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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Who, What, Why 게재 일자 : 2021년 10월 27일(水)
기밀망 뚫리고 휴민트 붕괴 위기…추락하는 美 CIA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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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버지니아주 랭글리에 위치한 미 중앙정보국(CIA) 로비를 한 직원이 지나치고 있다. 그래픽 = 송재우 기자

■ “對中 첩보전 사활” 명성회복 나서

美 CIA 세계 각국 비밀요원 잇달아 붙잡히고 처형… 20년간 테러와의 전쟁 집중하며 적성국가 상대하는 능력 녹슬어
中 CCTV 4억대 안면 인식기술 ‘세계 최고’… 막대한 자금·전방위 감시망으로 美 정보원 활동 꽁꽁 묶어


워싱턴=김남석 특파원

“우리는 국가 방위의 최전선이다. 우리는 남들이 해낼 수 없는 일을 완수하고, 남들이 가지 못하는 곳으로 간다.”

정보기관의 대명사로 불리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홈페이지 첫 화면에 떠 있는 문구다. 자신 있게 내건 문구처럼 1947년 창설 이래 반세기 넘게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막후에서 좌지우지하던 CIA가 최근 휘청이고 있다.

세계 각국에 포진한 현지 정보원 신원이 연이어 노출돼 체포되고 처형당하는 등 해외 첩보망 관리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CIA는 10개가 훌쩍 넘는 미 연방정보기관 중에서도 특히 ‘휴민트’(HUMINT·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얻은 정보) 중심의 고급정보 수집에 집중하는 조직인 탓에 핵심 토대라 할 수 있는 정보원의 신원 노출은 곧 조직 전체 위기로 직결된다. CIA는 최근 윌리엄 번스 국장이 ‘21세기 미국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위협’이라는 중국에 대한 대응 강화를 위해 중국미션센터를 신설했지만 흔들리는 첩보망을 제대로 수습하기 전에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스파이 잡는 기술 발전? CIA의 오만·역량 퇴조?=지난 5일 뉴욕타임스(NYT)는 CIA 고위층이 이례적으로 전 세계 지부에 극비 전문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전문에는 CIA 대방첩센터가 최근 몇 년간 해외에서 미국, 특히 CIA를 위해 활동했던 정보원 수십 명이 노출돼 체포·처형되는 사례를 확인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일부 정보원은 거꾸로 해외 정보기관에 포섭돼 CIA의 움직임을 알려주거나 역정보를 흘리는 이중첩자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CIA 해외 첩보망이 무너진 첫째 이유로는 먼저 중국·러시아 등의 감시기술 발전이 손꼽힌다. 안면인식, 생체인식, 인공지능(AI), 해킹 등의 기술을 활용해 CIA 정보원 실태 등 활동상을 예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보원뿐 아니라 그들이 접촉하는 대상까지 실시간으로 드러났다. 특히 중국은 4억 대 넘는 CCTV를 중국 전역에 설치한 데다 세계 최고 수준의 안면·걸음걸이 인식기술, 휴대전화 위치추적 등이 결합한 전방위 감시체계를 갖춰 CIA 정보원들이 활동하기 극히 어려운 상황이다. 해킹으로 CIA가 운영하는 기밀통신망 ‘코브콤(COVCOM)’ 등이 뚫리는 경우도 발생했다. 실제로 중국·이란에서 CIA 통신망이 뚫려 신원이 드러난 현지 정보원 2명이 처형됐다.

