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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한국인의 마음 게재 일자 : 2021년 10월 26일(火)
“인류에 보편적인 행복이란 없어… 내가 나랑 친해지는 방법을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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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웅 기자

■ 한국인의 마음 - 우리를 이해하는 7개의 질문

⑦ 정신의학 전문의 김건종이 말하는 ‘행복’ <끝>

햇빛 비치면 그만큼의 그늘 존재
부정하거나 제거할수도 없는 것
긍정 강요→ 행복 강박으로 연결

과거 비해 가벼운 고민상담 늘어
어두운 감정 감당하기 어려워해

전문가나 권위자에 물을수 없어
나는 어떨때 좋지? 질문이 우선
내 행복은 베프와의 냉면한그릇


“정신과 의사도 행복 잘 몰라요.” 세상이 온통 ‘행복’을 논한다. 그게 뭔지 잘 모르겠는데, 여하튼 ‘행복’해지고 싶다. ‘마음의 여섯 얼굴’에서 이 강한 열망이 삶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라고, 시적인 문장과 사려 깊은 통찰력을 보여줬던 김건종 정신의학 전문의를 최근 만났다. 그는 행복이라 부를 만한 것이 있다 해도, 그건 아주 사적이고 내밀한 경험, 상태라고 했다. 권위자나 타인의 말, SNS의 풍경을 넘어서는 자신만의 ‘건강한 마음’을, 또 그 이상의 것을 찾아야 한다고. 우울, 분노, 콤플렉스, 번아웃, 나르시시즘, 집착….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만 자연스러운 이 마음들을 끌어안고 질문을 던져본다. 행복 너머의 것을 삶에 스며들게 하는 방법을.

#나만 불행한 것 같은 세상에서

―세상이 온통 ‘행복’을 이야기한다. 행복이 뭔지도 잘 모르는 채로, 강요당하는 기분도 들고 강박도 생긴다.

“인간이 어떤 좋은 상태, 평온하고 만족스럽고 괴롭지 않은 상태를 추구하는 건 본능이기도 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람마다 미묘하게 다르지만, 그런 상태를 주로 행복이라 부르며 저마다 행복해지려고 한다. 그런데 ‘강박’이란 단어를 붙일 만큼 행복이라는 게 중요해지고, 행복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건 어쩌면 사는 게 힘들어서인 것 같다.”

―바꿔 말하면, 행복하지 않으니까?

“삶이 불안하고 두렵고 맘대로 잘 안 되니까, 반대급부로 행복에 대한 생각들이 늘어나는 거 아닐까. 그 역시 마음의 본능이다. 무거워지면 가벼워지고 싶고, 어두워지면 밝은 면을 찾게 되는 자연스러운 반작용, 즉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의 일부분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회피라고도 본다. 정신분석 용어로는 ‘조적 방어’라고 하는데, 우울하고 괴로울 때 그걸 덮어버리고 보지 않으면서 ‘난 좋아, 기뻐’하는 식이다. 우리 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SNS를 보면 나만 불행한 것 같다. 타인들의 행복은 너무 쉬워 보인다.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조건과 이런 성취와 이런 상황이니까 너는 행복할 거야’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행복이란 단어가 미묘하게 오용되면서 서로가 서로의 행복을 부러워하고, 내 행복이 뭔지 생각하는 건 점점 어려워지는 형국이다.”



#정신과 의사도 행복을 몰라요

―정신과 의사로서 내린 행복의 정의가 있을 것 같다.

“정신과 의사는 사실 행복을 잘 모른다. 사람들을 행복하게도 못 만든다. 그저 조금 덜 괴롭게 해줄 수 있을 뿐이다. 칸트도 ‘행복은 규정할 수 없는 개념이다’고 했고, 아도르노는 행복이란 건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여서 우리가 ‘행복해’라고 말하는 순간 거기에서 빠져나와 버린다고 했다.”

―그런데도 우린 무의식중에 ‘행복’이란 단어를 자주 쓰게 된다.

“내가 평양냉면을 무척 좋아한다. 서울에 올 때 1년에 한 번 정도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 평양냉면을 먹는다. 어제가 바로 그런 날이었는데,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 좋아하는 평양냉면을 한 그릇 먹고 나니까 ‘아, 행복하다’는 말이 나오더라. 그런 일상적인 순간들이 행복일 수도 있겠다. 실제로 이게 진화론 쪽에서 말하는 행복의 핵심이기도 하다.”

―평양냉면이 행복 처방전이라면, 오늘 인터뷰가 허탈하게 느껴질 것 같다.

