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팥죽·양갱·붕어빵… 은근 달콤한 ‘전통의 情’

  • 문화일보
  • 입력 2021-11-1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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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기뜬정 수제 양갱


■ 이우석의 푸드로지 - 팥

팥 수확기… 알갱이 속 가득 차
사포닌· 칼륨· 비타민B도 풍부
이뇨작용 돕고 부기 빼는 효과

해팥 불리고 쑤어 동짓날 먹어
은근한 맛의 단팥죽 어르신 별식

팥맛 비비빅 ‘어른 아이스크림’
팥칼국수 남도 별미로 인정받아


팥 수확기다. 뜨거운 여름을 보낸 팥 알갱이 속 가득 찬 단맛을 거두는 때이다.

해팥을 불리고 쑤어 동짓날 팥죽으로 먹었다. 전통 한과나 떡을 만들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팥이다. 팥은 전통 한식에서 단맛을 담당하는 식재료로 쓰였다. 설탕이나 꿀이 귀하던 시대니 팥이 품은 은은한 단맛은 꼭 필요한 감미료였다. 우리 조상은 콩을 재배하는 데 더 심혈을 기울였다. 맛을 내는 장을 담그고 단백질 공급에 필요한 콩이다 보니 팥은 아무래도 콩에 밀렸다. 콩팥의 순서나 콩쥐 팥쥐 이야기에도 살짝 그 존재감이 드러난다.

팥은 콩과다. 쌍떡잎식물 장미목 콩과 한해살이풀의 열매다. 중국이 원산지이지만 중국에선 팥을 콩, 그중에서 훙더우(紅豆)로 부른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중국어로 번역하기 어려워 보인다. 팥을 여러모로 잘 쓰는 일본에선 아즈키라 한다. 외국에선 그냥 레드빈(red bean)이다. 스페인어에서도 후디아스 로하(judias roja)로 같다. 붉은 콩이란 의미다. 주로 동아시아에서 많이 먹지만 라틴 음식에도 즐겨 쓴다. 특히 멕시코 음식에 많이 들어간다. 부리토(burritos)나 프리홀(frijol) 등에 강낭콩이나 레드빈을 쓴다.

사포닌과 칼륨 성분이 풍부한 팥은 이뇨 작용에 좋고 부기를 빼는 효과가 있다. 피로 해소와 항노화에 좋은 비타민B 성분도 많다. 구수하고 특유의 향이 있어 팥을 좋아하는 이들은 사철 팥빙수와 팥죽을 번갈아 즐긴다.

우리나라에선 예로부터 즐겨 상식했다. 팥을 삶고 갈아 팥고물을 내고 팥소를 만들거나 앙금을 만들어 다양한 요리에 첨가했다. 팥은 씹을수록 달콤한 맛이 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떡, 중국 월병, 일본 화과자에 검고 흰 팥소나 팥고물을 썼다. 근대에 들어선 일본이 양과자 기법을 도입해 곱게 갈아 침전시킨 앙금으로 소를 만들어 떡이나 빵에 넣었는데, 이게 동북 아시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일제강점기 단팥빵을 앙코빵이라 불렀는데 이게 바로 팥앙금을 말한다. 앙금은 빵뿐 아니라 다양한 떡과 과자에 사용됐다. 찹쌀떡과 바람떡, 일본 모나카에도 들어간다. 팥 알갱이 질감을 살린 단팥소도 즐겨 쓴다. 일본 국민 만화캐릭터 도라에몽이 즐겨 먹는다는 도라야키에도 들어간다.

양갱(羊羹) 역시 팥을 쓴 음식이다. 양갱의 이름은 양 국물이란 뜻에서 나왔다. 원래는 중국에서 양의 선지와 그 고깃국물을 굳혀 만든 음식인데 일본 승려가 전하며 대신 팥과 한천을 썼다. 이후 설탕이 가미되면서 달콤한 전통 디저트가 됐다.

