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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한국인의 마음 게재 일자 : 2021년 10월 21일(木)
“번아웃, 열정 불태워야 오죠… 그땐 ‘참 열심히 살았구나’ 보듬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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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문화일보를 방문한 핫펠트는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러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자신을 위로할 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김호웅 기자

■ 한국인의 마음 - 우리를 이해하는 7개의 질문

⑥ 뮤지션 핫펠트가 말하는 ‘열정과 번아웃’

고등학생 때 원더걸스로 데뷔
‘텔미·노바디’ 등 빅히트 행진
7년전 독립후 ‘번아웃’ 찾아와

우울한 가족사 담아낸 ‘1719’
“확 털어내고 나니 후련해져요
힘든 이에겐 ‘일단 살자 ’하죠”

“긍정의 마인드로 위로해 주면
또 새로운 열정이 싹 트겠죠”


솔로로 독립한 지 7년이 됐지만 핫펠트(32)라는 이름은 아직 왠지 낯설다. 그러나 핫펠트가 2007년 데뷔한 걸그룹 원더걸스의 예은이라고 하면 ‘아하’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소위 2세대 K-팝의 선두에 서서 ‘텔 미’ ‘노바디’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낸 스타. 국내 가수 최초로 미국 빌보드 ‘핫 100’ 76위에 오른 ‘레전드’다. 데뷔 당시 10대 고등학생이던 예은은 이제 30대의 성숙한 아티스트로 우리 앞에 섰다. 그리고 지나쳐온 시간만큼이나 진한 열정과 쓰린 번아웃을 겪은 이후 스스로 딛고 일어나 두 번째 아티스트의 삶을 개척하고 있다. 최근 그를 만나 극단을 오고 갔던 마음속을 다시 들여다봤다.

◇‘라이프 석스’

―오랜만입니다. 지난해 ‘1719’ 앨범 발표 이후 1년이 넘었네요.

“네. 조금씩 지칠 때도 있지만 차근차근 쌓아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원더걸스로는 너무 큰 사랑을 받았고 핫펠트란 이름은 계속 알려가고 있어도 아직 모르는 분이 많이 계시니까요.”

‘1719’가 나왔을 때 팬들은 매우 놀랐다. 엘리트 코스만 밟은 줄 알았던 핫펠트가 내면의 고민과 우울했던 가족사를 솔직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14개의 트랙 중 ‘라이프 석스(Life Sucks)’는 불미스러운 일로 구속됐던 부친을 빗댄 곡이다. 직설적 가사와 도발적인 뮤직비디오가 충격으로 다가왔다. 동명의 에세이로도 출간됐다.

“‘1719’는 제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겪었던 감정과 생각들을 담은 것입니다. 당시는 저한테 굉장히 중요했던 시간인 것 같아요. (그룹 해체 후)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시간이기도 했고 동시에 조금 더 독립적으로, 저 스스로가 단단해진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가장 지치게 했던 게 뭔가요.

“창작의 고통, 팬들의 호응, 앨범 성적, 주변 사람들의 시선, 뭐 이런 것들이 다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개인적으로 힘든 일도 있었고 모든 게 좀 겹쳐서 제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결국 돌아보면 제가 음악을 너무 좋아하고 여전히 하고 싶은 게 있더라고요.”

―가족사 고백을 후회하지 않나요.

“전혀요. 사실 ‘라이프 석스’는 걱정을 많이 했던 곡인데 유튜브에선 가장 많은 댓글이 달린 곡이기도 해요. 본인들이 겪었던 상처를 말하면서 서로 드러내고 위로하는 공간이 된 것 같아요.”



◇“일단 살아라”

‘라이프 석스’의 가사는 이렇다. “29년 만에 처음으로 아버지가 내게 편지를 썼다(For the first time in my 29 years, Daddy wrote me a letter)/ 나 좀 꺼내줄 수 있니(Could u bail me out)?/인생은 누구에게나 별로다(Life sucks for everybody).” 그렇다. 인생은 참으로 가혹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상처를 안고 살아가더군요. 그런데 그걸 그냥 덮어두기보다는 확 털어내고 나면 시원하고 후련한 게 있거든요. 그래서 저에게도 (앨범이) 그런 계기가 됐고 또 들으시는 분들한테도 그렇게 된 것 같아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심리치료도 받았다고 했잖아요.

