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K 테러에 식량·에너지 위기까지… 아프간 ‘지옥의 겨울’ 닥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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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포커스 - 탈레반 장악 3개월… 아프가니스탄은 지금

“탈레반의 승리” 선언했지만
IS-K 테러·암살 54건 달해
정권 최대 위협으로 떠올라

국민 95%가 식량 부족 직면
경제난에 자녀들 매매하기도
우려대로 여성인권 급속 후퇴

오는 15일이면 이슬람 무장반군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지 3개월이 된다. 탈레반은 미군이 떠난 뒤 “우리가 승리했다”며 20년 만에 정권을 거머쥐었지만 상황은 생각대로만 흘러가진 않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치안과 경제다. 우선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간 지부 격인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의 테러 활동이 눈에 띄게 늘면서 탈레반 정권의 최대 위협으로 떠오른 상태다. 테러와 게릴라전 등 공격을 일삼던 탈레반이 권력을 장악한 뒤에는 같은 수법으로 IS의 공격을 받고 있는 셈이다. “공격과 수비가 뒤바뀌자 탈레반이 맥을 못 춘다”는 말도 나온다.

경제도 최악으로 치닫고 피해가 고스란히 아프간 국민의 몫이 되면서 인도적 위기도 커지고 있다.

◇IS와 ‘비밀 전쟁’ 벌이는 탈레반 = 탈레반은 지난 8월 15일 정권을 재탈환한 뒤 “이제 모든 전쟁은 우리의 승리로 끝났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후 IS-K의 테러와 공격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탈레반은 속수무책인 모습이다. 국제 분쟁 분석기업 엑스트랙에 따르면 지난 9월 18일부터 10월 28일까지 IS-K는 아프간에서 자살폭탄 테러와 암살 등 최소 54건의 공격을 감행했다. IS-K가 힘을 키워가면서 “6∼12개월 이내에 미국 등 다른 국가를 목표로 한 공격도 실행할 수 있을 것”(콜린 칼 미 국방부 정책차관)이라는 예측까지 나온다.

이에 대해 영국 BBC는 10일 “탈레반이 IS와 암울하고 피비린내 나는 ‘비밀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탈레반은 겉으로는 IS-K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탈레반 정권하에서 치안 공백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으로 분석되지만 실제로는 IS-K의 본거지인 잘랄라바드를 중심으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다만, IS-K는 아직까지는 아프간의 어떤 곳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미군 무기를 갖춘 7만 명의 탈레반 대원에 비해 IS-K 조직원들의 규모는 몇천 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IS-K가 다른 중앙아시아와 파키스탄 출신 대원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엔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아프간의 옛 정보 요원들과 군인들이 탈레반을 피해 IS-K에 합류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하기도 했다.

IS는 미국과 평화협상을 체결한 탈레반을 배신자로 여기고, 탈레반은 IS를 이단 극단주의자로 치부한다. 많은 아프간인은 IS-K의 공격이 빈번해지는 것을 놓고 “새로운 게임의 시작”이라고 부르고 있다. 잘랄라바드에서 IS-K의 공격으로 동생을 잃은 형 샤드 누르는 “탈레반이 정권을 잡았을 때 우린 살인과 테러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아주 작은 기대를 가졌지만 지금은 IS라는 이름의 새로운 현상에 맞닥뜨렸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식량·에너지난에 여성탄압까지…“다가오는 겨울, 아프간인들에겐 지옥일 것” = 탈레반을 향한 IS-K 등 무장 조직들의 테러와 공격이 계속되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아프간 국민이 겪고 있다. 포린폴리시 칼럼니스트인 린 오도넬은 “강도질과 납치, 심지어 살인까지 가중되며 아프간의 끔찍한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프간 수도 카불에 사는 한 아프간인은 “납치와 강탈이 일상적인 일이 됐다”며 “임금을 받지 못하는 탈레반 대원들이 현금을 벌기 위해 돈을 받고 대신 살인을 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히 아프간인 대부분이 빈곤과 굶주림에 직면해 인도주의적 위기가 심각하다. 이에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일단 인도주의적 지원은 이어가기로 입장을 선회했는데,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은 2300만 명 이상의 아프간인을 도와야 하는 상황이다. 데이비드 비즐리 WFP 사무총장은 “아프간 국민의 95%가 충분한 식량을 갖지 못하고 있고 2300만 명은 기아로 내몰리고 있다”면서 “앞으로 6개월은 재앙, 지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돈이 없어 생후 6개월도 안 된 딸을 다른 가족에게 파는 일까지 보도되고 있다. 딸을 500달러(약 59만 원)에 팔았다는 한 엄마는 “다른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어 딸을 팔아야 했다. 밀가루도, 기름도 없다.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탈레반이 재집권하며 가장 우려됐던 여성 인권 역시 크게 후퇴하고 있다. 여권 신장 활동을 하던 프로잔 사피(29) 등이 끝내 탈레반에 피살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한 여경은 퇴근길에 오토바이를 탄 세 남성으로부터 두 눈을 흉기에 찔리는 끔찍한 테러로 실명했다.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는 탈레반의 초기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방송국에서는 여성 앵커와 기자들이 모두 쫓겨났고 공무원도 전원 남성으로 교체됐다. 여성의 ‘일 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는 사실상 사라졌다.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3개월 만에 아프간은 “탈레반 디스토피아”가 됐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