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모사드, 이란 핵과학자 암살 배후로 추정…코로나 백신 몰래 들여와 연구하기도

■ 여전히 활약중인 각국 정보기관

러 GRU, 독일 해킹 총선 개입설
‘푸틴 정적’ 나발니 암살 의혹도

과거보다 위축됐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세계 각국 정보기관들의 암약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주로 해킹이나 암살 시도 등 부정적 측면이 두드러지지만 자국 코로나19 백신 확보에 기여하는 등 긍정적 측면도 있다. 정보기관들의 활동에는 ‘암(暗)’과 ‘명(明)’이 공존하는 셈이다.

27일 외신에 따르면 최근 정보기관의 활동이 표면화된 사례는 지난 9월 26일 치러진 독일 총선에서였다. 총선을 약 3주 앞둔 시점에서 독일 외교부 대변인은 공개적으로 러시아 측에 “사이버 공격을 중단하라”며 “러시아 정보기관 총정찰국(GRU)이 사이버 공격을 주도했다고 입증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은 러시아 정보기관 소속 해커들이 자국 연방의회 의원들에게 ‘피싱’ 이메일을 무차별적으로 살포, 이를 통해 습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 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 정보기관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반대자 알렉세이 나발니를 암살하려 했다는 의혹도 기정사실처럼 굳어져 있다. 나발니는 지난해 8월 시베리아 톰스크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던 비행기에서 독극물 중독 증세로 쓰러졌다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이후 치료를 맡은 독일 의료진은 화학무기 일종인 ‘노비촉’이 나발니를 쓰러뜨렸다고 진단했다. 러시아에서만 생산되는 것으로 알려진 노비촉은 러시아가 나발니 암살에 개입했다는 유력한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러시아 정보기관만 암살에 관여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말 이란 테헤란 인근에서 핵 개발 책임자로 알려진 핵물리학자 모센 파크리자데가 매복 공격으로 사망했을 때 배후로 지목된 곳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였다. 파크리자데는 1999∼2003년 이란이 진행한 핵무기 개발 계획인 ‘아마드 프로젝트’를 주도한 최고위급 과학자로 알려져 있다. 최근 모사드 국장에서 물러난 요시 코헨은 퇴임 후 인터뷰에서 이란 과학자들에 대해 “직업을 바꿀 준비가 돼 있고 우리를 더는 해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때때로 탈출구를 제공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긍정적 활동도 있다. 같은 시기, 세계 각국의 코로나19 백신 확보 경쟁이 치열했을 때 모사드는 해외 백신 제조사들의 현황을 파악해 후보군을 추린 뒤 네트워크를 활용, 자국의 조기 백신 확보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모사드는 중국에서 임상시험 중이던 코로나19 백신 샘플을 들여와 화이자와 모더나 등 다른 백신들과 비교 분석한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모사드가 중국 백신을 입수한 경위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모사드가 보이지 않는 적(코로나19)과의 전투에서 나라를 구하려 뛰어든 점은 기억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임정환 기자 yom7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