“네. 그래서 저는 정신적으로 힘든 분이 있다면 심리치료를 꼭 받아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저도 처음에는 이런 게 도움이 될까 했거든요. 시간만 낭비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제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제 안에 있던 감정들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그때 상담 선생님이 책을 써보라고도 추천해주셨어요.”

―요즘 상담 요청이 많다고요.

“네. 그런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DM 같은 것을 보내주시기도 하고, 제 얘기가 알려져 있다 보니 조금 편하게 자신을 오픈하는 분도 있어요.”

―가장 강조하는 말은 무엇인가요.

“딱 한 가지만 말해요. ‘일단 살아라’. 화나면 화를 내고 울고 싶으면 울고, 쉬고 싶으면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다 좋은데 일단은 살자고요.”

‘일단 살자’라는 말은 일면 평범해 보이지만 가수로서 핫펠트가 견뎌온 시간이 묵직하게 배어 있다. 원더걸스로 화려하게 비상했던 시간, 솔로가 돼서 개인적·음악적으로 방황했던 순간이 쌓여서 잉태된 말이다.

◇‘노바디’ 열정과 책임감

―‘텔 미’와 ‘노바디’의 반응은 참 대단했었죠.

“굉장했습니다. 원더걸스가 몇 달 동안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를 했는데 참 신기했어요. 그리고 당시 UCC를 통해 ‘군인 텔 미’ ‘경찰 텔 미’ 등이 나왔죠. 그럴 때마다 우리가 진짜 많이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책임감도 느꼈겠네요.

“안 느낄 수가 없죠. 활동하면서 나이가 어리다고 다 용서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좀 더 자유를 누리고 싶고 좀 더 자고 싶은 그런 마음들이 충돌했던 것 같아요.”

―힘들고 지칠 때는 없었나요.

“워낙 스케줄이 많았고, 또 곧바로 미국 진출을 하게 돼서 피로할 수밖에 없었죠. 미국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부분도 사실 어려웠고요.”

―미국 생활 이야기 좀 해주세요.

“투어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요. 재미도 있고 설움도 있었죠. 한국에서는 대우받는 가수였는데 미국에선 완전히 신인이니까요. 밴드 조나스 브라더스와 함께 미국 50개 주를 거의 다 돌았어요. 한 3년 정도 한 것 같아요. 캐나다와 멕시코까지 갔으니까요. ‘노바디’가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미국 시장에서도 정말 성공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노바디’로 ‘핫 100’ 76위를 해냈죠.

“저희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소식을 들었는데, 처음엔 실감도 안 났죠. 그냥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던 기억이 나요. 나중에 그게 큰 의미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  일러스트 = 이정호 작가

◇핫펠트만의 스타일

―핫펠트로의 변신은 또 한 번 초심으로 가는 열정 아니었을까요.

“그룹 때부터 박진영 PD님한테 솔로를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원더걸스의 앨범에도 조금씩 참여했으니 이젠 네가 전곡을 작사·작곡한 앨범을 내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요. 그렇게 앨범을 만들었는데 막상 박 PD님이 그 앨범을 보더니 놀라셨어요. 분위기가 너무 어둡다는 거죠. 원더걸스 이미지와 안 맞는다며 반대하셨는데 저는 ‘이런 음악을 해보고 싶다’면서 설득했어요. 전 마음먹으면 그냥 해보는 스타일이거든요.”

―가수로서 벌써 14년, K-팝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요.

“세계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잖아요. 유튜브, SNS가 활성화되면서 해외 콘텐츠들을 쉽게 접할 수 있으니까요. 좋은 콘텐츠들은 금방 각광받는 것 같아요. 그동안 K-팝이 성장을 해왔고 이제는 해외시장에서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그런 시대가 된 것 같아요.”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전문위원도 같은 맥락인가요.

“서지현 검사님께서 저한테 연락을 주셨어요. 이런 위원회를 구성 중인데 예은 씨가 여자 연예인으로서 겪은 것들을 공유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처음엔 망설였지만 참여하게 됐습니다.”

