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입가치 높은 대학에만 학생 쏠려… 명문대 늘리는 게 교육혁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고영우 고려대 경제학과 부교수가 지난 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캠퍼스 우당교양관 앞 광장에 서서 국내 대학들의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대학에 대한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 현안 인터뷰
- ‘매칭이론’으로 大入문제 분석 고영우 고려대 경제학과교수

현재의 다양한 대입전형은
경제학적으로 효율성 낮아
경쟁매몰·학력저하 등 우려

등록금·정원규제 등 풀어서
고학력 아닌 고숙련 키워야
대학 입시제도 개선도 시급

좋은 대학 여러개 만들어서
대학간 경쟁 불러일으키고
학생에겐 더 많은 기회줘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왔다. 수능 날엔 출근 시간과 증권 개장이 한 시간씩 늦춰지고, 군사훈련과 비행기 이착륙이 잠시 중단되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온 나라가 대입을 위해 숨죽이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입시경쟁이 치열하고, 대입 관련 형평성·공정성에 모두 극도로 예민하다는 걸 직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이날을 위해 학생들이 매년 사교육에 쏟아붓는 돈만 9조 원이 넘는다. 그런데 이들이 막상 대학에 들어가면 어떤가. 무한 경쟁을 이겨낸 인재들이 모였다는 명문대조차 세계 유수 대학과 비교하면 경쟁력이 한참 뒤떨어진다.

입시 경쟁과 비례하지 않는 대학 경쟁력, 이 간극에 대해 고영우 고려대 경제학과 부교수는 “대학을 가는 이유가 ‘좋은 간판’을 따는 목적에 그치면 고등학교 때까지의 학업 경쟁은 과열되지만, 이후의 학업 경쟁은 저하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시경제학 모델 중 하나인 ‘매칭이론’을 국내 입시 문제에 적용, 분석한 연구로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다. 고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입시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론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는 게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선 대학에 대한 재정 투자가 지금보다 훨씬 늘어나야 한다”고 일갈했다. 지난 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캠퍼스에서 고 교수를 만나 경제학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대입 제도와 대학 경쟁력 강화 방안 등에 대해 들어봤다.

―‘매칭이론’을 대학입시 문제에 적용한 연구로 주목받았다. 매칭이론이 무엇인가.

“전통적으로 시장은 가격을 통해서 재화와 서비스를 분배하는 제도로 생각돼 왔지만, 현실에서는 가격이 자원 배분을 결정하는 데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대학입시에 등록금은 분명 중요한 요소지만, 이는 학생들이 대학진학을 결정하는 많은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매칭이론은 경제주체의 선호를 바탕으로 비(非)가격 요소를 이용한 자원 배분 방식을 연구하는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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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가 교육 문제를 연구하는 이유가 있을까.

“한국의 교육 문제는 매칭이론 연구에서 하나의 사례로 관심을 갖게 됐다. 매칭이론은 어떤 중앙기관이 있어서, 그 기관이 경제주체의 선호를 반영해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중·고등학교 학교 배정 시 교육청이 학생의 선호 및 기타 요소를 반영해 학교를 배정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학입시와 같이 중앙기관이 없는 경우 한정된 자원인 대학이 경제주체인 학생에게 어떠한 방법으로 ‘매칭’이 되는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했고, 사회에서 교육 문제가 가지는 중요성으로 인해 계속 관련 분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 입시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가장 큰 문제를 꼭 집어서 얘기하기는 힘들다. 대학입시의 특징은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갈 수는 없다는 데 있다. 고등교육의 목표가 무엇이냐에 따라 문제를 보는 시각이 달라질 것이다. 근본적으로 입시제도의 목적을 바라보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문제점도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교육 당국이 ‘미래형 대입제도’를 고민하고 있다. 그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바람직한 대입제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대입제도는 존재하기 어렵다. 예전에는 수능 한 번으로 대학 당락이 결정됐기 때문에 학생들이 흥미와 적성을 무시하고 입시경쟁에만 매몰되고, 대학 서열화로 대학 간의 경쟁이 없어진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이후 수시와 내신의 비중이 높아졌으나, 학생의 학력저하를 고민하는 대학이 늘고 최근 내신의 신뢰성과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즉, 어떤 제도를 시행하더라도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힘들다. 대학입시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은 좋은 대학에 가면 대학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되기 때문인데, 대학 간 계층화 현상이 심화할수록 대학 입학 이전의 학업 경쟁은 과열되고 대학 입학 이후의 학업 경쟁은 저하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입시제도 개선이라는 단기적인 목표보다 좋은 대학을 여러 개 만들어서 대학 간의 경쟁을 유발하고, 학생들은 한 번에 좋은 대학에 못 가더라도 다른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또, 대학입시에 정부가 일률적인 규제를 가하는 것보다, 대학이 선호하는 인재 유형에 따라 자율적으로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분산화된 대학 입시(Decentralized College Admissions)’란 연구논문에서 “다양한 대입 전형이 경제학으로 보면 효율이 낮지만, 사회적으로는 가치를 지닐 수 있다”고 말했는데, 무슨 뜻인가.