경주 황남빵, 풀빵, 붕어빵, 국화빵, 호두과자 등 예전부터 먹던 간식거리에도 팥이 주된 재료로 들어간다. 달게 팥죽을 쑤어 밀가루 풀과 함께 틀에 부어 구워내면 그 맛이 좋았던지 오랜 세월을 두고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대표적 풀빵 종류인 붕어빵은 요즘에도 인기가 높다. 노점이 사라진 현대에는 붕세권(붕어빵을 살 수 있는 지역)이란 말이 떠돌 정도로 사람이 많이 찾는다. 젊은층의 취향을 반영해 팥 대신 슈크림 등이 들어간 붕어빵도 인기 견인에 한몫하고 있는 모양새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한국인에게 팥은 홍시처럼 정(情)적인 의미가 서렸다. 썩 달지 않아 은근한 맛을 내는 단팥죽은 노모나 조모에게 봉양하기 좋은 별식이며 부드러운 양갱 역시 그렇다. 찐빵은 또 안 그런가. “단팥죽? 좋지”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궁사 서향순. 대한민국 여성으로 첫 금메달을 목에 건 직후 그는 전 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보는 가운데 가족과 금메달 축하 통화를 하던 중 오빠가 단팥죽을 사준다고 하니 생글대며 대답한 말이다.

이처럼 팥죽은 당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별미로 사랑받았다. 요즘은 팥빙수, 팥 아이스크림과 앙버터(버터와 팥앙금을 섞은 것) 크림빵 등으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팥 맛이 나는 비비빅은 ‘어른 아이스크림’의 원형이 됐고, 팥 칼국수는 남도의 별미로 여전히 인정받고 있다. 팥은 여전히 알 듯 모를 듯 우리 주변에서 ‘K-단맛’을 지켜오고 있는 감미료다.

호빵 기계가 편의점에 들어선 요즘, 마침 갓 구워낸 붕어빵 한 봉지를 사서 호호 불어 뜯어먹으며 초겨울 길을 걷는다. 생각해보니 다음 달이면 동짓날이다. 시장에 해팥이 나왔나 한번 둘러봐야겠다.

놀고먹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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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서 먹을까

◇전주 주마본 = 새알팥죽이다. 동짓날 먹는 그 고소하고 달콤한 팥죽을 커다란 사발에 가득 퍼준다. 새알도 나이와 상관없이 수북이 넣었다. 존득하고 부드러워 진한 팥죽과 잘도 어우러진다. 김치가 맛있는 집이라 함께 곁들여 겨울의 별미로 즐길 수 있다. 전주 완산구 용머리로 36. 8000원.

◇횡성 안흥찐빵 = 가장 유명한 찐빵 골목이 횡성 안흥에 있다. 1970년대 여행자들이 국도변에서 막걸리 발효 찐빵 맛을 보고 전국에 알렸다. 단맛보다 팥의 고소한 맛을 살렸다. 숙성 반죽으로 쫀득한 식감을 내는 것도 특징. 안흥찐빵합자회사는 찐빵의 명성을 지키려 세운 주민 기업이다. 횡성 안흥면 안흥로 20. 500원.

◇서울 기뜬정 = 고급스러운 수제 양갱을 맛볼 수 있는 집이다. 팥앙금을 보드랍게 갈아 한천과 함께 굳혔다. 씹지 않고 혀로 녹여 먹어도 될 만큼 부드럽다. 모양도 곱다. 밤양갱은 길쭉한 밤 모양, 감귤 맛을 내는 한라봉 모양도 있다. 롯데와 현대 등 시중 백화점에 입점해 있다. 1개 3000원.

◇포항 철규분식 = 구룡포초등학교 앞에서 찐빵으로 전국구로 이름을 떨쳐온 분식 노포. 갓 쪄내 따끈한 빵을 한입 베어 물면 촉촉한 팥소가 흘러나온다. 고소한 밀가루 빵 안에 뜨거운 단팥죽이 들었다고 설명하면 이해가 쉽다. 포항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길 62-2. 찐빵 2개 1000원, 단팥죽 2500원.