▲  지난 4월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미 하원에서 열린 청문회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AP 뉴시스

둘째로는 정보원을 비밀리에 포섭하고 운용하는 CIA의 능력 자체에 문제가 생겼다는 지적이다. 전직 CIA 요원 더글러스 런던은 CIA가 비밀공작, 준군사적 활동에 집중하면서 오히려 핵심인 스파이 역량이 약화했다고 주장했다. CIA가 해외 지부에 보낸 전문에서도 과거 방식에만 의존한 첩보활동, 정보원에 대한 과도한 신뢰, 외국 정보기관에 대한 과소평가 등을 고질적 문제로 지적했다. 은퇴한 CIA 정보원들이 외국 정보기관에 고용돼 첩보 노하우, 네트워크 등을 알려주는 점도 문제다. 무엇보다 지난 20년간 ‘테러와의 전쟁’에 집중하면서 중국·러시아 등 거대 적성국가를 상대하는 능력이 녹슬었다는 평가다. 테러단체나 조직에 정보원을 심는 것과 외국 정부 내에 협조자를 만들고 훈련하는 일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거쳐 조 바이든 행정부로 이어지면서 정책결정자들은 중국이나 러시아 등에 대해 더 세밀하고 통찰력 있는 정보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셋째로 CIA 조직원들의 사기도 크게 떨어졌다. 냉전 시대 CIA는 스파이기술은 물론 막강한 자금력, 최첨단 기술 등으로 당시 최대 라이벌이었던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를 압도했다. 인공위성을 첩보전에 처음 도입했고 ‘에셜론’(Echelon)으로 불리는 정보감시망을 통해 전 세계 통신을 감청했다. 하지만 현재 CIA의 위상은 과거만 못한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아바나 증후군으로 불리는 원인 모를 두통·이명·어지럼증세 등이 세계 각지의 미 외교관들은 물론 CIA 정보원들을 괴롭히고 있다. 지난 9월 CIA는 세르비아에서 아바나 증후군에 시달린 정보원을 대피시켰고 인도, 베트남 등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발생했다. CIA 해외 지부 곳곳의 요원들은 물론 가족들까지 피해를 호소하는 상황이다. 관련 전문가들은 중국·러시아 등의 초음파 또는 음향기기를 이용한 공격 가능성을 의심하지만 정확한 원인은 아직 불명이다.

◇반복되는 위기, 중국과의 첩보전이 최대 고비 될까=사실 CIA의 위기론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해리 트루먼 행정부가 대통령 직속 비밀첩보기구로 CIA를 창설한 이후 주기적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과거에는 본 업무인 첩보활동을 벗어난 지나친 활동영역 확대, 불법 행위 등이 주로 문제였다. 1974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하야로 이뤄진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불법 도청 및 사찰 논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이란-콘트라 스캔들, 2000년대 테러용의자 물고문 논란 등이 이어졌다.

반면 1990년대에는 냉전 종식과 함께 인력 감축, 예산 삭감 등으로 상당수 CIA 조직원들이 이직하면서 한 차례 위기를 맞았다. 정보 실패에 따른 비난도 끊이지 않는다. 2001년 9·11테러를 막지 못했고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대량파괴무기(WMD) 관련 정보를 잘못 제공해 이라크전을 불러오기도 했다.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의 부상,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등도 사전에 알아채는 데 실패했다. 이처럼 CIA 무용론·폐지론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대통령 직접 보고와 행정부 요직에 진출한 CIA 출신들의 영향력 등을 적절히 활용해 번번이 기사회생했다.

현재 CIA가 처한 위기는 대중국 첩보전의 성패에 따라 판가름날 전망이다. 번스 국장은 지난 7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중국미션센터를 설립하고 중국 관련 정보수집에 초점을 맞춰 조직을 재정비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CIA는 중국어 능통자를 선발·훈련한 뒤 세계 각국에 배치해 중국 정보를 수집하고 관련 분석능력도 높인다는 계획이다. 번스 국장은 매주 중국미션센터장을 독대해 직접 보고받을 예정이다. 갈수록 갈등이 고조되는 중국에 역량이 집중될 것임을 예고했지만 관련 첩보망을 완비하는 데는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중국의 철저한 감시망과 미국을 능가하는 막대한 자금을 활용한 공작능력 등을 효과적으로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 2018년에도 중국계 CIA 요원이 중국 측에 CIA 정보원 명단을 넘겨 첩보망이 궤멸적 타격을 입기도 했다. CIA가 절치부심 미·중 첩보전에서 승리해 또 한 번 존재감을 보이고 위기를 넘어설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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