◇“자신을 보듬어주자”

―열정과 번아웃에 대해 다시 한 번 당부한다면.

▲  ‘한국인의 마음’은 문화일보 문화부 유튜브에서 동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요즘 번아웃을 겪고 계신 분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저도 그랬었고. 제가 어디서 읽었는데 번아웃이라는 것 자체가 정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올 수 있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나를 불태워서 뭔가에 열정을 쏟았기 때문에 번아웃이 올 수 있는 거죠. 지금 번아웃으로 고통받고 있다 해도 긍정의 마인드를 가졌으면 해요. 내가 정말 최선을 다했고 그동안 열심히 살았다고 자신을 좀 위로해주고 보듬어주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또 어떤 새로운 열정이 싹틀 수 있잖아요.”

―음악 활동 계획은.

“트렌드에 맞춰 계속 업데이트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자신에게 집중하는 편이에요. 스토리텔링이나 음악적 색깔이 너무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는 저만의 세계를 만들고 싶어요.”


■ 핫펠트의 리스트

“아이언맨3 속의 대사 ‘당신이 만들면 되죠’… 아주 큰 위로가 되더라고요”


“나도 그냥 얼룩말로 살기로 했다. 나의 밝음과 어둠이 만들어내는 얼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온통 얼룩인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핫펠트가 ‘1719’ 에세이에 쓴 글이다. 그는 자신의 노래를 짓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번아웃의 출구를 찾았다. 힘이 들고 지칠수록 자기 자신과 대화하고 현실을 인정했다. 2014년에 발표한 ‘에인트 노바디(Ain’t Nobody)’의 반응이 기대에 못 미쳤어도 그가 낙담하지 않았던 이유다.

“사실 음원 성적이 기대 이하여서 저나 회사나 좀 충격을 받았죠. 원더걸스 땐 항상 1위였으니까요. 그러나 그때부터 현실을 깨달은 것 같아요. 그리고 제 이야기를 담은 앨범을 통해 다양한 피드백을 받으면서 ‘이러지 않아도 괜찮아’ 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됐어요.”

‘노바디’ 앨범에 있는 ‘세잉 아이 러브 유(Saying i love you)’도 핫펠트가 직접 만든 곡이었다. 눈이 오던 어느 날 피어오른 사랑의 감정을 피아노 발라드에 담았다.

“곡을 만들 때는 많은 곳에서 영감을 얻어요. 제가 겪었던 감정이나 경험들, 그리고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일상에서 보고 들으면서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아이언맨3’는 일반 관객에겐 최고의 오락영화일지 모르지만 핫펠트에겐 다시 일어설 힘을 줬던 영화다.

“제가 첫 앨범을 준비할 때 부담이 커서 릴랙스하기 위해 봤던 게 ‘아이언맨3’예요. 3편은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대저택에서 시작하는데요. 적에게 폭격당해서 저택이 완전히 부서지잖아요. 그래서 스타크가 탈출하다가 슈트까지 망가져서 사막에 떨어져요. 절망에 빠져서 ‘나 이제는 아무것도 없어’라고 하는데 어린 친구가 나타나서 ‘당신은 기술자잖아요. 당신이 슈트를 만들면 되죠’라고 해요. 저는 그 말이 아주 큰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나온 곡이 ‘아이언 걸’이다.

이 밖에도 핫펠트는 두 편의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라스트 홀리데이’와 1권의 책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를 추천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개돼 호평받았던 작품이다. 혼자 살아가는 콜센터 상담원 진아(공승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006년에 개봉한 ‘라스트 홀리데이’도 낮에는 세일즈 우먼, 밤에는 자신만의 만찬을 즐기던 소시민 조지아가 갑자기 3주 시한부 선고를 받고 꿈의 여행지였던 체코로 떠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둘 다 현대사회 속 인간 삶의 의미를 담담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핫펠트의 노래와 맥이 닿아 있는 것 같다.

책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의 저자 김민섭의 신작이다. “화려한 에피소드나 복잡한 철학 없이도 즐겁고 깊이 있고 따뜻한 책이에요. 사람이 무서워 가시를 세우며 지냈던 제게 사람의 가치에 대해 알려줬습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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