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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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겨울 동안 먹을, 혹은 일 년 내내 먹을 김치를 담그는 김장철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김치와 김장을 안다. 그런데 이 말이 가리키는 대상과 그 개념은 알지만 이 말의 어원을 캐는 것은 쉽지 않다. 엉터리 어원론자들은 김치를 담가 장독에 보관하니 앞글자를 따서 김장이 됐다고 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김치의 발달 과정만큼이나 김치와 김장의 이름 변화는 무쌍하고도 복잡하다.

김치가 중국 음식이라고 우기는 것은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지만 그 이름이 한자어에서 왔다는 것은 반박하기 어렵다. 김치는 옛 문헌에 ‘딤채’로 나타나는데 이는 채소를 소금물에 담근다는 뜻의 ‘沈菜(침채)’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것이 ‘김치’가 되기까지는 실로 많은 변화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 과정 중 가장 극적인 것은 본래 ‘짐치’인데 우리 조상들이 집단 최면에 걸려 ‘김치’로 바꾼 것이다. ‘기름’을 ‘지름’으로 발음하는 방언이 있다 보니 ‘짐치’도 ‘김치’의 잘못된 발음으로 본 것이다.

김장은 김치를 많이 담가 보관하는 것과 관련이 있으니 아무래도 한자 ‘藏(감출 장)’과 관련을 지어야 하는데 그렇더라도 ‘김장’은 무척이나 어색하다. 자연스러운 한자어라면 ‘沈藏(침장)’일 텐데 이것이 ‘김장’으로 바뀌기는 매우 어렵다. 결국 ‘김치’에서 한 글자를 떼어내 한자와 결합해 ‘김장’이 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오늘날 ‘짐치’와 ‘짐장’이란 말을 쓴다면 이는 사투리를 쓴다고 핀잔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것은 김치와 김장의 사투리 발음일 수도 있지만 본디 이름이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일 수도 있다. 음식의 이름에 이토록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김치가 우리에게 친숙하고도 중요한 음식이란 증거이기도 하다. 만약 중국에 우리만큼 다양한 김치와 변화무쌍한 이름이 있다면 그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 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