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잘 나가던’ 소녀의 홀로서기… ‘나 답게’를 외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주철환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 주철환의 음악동네 - CL ‘렛 잇’

‘일밤’(MBC)이 잘나갈 때 ‘퀴즈! 20년 차이’라는 고정코너가 있었다. 잘나가는 연예인들이 예능의 역사를 퀴즈로 풀어보는 포맷이다. 이를테면 후배 팀에는 은방울 자매의 ‘마포종점’에 나오는 비행장 이름(정답은 여의도)을, 선배 팀에는 H.O.T. 사진을 보여주고 멤버 이름을 묻는 식이다. 돌아보니 30년 전 일인데 시청률이 잘 나온 날 아침엔 ‘내가 제일 잘나가’는 줄 착각도 가끔 했던 것 같다.

2NE1(투애니원)이 ‘내가 제일 잘나가’를 발표한 지 딱 10년이 지났다. 그룹의 리더인 CL(이채린)은 열다섯 살 때(2006) 자신이 만든 CD를 들고 YG엔터테인먼트 사옥 앞에서 무작정 기다렸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무작정은 무계획과 다르다. 될 때까지 밀어붙인다는 투지와 인내의 단어다. ‘꼭 들어봐 달라’는 간절함은 마침내 기획사 대표에게 전달됐고 가능성을 진단받은 CL은 그날부터 연습생이 됐다.

잘나가던 이십대를 보내고 서른 살이 된 CL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팀 해체 후 발표(2021)한 노래 ‘렛 잇’(Let it)의 가사로 짐작해본다. ‘오늘도 계속해서 걷긴 걷는데/ 제자리인 것 같을까/ 매일 또 나는 왜/ 이제 누가 또 뭐랬는지/ 누가 또 뭐래는지 (중략) 걱정하지 마 흘러가면 돼/ 언제까지나 느낌대로 해/ 후회는 할일 없이 언제나 보란 듯이/ 난 나답게 항상 내가 느낀 대로 해’

2NE1(투애니원)의 NE는 ‘새로운 진화’(New Evolution)의 약자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나답게 산다는 건 가능한 꿈일까. ‘피아노맨’으로 유명한 빌리 조엘의 ‘있는 그대로의 그대’(Just the Way You Are)는 ‘날 기쁘게 해주려고 달라지지 마(Don’t go changing to try and please me) 좋은 시절 보냈으니 힘든 시절도 함께할게(I took the good times, I’ll take the bad times)’로 시작해서 ‘그냥 대화 나눌 수 있는 사람이면 족해(I just want someone that I can talk to)’로 끝난다. 공식적으로 4번 결혼한 빌리 조엘은 나중에 이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는데 이유가 첫 번째 아내였던 엘리자베스 웨버를 위한 생일선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나.

토요일(11월 6일) 아침 ‘인생 송(song)’이라는 자막에 홀려 화면을 보니 ‘사연 있는 쌀롱하우스’(JTBC)라는 프로에서 4전 5기로 유명한 챔피언 홍수환과 가수 옥희 부부가 ‘내 곁에 있어줘요’(Let it be me)를 부르고 있었다. ‘당신과 만난 날은 축복이죠(I bless the day I found you) 당신 곁에 머물고 싶어요(I want to stay around you)’ 형제듀오 에벌리 브러더스가 1960년에 발표한 곡이다. ‘렛’(Let)으로 시작하는 노래 중 ‘겨울왕국’ OST ‘렛 잇 고’(Let it go)는 CL의 다짐과도 맥이 닿는다. ‘그 완벽한 소녀는 사라지고(That perfect girl is gone) 여기 한낮의 빛 속에 나는 서 있다(Here I stand in light of day)’ 엄혹한 겨울왕국 속에서 자유인으로 산다는 건 뭘까. ‘난 자유야(I’m free) 그냥 가게 내버려 둬(Let it go, let it go)’

‘렛 잇 그로’(Let it grow)라는 제목의 두 노래에도 마음에 품어둘 만한 가사들이 나온다. 환경의 위기를 경고한 ‘렛 잇 그로’(애니메이션 ‘로렉스’ 삽입곡)에는 ‘뿌리지 않으면 거둘 수 없다’(You can’t reap what you don’t sow), 에릭 클랩턴의 동명의 곡에는 ‘태양 아래서나 눈 속에서나 사랑을 키워라’(In the sun and in the snow/ Love is lovely/ let it grow)가 울림을 준다. ‘잘나가는’ 사람은 결국 ‘잘나가던’ 사람이 된다. 결론은 뭘까. 비틀스가 답을 준다. ‘마음에 상처 입은 세상 모든 사람이 동의할 때 그들은 답을 얻게 될 거야. 렛 잇 비’(And when the broken hearted people living in the world agree/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작가, 프로듀서·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