 단어를 많이 떠올려요. 융합은 일단 ‘자기 혼자’하는 거예요. 자신이 저축해둔 체험, 감정, 느낌이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거죠. 예술적 심화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가장 좋은 방법은 인접 예술을 체험하는 것인데 6개 원(음악, 연극, 영상, 무용, 미술, 전통예술원)이 있는 우리 학교만큼 이 시스템이 잘 돼 있는 곳이 없어요. 6개 원과 협업, 즉 컬래버레이션을 하려고 해요. 융합 예술의 새로운 장르를 만들 수 있어요.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엄청난 깊이의 체험을 할 거예요. 이렇게 경험, 노하우, 시행착오를 쌓아 프로그램을 정례화하고 브랜드화해 지방자치단체나 세계 다른 학교와 함께 하려고 해요. 어떤 콘텐츠냐가 문제인데, 분명한 건 100% 고전으로 하려고 해요.”

김 총장은 현안인 캠퍼스 이전 논의도 6개 원이 협업하려면 통합 캠퍼스가 필요하다는 예술적인 이유에 대한 이해와 공감에서 출발하길 바랐다. 문화체육관광부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한예종 구성원 1700명 설문조사 결과, 통합캠퍼스 전환 의견이 거점형 캠퍼스보다 높았고, 이전 위치는 서울 내가 80.3%로 압도적이었다.

―최근 제자 박재홍의 부조니 콩쿠르 우승이 가장 행복한 기억이었다면서도, 이제 콩쿠르에 목매지 말자고 하시는데요.

“스포츠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완성됐다고 할 수 있지만 예술은 아니잖아요. 많은 학생을 콩쿠르에 보내고, 입상자를 많이 냈지만 통로가 왜 이것밖에 없는지 안타까워요. 상을 타는 게 예술의 본질은 아니잖아요. 젊은 예술가들이 존재를 증명하고 자기 예술을 인정받을 통로가 콩쿠르밖에 없어요. 공연예술계 구조는 제가 젊었을 때와 달라진 게 없어요. 굉장히 개성적인 젊은 세대의 수준에 현재의 예술계 구조가 맞지 않아요. 아이들은 너무 잘하는데 어른들이 잘못하고 있는 거죠. 뛰어난 인재를 배출하는 것과 함께 예술의 구조, 시스템을 만드는 노력도 하고 싶어요.”

▲  유학을 안 가도 콩쿠르에서 1등 하는 학교를 넘어 외국 학생들이 유학 오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김대진 총장은 정부에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느냐는 질문에 “일단 저희 학교 공연에 와서 같이 듣고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낙중 기자

“‘음악영재 강국’ 韓, 세계 무대 기여·참여 늘려 ‘클래식 선진국’ 돼야”

유럽서 韓연주자 최고수준 입증
진정한 강국으로 역할 고민해야

초5때 첫 협연… 즐거웠던 기억
일종의 사명감, 천직이란 느낌도
슬럼프? 어려움 당연하다 여겨

카라얀은 강한 카리스마로 성공
이젠 먼저 다가가는 리더십 필요
난 곳곳 누비는 플레이어형 리더



―구체적으로 어떤 구조인가요.

“예를 들어, 전문연주자가 있죠. 콩쿠르에서 배출된 학생들, 그 이상의 실력을 가진 아이들이 전문연주자로 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해요. 기획사 문제도 있어요. 30년 전에는 콩쿠르에서 1등 하면 세계적인 기획사와 자동 계약됐지만 이젠 그렇지 않아요. 콩쿠르도 많고, 영재도 너무 많아요. 그래서 기획사에 들어가기 위해 또 다른 노력을 해야 돼요. 우리도 국제 경쟁력을 갖춘 예술 매니지먼트가 나와서 해외 매니지먼트와 교류하고 아티스트도 상호교환해야 해요. 동남아권만 봐도 클래식 열풍이 부는 데가 많거든요. 충분히 가능해요. 개인은 이윤을 추구할 테니, 국가기관에서 공적 마인드로 접근하면 좋겠어요.”

김 총장은 누군가는 왜 학교가 졸업생까지 책임져야 하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순 있지만, 예술적 완성에 들어가기까지 사회적 시스템과 구조가 만들어져야 예술 교육도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클래식 강국인가요.

“정확하게 영재 강국이죠. 클래식 강국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단계예요. 유럽에선 한국 연주자들의 수준이 최고라는 인식이 퍼져 있어요. 독일에서 교수로 있는 친구가 ‘너희가 음악 선진국인 거 모르는 사람은 너희밖에 없어’라고 한 적이 있어요. 선진국 역할을 하라는 얘기예요. 외국 콩쿠르에 심사하러 가면 ‘너희 아이들 너무 잘 친다’고 칭찬하고는 ‘그런데 너희 나라에 산이 있니? 우리는 피아노 잘 친다는 것밖에 몰라’라고 해요. 비꼬는 얘기예요. 요점은 교류가 없다는 거예요. 세계 음악의 변방이던 시절엔 콩쿠르에서 입상해 한국의 음악 수준이 높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지만 이젠 그런 시기는 지났어요. 클래식 강국으로 세계 음악에 어떻게 기여하고 참여할지 고민해야 해요.”