◇대구 적두병 = 이름하여 팥떡이다. 하지만 모양은 쿠키나 월병을 닮았다. 경주 황남빵과 조리 원리는 비슷하지만 좀 더 투박하게 생겼다. 팥소를 곱게 갈아 반죽 안에 넣고 구웠다. 은근한 단맛이 고소한 과자와도 잘 어울린다. 일일이 반죽과 소를 빚어 만든다. 대구 중구 달성공원로8길 10 달성빌딩. 팥떡 4개 2500원. 양갱 1개 500원.

◇목포 한마을떡 = 목포근대역사골목에서 유명한 노포 떡집이다. 달콤한 팥소를 넣은 쑥찹쌀떡 등 떡 메뉴도 유명하지만 직접 쑨 단팥과 콩고물을 잔뜩 올린 눈꽃빙수도 빼놓을 수는 없다. 직접 원두를 볶고 내리는 커피숍도 함께 운영하니 동서양의 디저트와 차 문화를 한곳서 즐길 수 있다. 목포 영산로 14-2.

◇군산 이성당 = 전국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국내 최고(最古) 빵집이다. 역사가 110년을 넘었다. 단팥빵이 대표 메뉴. 얇고 부드러운 빵피 속에 달콤한 팥소가 빼곡히 들었다. 빵도 팥소도 부드러워 목이 메지 않는다. 단팥빵과 야채빵은 본관에서만 판다. 군산 중앙로 177. 1700원.

◇대구 스위트앤드 = 재치 있는 구성의 ‘옛날빙수’가 올 한 해 SNS를 뒤흔들었다. 짜장면과 똑같이 만든 빙수다. 면발은 아이스크림으로 만들고 짜장은 단팥으로 연출해 ‘중국집 그릇’에 담았다. 망고 단무지와 흰떡 양파도 따로 준다. 대구 중구 동성로2길 12-36 2층. 8500원.

◇영월 동굴칡국수 = 고씨굴 앞 이름난 칡국숫집에서 파는 감자떡이다. 동부팥을 직접 불리고 쒀 소로 쓴다. 설탕 대신 소금을 넣어 팥 고유의 은근한 단맛을 이끌어낸 소가 고소하고 달콤하다. 기계 대신 손으로 일일이 빚어내니 많이 사가기 오히려 미안할 정도다. 영월 김삿갓면 영월동로 1121-10. 8개 5000원.

◇융태행 제과점 = 역사가 50년이 넘는 화상(華商) 노포다. 견과류(빨간색), 대추(보라색), 팥(녹색) 등 3가지 월병을 파는데 정통 월병의 맛이 요즘 화려한 디저트 못지않게 특별하다. 가곡물만 이용해 만들어 건강을 생각한 별미로 챙겨 먹기에 좋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1길 26-9. 4개들이 6500원.

◇진해 팥이야기 = 진해 마크사 거리를 지켜온 팥죽집. 오직 팥 테마로 다과를 파는데 오히려 젊은층에 SNS 맛집으로 인기가 높다. 좋은 팥을 골라 불리고 정성껏 쒀 죽과 빙수를 만든다. 고즈넉한 내부 분위기가 예스러운 외부 풍경과 잘 어울린다. 창원 진해구 편백로 18-2. 팥빙수, 단팥죽 각 5000원.

◇대구 근대골목 단팥빵 = 대구 본점뿐 아니라 유통채널에서도 소문난 단팥빵 전문점이다. 단팥크림빵이 인기가 좋다. 젊은층의 입맛을 고려해 팥뿐 아니라 크림까지 함께 넣었다. 두툼하게 채운 단팥과 크림이 고급스러운 단맛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준다. 대구 중구 남성로 7-1 1층. 3000원.

◇고양 덕수다방 = 살짝 외진 곳에 있지만 일부러 찾는 이가 많다. 수제 팥 고명을 얹은 빙수도 맛이 좋고 즉석에서 구워주는 붕어빵도 일품이다. 날마다 테마에 맞춰 음악을 들려주는 등 분위기도 좋다.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로 104-24 1층. 붕어빵 500원, 팥빙수 5000원, 고운팥죽 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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