“‘나한테 이게 행복이니까, 당신들도 이걸 따라야 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각자 느낀 일상적인 순간들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랑 상관없다. 전문가나 권위자에게 의존하지 말고 ‘나는 어떨 때 좋지?’를 생각하는 게 우선이다.”

―지금 전문가 인터뷰 중인데…. ‘한국인의 마음’ 시리즈의 마지막 회다.

“하하, 한마디로 행복은 굉장히 사적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다. 우린 자꾸 ‘보편적인 행복’이 있을 거라 믿는 것 같다. 그러니 괴리가 온다. 우리 사회의 문제 중 하나가 이거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지? 권위자는 뭐라고 말했지?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겠지? 나도 그걸 따라가야겠다’고….”

▲  일러스트 = 이정호 작가


#‘정신력’이란 정체불명의 개념…한국 사회 행복 강박을 키운다

―행복이 사적인 것이라 더 어렵다.

“사회·문화적으로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가 늘어난 원인도 있다. 100년 전만 해도 배우 김태희처럼 ‘비정상적’으로 예쁜 사람을 대부분이 평생 본 적이 없고 미에 대한 기준도 훨씬 더 일상적이었을 텐데, 지금은 TV만 켜도 그런 사람 천지다. 일종의 ‘현대적인 박탈감’인데, 너무 많은 사람이 이런 상태여서 딱히 ‘병리’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다. 이제 와서 우리가 SNS를 닫고 TV를 끄고 살 수도 없고. 이것 또한 감당해야 하는데….”

―정신과를 찾는 환자들이 점점 늘어나는지.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하면.

“환자가 늘긴 했지만 10년 전, 15년 전과 비교했을 때 근본적인 변화가 감지된 건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비슷한 문제로 힘들다. 정신과에 오는 문턱이 낮아진 것도 있고, 한편으론 과거보단 좀 가벼운 고민을 들고 오는 사람이 늘어난 정도다. 요즘엔 연애에 실패해서 오는 경우도 꽤 있다. 어두운 감정 자체를 불편해하는 경향이 있다.”

―흔한 말로 ‘정신력’이 약해졌나.

“그건 판단할 수 없다. 오히려 그 ‘정신력’이라는 정체불명의 개념이 문제인 것 같다. 여기엔 한국적인 측면이 있는데, 우리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이고 외향적인 가치들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너는 정신력이 약해서 그래, 의지가 약해서 그래’라는 식으로 아주 간단하게 어두운 감정들을 없애버리고, 그저 긍정적인 사람이 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는 믿음 같은 게 우리 사회에 있다. 삶의 당연한 요소인 그늘을 제거하려는 불가능한 시도로 이어지고, 그게 행복에 대한 강박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환자들에게 주로 어떤 말을 하나.

“햇빛이 비치는 날엔 꼭 그만큼의 그늘이 진다. 삶이라는 게 밝음과 어둠의 조화인데, 거기서 어두운 감정들을 없애버려 하얗게 표백시키면 그건 삶이 아니라고. 행복은 상태고, 또 과정이기도 하다. 괴롭고 힘든 순간에서 느긋하고 평안한 순간으로 옮겨가는 것 말이다. 그렇다면 행복을 위해서는 힘들고 괴로운 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야기고….”

#나를 살린 건 책과 사람…마음이 아프지 않으면 그건 삶이 아니에요

―그래도 행복의 방법이 있지 않나.

“자신과 친해야 한다. 내가 나랑 함께 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좋다. 내가 나를 잘 모르니까 ‘저 사람 말을 들어볼까?’하는 건데, SNS에서 행복해 보이는 것, 누군가 ‘행복해’라며 올려놓은 사진 등을 넘어서서 ‘진짜 나는 뭐가 좋지’라고 묻는 순간들이 의미가 있을 거다. 그럴 때 결국 우리가 고민하는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과시적이고 자기애적인 것들도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엄청난 다독가로 알려져 있다. 독서를 통해 마음을 다스렸던 과거도.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아버지가 돌아가신 중학교 때부터다. 고등학교 때는 장자를 읽고 충격을 받았고, 대학생 때 친구가 시위하다 죽는 걸 보고 더욱 몰입했던 것 같다. ‘책에는 뭔가 해답이 있지 않을까? 삶이란 뭐지, 살고 죽는 게 뭐지?’ 하며 철학, 종교를 공부하고, 문학책도 읽었다. 그런데 연애를 시작하면서 그 모든 질문이 싹 사라졌다, 하하. 사는 게 중요하지 뭐 죽는 것도 별 의미 없더라.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어떻게든 오래 살아서 아이들 자라는 걸 봐야겠다는 게 목표가 됐다.”