김 총장은 같은 맥락에서 한예종도 국립학교로서 사회와 더불어 살아야 한다며, 연주하는 총장으로서 문화 소외 지역에서의 연주회 등 주기적인 예술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싶다고 했다.

―연주자, 지휘자, 해설자 등 여러 역할 중 하나만 고르라면 가르치는 일이라고 하셨어요. 즐거우신가요.

“즐거움을 넘어 그냥 제가 하는 일, 해야 되는 일이자 이젠 존재 이유, 그 정도까지 갔어요.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학생들이 스스로 깨달아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거죠.”

―콩쿠르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두셨어요. 특별한 비법이 있나요.

“두 가지 측면이 있어요. 하나는 개성을 찾아주는 일이에요. 개성은 언제 만들어지는지 모르게 만들어져요. 차츰 발현된다기보다 어느 순간에 한꺼번에 나오는 것 같아요. 시간이 필요해요. 김선욱, 손열음, 박재홍 모두 어려서부터 가르쳤어요. 조바심내지 말고 학생과 선생 모두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해요. 또 하나는 무대라는 무의식의 세계를 컨트롤하는 거예요. 연습실의 세계는 의식의 세계이고, 무대는 자기도 모르게 발현되는 무의식의 세계예요. 무대에서 급해지는 학생들은 평소 식사할 때, 걸을 때도 빨라요. 모든 것이 연결돼 있어요. 그래서 학생들 연주회엔 가급적 가요. 가서 보면 왜 저러지 하고 놀랄 때도 있어요. 선생은 학생들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의 세계를 파악해 학생들이 스스로 보게 해야 해요. 이 역시 시간이 필요해요.”

―그렇다면 배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선생에 대한 믿음이죠. 중요하고 어려워요. 제가 학생에게 어떤 요구를 할 땐 깨닫게 해주려는 것이거든요. 어떤 학생은 요구대로 해오고, 어떤 학생은 자기방식대로 만들어 와요.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인데 신뢰가 없으면 과정을 배우지 못해요. 돌아가신 줄리아드 음대 선생님(마틴 캐닌)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제가 다른 건 못해도 선생님에 대한 믿음은 제일 높았을 거예요.”

―피아니스트 김선욱 휴대전화에 ‘악마쌤’으로 저장된 것이 알려지면서 ‘악마쌤’이 되셨어요. 지금도 악마쌤이신가요?

“많이 바뀌었어요. 반성에서 시작됐어요. 10년 전쯤 리즈 콩쿠르 심사를 갔는데, 그날 기억이 아직 또렷해요. 우연히 오전에는 한국 남자애들 4명, 오후엔 유럽 아이들 4명이었어요. 유럽 아이들이 기능적으로 떨어져서 ‘아휴’하고 듣는데 조금씩 빨려드는 거예요. 4명이 달라도 너무 다르고 심지어 즐겨요. ‘저런 스타일, 저런 해석을 어떻게 하지’ ‘배운 것 같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진짜 열심히 듣게 됐어요. 듣다 보니 저는 물론, 다른 심사위원들도 즐기고 있어요. 그래서 아침 장면을 생각해봤더니 너무 똑같은 거예요. 머리 모양과 위아래 까만 옷 똑같아요. 머리는 내리고, 얼굴은 잘 안 보이고, 긴장하고, 도전적이고…. 번뜩 무언가 뒤통수를 치고 갔어요. 이후로 반성하기 시작했지요.”

그러고 나니 귀국 직후 만났던 한예종 영재교육원 꼬마들이 생각났다고 했다. 왜 저렇게 이상하게 칠까 해서 나무 전기톱으로 조경하듯 쫙 잘라 놨는데, 돌아보니 엄청난 개성들이었다는 것이다. 자책이 시작됐고, 다르게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많이 달라지셨어요?

“잘 모르겠어요. 벽에 부딪히고 나니 의문이 점점 커져요. 이렇게 가르치는 게 맞나, 잘하고 있나, 진짜 선생님이 살아 계시면 좀 물어보고 싶어요.”

―지금도 콩쿠르에 나가서 상 받는 학생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 학생들에겐 콩쿠르가 목표가 될 수 없다고, 과정이고 수단이라고 이야기해요. 음악 자체에 가치관을 높게 두라고 해요. 사실 뛰어난 학생들을 가르칠 땐 굉장한 부담감을 느껴요. 잘하는 학생들은 그만큼 빨리 바뀐다는 건데, 혹시 방향을 잘못 제시해 잘못되는 건 아닌지 두려움이 크죠. 그런 부담에서 벗어나 학생들을 가르치면 저도 즐겁고 학생들과도 잘 지내요.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느끼며 그 즐거움을 이야기해요. 그러면 학생들 스스로도 조금씩 바뀌어 가는 걸 깨닫고 즐거워해요. 이게 음악 교육의 중요한 본질이 아닐까 해요. 실제로 감염병 팬데믹 때문에 콩쿠르가 취소되면서, 아이들이 더 행복해하고, 실력이 늘기도 했어요.”

