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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게재 일자 : 2021년 10월 08일(金)
메밀꽃 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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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은 달밤의 메밀밭을 이토록 숨넘어갈 정도로 아름답게 묘사했다. 땅이 박해도, 물이 귀해도 잘 자라기에 구황작물로 사랑을 받아온 메밀이다. 평양냉면이나 전병의 재료로서 사랑을 받아온 메밀이다. 그러나 먹을 것이 풍부해진 요즘은 이 소설 덕에 메밀보다 오히려 메밀꽃이 더 인기를 끌기도 한다.

모든 종자식물은 꽃이 있다. 꽃이 피어야 수정이 되고, 그래야 종자로서 다음 세대에 또다시 싹을 틔울 수 있으니 당연한 이치다. 메밀도 종자식물이니 꽃을 피우는 것은 당연하고, 이효석의 묘사대로 달밤에 흐드러지게 핀 꽃을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비록 꽃이 최종 목적은 아닐지라도 예쁜 꽃까지 피우니 일석이조다. 그렇다면 다른 작물은? 벼꽃, 보리꽃, 밀꽃은 본 적이 있는가? 혹은 눈길을 준 적이 있는가?

벼, 보리, 밀은 종자식물이니 꽃이 핀다. 그러나 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볼품이 없는 꽃이 핀다. 조금 큰 흰색의 먼지 혹은 작은 벌레가 며칠 붙어 있나 싶게 꽃이 핀다. 이런 작물들은 꽃이 목적이 아니어서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으니 아무도 모른다. 꽃잎이라고 할 것도 없으니 꽃이 진다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을 만큼 아무도 모르는 새 스러져 버린다.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밭에는 여기저기 길이 나 있다. 하얀 꽃을 배경 삼은 자신의 얼굴을 여기저기에 올리고 싶은 이들의 발길 탓이다. 그 꽃이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누군가의 주린 배를 채울 것이라 생각한다면 차마 그 꽃을 짓밟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메밀꽃 필 무렵은 벼가 영글 무렵이다. 메밀꽃이 있으면 벼꽃, 보리꽃, 밀꽃도 있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논밭의 주인 덕에 꽃이 피고 진 후 알곡이 들어찬다. 그 덕에 우리는 배가 부르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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