―김건종의 행복은 연애였던 것인가.

“한편으론 책, 또 한편으론 사람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와 함께할 때의 느낌이 내겐 가장 편하고, 내가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 가장 행복하다. 우울하다는 이들에게 나는 주로 누군가랑 같이 있으라고, 함께 밥을 먹으라고 조언한다. 그게 꼭 결혼을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혼자 우울을 견디는 건 강하다는 증거도, 아무것도 아니다. 마음의 고통을 타인과 나누는 게 가장 쉽고 또 근본적으로 의미 있는 방법이다.”

―좋아하는 행복에 대한 말들은.

▲  ‘한국인의 마음’은 문화일보 문화부 유튜브에서 동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마크 롤랜즈라는 철학자의 말을 빌리면, 언젠가 우리가 삶을 다 살고, 내 삶의 최고의 순간이 언제였지? 할 때, 그게 그저 행복하기만 했던 순간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또, 도널드 위니코트는 ‘마음이 아프지 않으면 건강일 수 있어도 그게 삶은 아니다’라고 했다. 늘 행복, 건강한 마음 그 이상의 것은 없을까 고민한다. 그게 정말 다인 것일까? 하고. 미국 뇌정신과 의사인 시겔의 말도 생각할 거리를 준다. 사람의 양쪽엔 경직되고 굳어 있는 상태와 혼란스럽고 카오틱한 상태가 둘 다 있고, 그 사이로 강이 흐른다고. 우린 그 강으로 그저 흘러가는 것이라고, 삶과 함께.”


■ 김건종의 리스트

“낭만적 행복보다 충만한 삶의 경험 강조… 찰스 슐츠 만화 ‘피너츠’ 강추”


김건종 정신과 전문의의 저서 ‘마음의 여섯 얼굴’(에이도스)은 우울, 불안, 분노, 중독, 광기와 같은 우리가 불편해하는 마음들이 ‘사랑’이라는 빛나는 순간을 만나기 위해 존재함을 역설한다.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으로 책 읽기에 몰입한 긴 세월이 녹아들어 저자만의 통찰력 있는 분석과 시적인 문장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정작 그는 “이제 책 읽는 걸 줄이고 있다”고 했다. “행복할 때는 대개 책을 읽는 시기는 아니어서, 책을 추천하는 것이 고민됐습니다.” 그는 인터뷰 수일 후 메일을 보내왔다. 그럼에도 행복에 대해 새삼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줬던 책을 꼽아보고 싶다면서.

가장 권하고 싶은 건 찰스 슐츠의 만화 ‘피너츠’다. 찰리 브라운과 강아지 스누피, 그리고 친구들의 소소한 일상이 모여 큰 사건 없이 흘러가는 이 만화에서 슐츠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어린 시절의 낭만적 행복을 그리지 않는다. 어른들이 생각하듯 그들에게 삶이 마냥 즐거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 전문의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생생한 현재를 더 진지하게 산다”면서 “아이들은 진지한 반면, 어른들은 쓸데없이 심각하다”고 꼬집었다. “삶을 온전히 경험하는 것이 오로지 행복한 순간만을 추구하는 것보다 더 깊은 충만감을 준다는 것을 슐츠는 어려운 말 한마디, 심각한 상황 하나 없이 가르쳐줍니다.”

다음으로 그는 철학자 마크 롤랜즈의 에세이 ‘철학자와 늑대’를 추천했다. 롤랜즈는 27세 때 늑대 브레닌을 만나 11년간 함께 산다. 책은 그 동거에 대한 기록으로, 늑대의 삶을 통해 인간의 삶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본다. 그는 우리 인간이 ‘행복 중독자’라고 말한다. 행복을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인간과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하는 데 온 존재를 집중하는 브레닌을 비교하며, 우리가 행복이라는 감정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면서 삶의 더 깊은 경험들을 놓치고 있다고.

마지막으로 피아노 조율사인 저자가 중국집 노포를 탐방한 기록, ‘중국집’이다. 저자는 전국으로 피아노 조율을 다니면서 작업이 끝나면 그 지역 중국집을 찾아가 짜장면과 볶음밥, 짬뽕과 탕수육을 먹는다. 작은 사진기로 사진을 찍고 수십 년 동안 먹어온 그 뻔한 음식들을 음미한다. “인스타에 올려도 아무도 안 볼 것 같은 심심한 중국 음식 사진들과 현란한 수사도, 심오한 철학도 없는 담담한 문장이 어울려 이상하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평생 해온 일을 매일 또다시 하면서, 작고 소박한 기쁨을 누리는 모습이 제가 생각하는 행복의 아름다운 형식인 것 같습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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