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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Deep Read 게재 일자 : 2021년 11월 04일(木)
北, 종전선언 법적 구속력 악용 가능성…‘비핵화 여정’ 실행 없인 韓에 치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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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현의 Deep Read - 한반도 종전선언 어떻게

국가간 약속은 ‘信義則’ 따른 법적·정치적 구속력 발생시켜 美 ‘신중’입장… 北 ‘先 제재해제’, 南 ‘先 종전선언’과 이견

성급한 대북 실적주의·저자세와 맞물릴 때 안보 위협… 북한,‘선언’ 빌미로 주한미군 철수·한미동맹 해체 주장할 수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됐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한다”고 밝힌 후 정부는 종전선언 추진에 올인하고 있다. 종전선언이 거론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 때에도,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에서도 종전선언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하지만 종전선언의 두 핵심 당사자인 미국과 북한의 생각은 좀 다르다. 미국은 종전선언과 관련해 “한국과 다소 이견이 있다”고 했다. 북한은 종전선언 협상 테이블에 앉기 위한 제재 완화 등 요구조건부터 내세웠다. 종전선언은 그것이 완전한 비핵화로의 여정을 안내할 때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에 기여한다. 임기 말에 몰린 정부의 실적주의나 대북 저자세와 맞물린다면 안보에 치명적 위험이 될 수도 있다.

◇정전과 종전, 평화

한반도의 평화는 1953년 7월 27일에 체결된 정전협정 위에 이룩된 불안정한 평화다. 6·25는 유엔군 총사령관과 북한군 최고사령관 및 중공인민지원군 사령원 사이에 맺은 ‘한국 군사 정전(停戰)에 관한 협정’에 따라 휴전됐다. 정전협정으로 한반도에서의 전쟁 행위는 일단 중단됐으나 법적으로는 여전히 전쟁 상태다. 반면 종전선언은 교전 당사국들이 전쟁이 끝났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한편 이를 국제사회에 공표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종전을 선언하는 것은 기존의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으로 넘어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평화협정을 위한 전 단계라 할 수 있다.

종전선언의 대표적 사례로 1978년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에 체결된 캠프데이비드협정이 있다. 당시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이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를 워싱턴 근교 캠프데이비드로 초청해 합의를 이끈 역사적 협정이다. 이 협정에 기초해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에 다음 해인 1979년 3월 평화조약이 조인됐고, 이스라엘은 제3차 중동전쟁 후 점령하고 있던 시나이반도를 1982년 이집트에 반환함으로써 중동 평화가 한 걸음 진전했다.

한반도에서도 그러한 종전선언이 이뤄져 불안한 정전체제가 해소되고 평화체제로 나아가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까. 북한은 남북 경색 국면에서의 종전선언 추진은 “아파트 기초를 무시하고 10층부터 짓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김여정은 ‘대북 적대시 정책 중단’과 ‘제재 완화’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최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박지원 국가정보원장도 북한이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광물 수출과 석유 수입 허용 등의 제재해제를 종전선언 논의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고 밝혔다.

◇‘신의칙’의 문제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이 비핵화 협상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입구’이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출구’를 향해 가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본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종전선언에 대해 “비핵화를 촉진하고 북핵 협상의 입구로 기능을 하는 것”이라고 했고, 노규덕 북핵 수석대표도 “종전선언은 대북 적대시 정책이 없음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조치로서 북측과 대화 재개의 중요한 모멘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과 달리 미국은 종전선언의 법적 의미, 즉 선언의 구속력을 무겁게 본다. 무엇보다 북한이 이를 악용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선언문에 담기는 내용이 어떻게 해석되고 어떤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북한이 연이어 미사일 시험발사 등으로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하는 상황에서 종전선언은 북의 상습적인 도발에 오히려 보상을 해주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종전선언은 결국 평화협정으로 이어지는 첫걸음이란 점에서 법적·정치적 구속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종전선언도 일종의 국가 간 약속이다. 로마법의 ‘ bona fide(신의칙)’에서 유래한 법 원칙은 근대법과 국제법의 대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종전선언이란 게 우리 정부가 생각하듯 일단 선언하고 여차하면 취소해버리면 되는 그런 게 아니라는 뜻이다. 법적·정치적 구속력 때문에 국가 간 약속인 종전선언을 신중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논리다.

◇순서와 시기, 조건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한국과 미국이 종전선언의 순서(sequencing), 시기(timing), 조건(condition) 등에서 다소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결국 언제, 어떤 절차를 밟아, 어떤 조건으로 해야 하는지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요컨대 미국은 북한이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라는 조건과 절차를 밟을 때 협상이 가능하며, 북의 유의미한 변화 없는 제재 완화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미국의 신중한 입장은 우리 정부가 생각하는 ‘선 종전선언 후 비핵화’ 구상과는 작지 않은 차이가 있다.

한·미 간의 시각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종전선언이라는 입구로 들어가서 완전한 비핵화라는 출구로 가는 여정을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입구로 들어갔는데 출구를 찾지 못한 채 길을 잃어버린다면 보통 큰 문제가 아니다. 종전선언을 챙긴 북한이 그 법적·정치적 구속력을 믿고 주한미군의 철수나 연합훈련 중단, 유엔사령부 위상 변경, 한·미 동맹의 해체를 주장하고 나서면 종전선언은 빛이 바래게 된다.

종전선언이 성사되려면 입구에 들어선 후 길을 잃지 않고 ‘출구 = 완전한 비핵화’까지 여정이 이어지리라는 최소한의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정부는 미국의 우려를 감안해 종전선언이 정전협정 체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내용을 명시적으로 포함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만일 종전선언이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한다면 북이 과연 이를 수용할까.

◇무분별 추진은 안보 위험

종전선언이 문재인 정부가 원하는 것처럼 평화프로세스의 입구가 되려면 적어도 북이 비핵화라는 출구까지 갈 의향이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따라서 최소한 비핵화 협상 재개와 함께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순서와 시기, 조건을 잘 갖춘 종전선언은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임기 말 실적 쌓기나 대북 저자세와 결합할 경우 종전선언은 북을 이롭게 할지 모르지만 우리 안보엔 치명적 위험을 안겨줄 수도 있다.

세종연구소 소장·정치학 박사


■ 세줄 요약

정전과 종전, 평화 : 1953년 정전협정으로 한반도에서의 전쟁 행위는 일단 중단됐지만 법적으로는 여전히 전쟁 상태. 한반도는 불안한 평화 상태임. 문재인 정부는 평화프로세스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종전선언 외교에 올인.

‘신의칙’의 문제 : 南은 ‘先 종전선언’, 北은 ‘先 제재해제’를 내세워. 이는 북한의 종전선언 악용 가능성을 우려하는 미국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음. 국가 간 약속은 ‘신의칙’에 따른 법적·정치적 구속력을 발생시키기 때문.

무분별 추진은 안보 위험 : 종전선언부터 하면 북은 그 법적 구속력을 믿고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 동맹 해체를 주장할 수도. 종전선언은 완전한 비핵화로의 여정을 안내할 때 진정한 평화에 기여. 성급한 실적주의는 안보에 위험.


■ 용어 설명

‘종전선언’은 ‘평화협정’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 단계 성격. 종전 절차의 시작을 알리는 ‘정치적 선언’으로 여겨지지만, 국가 간 협정 혹은 약속인 만큼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는 해석이 나옴.

‘bona fide’는 라틴어로 ‘신의성실원칙(신의칙)’. 모든 사회 구성원이 상대방의 신뢰에 반하지 않도록 성의 있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법 원칙. 로마법에 기원을 두며 근대법 원칙으로 발전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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