“앞서 얘기했듯이 예전처럼 수능점수와 같은 일률적인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할 경우 효율성과 공정성이 높지만, 학생들의 흥미와 적성을 무시하고 입시경쟁으로 내몬다는 비판이 있다. 그런 면에선 수시모집을 통한 입시가 사회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수시전형이 복잡해지고 내신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다시 효율성과 공정성에 대한 논의가 나오고 있다. 이 경우엔 예전과 같은 입시제도가 사회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다. 즉 입시제도의 효율성은 사회 전체에서 발생하는 효과를 모두 분석해야 답을 낼 수 있다.”

―현 고등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 대학생 1인당 교육비는 최하위권, 초등학생의 경우 최상위권으로, 대학생 1인당 교육비는 초등학생 1인당 교육비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대학 진학률은 70%를 넘는데, 우리나라에 고학력자는 많아도 고숙련자는 많지 않다. OECD 국제성인역량조사 자료를 활용한 연구들을 보면 고숙련 인력이 부족하다고 나온다. 고숙련 인력은 주로 고등교육에서 배출되므로 대학교육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사립대학의 비중이 80%에 육박하고 사립대학들이 대부분의 운영비를 등록금 및 자체 수입으로 충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2008년 이후 등록금 동결은 대학의 경쟁력을 하락시키는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학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투자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인가.

“재정이 중요하다. 등록금 부담을 적정 수준으로 완화·유지하고자 하는 정부의 노력을 비판할 수는 없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투입이 필요하다. 재정투입이 수반되지 않는 등록금 인상 억제는 대학의 재정 악화와 교육경쟁력의 후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학 현장에서 재정 악화의 여파가 눈에 띄게 드러나는 영역은 등록금 규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외국인 학생 수의 증가다. 적극적인 유학생 유치를 위해 한국어 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무분별하게 입학시켜 수업 분위기 및 강의의 질이 크게 하락하는 경우도 많다. 유럽 내 대학들의 경우 막대한 정부 재원이 투입된다. 등록금을 무조건 올리자는 말이 아니다. 등록금을 올리지 않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다른 방식으로 대학 재정을 늘릴 수 있어야 한다. 국가가 대신 전폭 지원하든지, 규제를 풀어 대학이 사업을 할 수 있게 하든, 방안이 있어야 한다. 재정 부족은 고숙련 인력의 배출을 힘들게 하고 대학에서 혁신이 나오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교육 당국의 대학에 대한 규제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나.

“대학에 대한 규제를 포지티브 방식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 대학들의 경우 등록금 규제 외에도 수도권 정원규제를 받고 있다. 많은 학생이 수도권에 위치한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지만 규제로 인해 정원을 늘릴 수 없기 때문에 입시경쟁이 치열해지고 사교육 수요를 과도하게 유발하게 된다. 더욱이 상위권 대학들이 밀집한 수도권 대학에 대한 정원규제는 기존에 수도권 지역에 자리 잡은 대학들에 진입장벽과 과점적 지위를 부여하는 효과가 있다.”

―지방대 위기도 심각하다. 이와 관련해선 해법이 있을까.

“대학교육의 상향평준화를 통해 대학 간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학생들의 수도권, 특히 서울 소재 대학에 대한 선호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수도권 대학이 누리는 ‘입지 프리미엄’이 중요한 요소다. 애초 시작부터 공정하지 않은 경쟁인 것이다. 대학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하되, 비수도권의 거점대학은 정부재정을 통해 지원 및 육성해 대학교육의 전반적인 상향평준화를 추구하고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도와야 한다. 향후 평생교육의 필요성이 증가함에 따라 대학들이 고등교육뿐만 아니라 평생교육 수요도 흡수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박정경 기자 verit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