―팬데믹의 예상치 못한 결과인가요.

“일반적인 생각과는 좀 다르죠. 팬데믹으로 콩쿠르가 줄어들면서 극명하게 갈라졌어요. 동기를 상실해 기능을 전혀 못 하는 아이들이 있고, 오히려 행복해지고 갑자기 실력이 느는 아이들도 있어요. 이제야 마음 놓고, 연습하고 공부하겠다는 아이들. 자신을 찾을 여유, 여백이 생겼어요. 어려운 시기였지만 굉장히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가끔 ‘대한민국 선생님들이 협정을 맺고 1년 동안 학생들을 콩쿠르 내보내지 말고 어떻게 변하는지 보면 어떨까’하는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실제로 (총장직에 나오기 전) 교수로 재직하는 나머지 6∼7년 동안 콩쿠르 같은 현실적인 목표 없이, 모두 내려놓고 진짜 학생과 음악만 생각하며 즐겁게 가르쳐 보려 했어요. 그랬으면 어땠을까, 그건 좀 아쉬워요.”

―피아노 앞에 앉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하셨는데요.

“3년간 해온 창원시향 지휘도 마무리했고, 연주회도 취소했어요. 앞으로 학교와 관계 있는 무대에만 서려고 해요. 이 직전에 딸(바이올리니스트 김화라)과 연주를 몇 번 했는데 무척 행복했어요. 연주 끝나고 행복이라는 단어가 탁 튀어나오는 적이 거의 없었는데, 굉장히 좋더라고요. (당분간) 이런 무대를 안 한다는 그런 생각 때문인지….”

―8세 때부터 지금까지 50여 년의 시간 동안, 피아노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으셨나요.

“5학년 때 겁도 없이 협연했는데 연주 끝나고 무대 뒤로 오면서 ‘이거 나 너무 재밌어’라고 했다고 해요. 싫고 힘든 기억은 거의 없고, 재밌고 즐거웠던 기억은 어렴풋이 있어요. 그동안 연습은 고통스러웠지만 연습도 연주도 그냥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이 정도 어렵지 않으면 이상한 거 아닌가 했어요. 그래서 피아노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어요. 저에게 연주는 행복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사명감 같아요. 무엇을 위한 사명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천직 같은 그런 느낌이에요.”

―슬럼프는 없으셨어요?

“슬럼프도 대하기 나름이에요. 연주 한두 번 못했다고 슬럼프에 빠진다면 한 달에 몇 번은 왔을 거예요. 콩쿠르도 정말 많이 떨어졌는데 그냥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누구처럼 너무 좌절해 6개월간 피아노를 떠났고, 다시 돌아왔을 때 희열을 느꼈다 같은, 그런 멋진 인생 스토리는 없어요. 사실 저는 플레이어예요. 직접 뛰어들어 헤쳐나가고, 뭔가 이뤄가는 과정에서 굉장한 쾌감을 느껴요.”

―총장직도 플레이어인가요.

“(총장직이) 감독이라고 할 수 있지만 플레이어예요. 오케스트라를 보면 시대상이 보여요. 카라얀 시대, 그는 얼마나 제왕처럼 군림했어요? 강한 카리스마로 무조건 따르라고 했어요. 카라얀이 이상했던 건가요? 그땐 그런 것이 요구되던 사회였어요. 하지만 전임 사이먼 래틀은 운동화에 청바지 입고, 쉬는 시간에 단원들과 커피 마시며 놀았어요. 이젠 그런 리더십이 필요해요.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예요. 스스럼없이 다가가 얘기하고, 대화를 청하고 소통하는…. 손흥민같이 그라운드를 누비는 플레이어가 되려고 해요.”

―연주는 사명이고, 가르치는 건 존재 이유, 한국음악계를 위한 지휘 그리고 예술공연의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까지. ‘소명’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어떤 음악가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옛날에 누군가가 ‘너는 너한테 부여된 사명감을 갖고 왜 그렇게 어렵게 하냐’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늘 사명감 같은 걸 갖고 있어요. 남이 아닌 제가 부여한 자발적 사명감.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어요. 최선을 다한 자의 당당함, 그런 건 있어요. 돌아보면 연주하고, 가르치고 했지만 한예종 교수로 연주했고, 한예종 교수로 지도했어요. 저는 항상 제가 학교를 대표한다고 생각하고 활동해왔어요. 영원한 ‘예종맨’. 그렇게 기억에 남는다면 참 멋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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