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토끼 모는 ‘상왕’ 이해찬… 산토끼 잡는 ‘차르’ 김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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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1-11-15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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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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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adership 클래스… ‘킹메이커’ 이해찬 - 김종인의 리더십

피도 눈물도 없는 결단력·카리스마… 대권 창출의 키맨

- 더불어민주당 ‘이념적’ 이해찬
재야운동권 ‘큰형님’의 선명성
20년 집권론 통해 지지층 결집
21代 총선 이끌며 180석 巨與

운전대 잡으면 강한 드라이브
측근 내치는 시스템 공천 결단
‘상왕의 철권통치’ 라는 평가도

- 국민의힘 ‘실용적’ 김종인
경제민주화로 朴 당선 이끌고
민주당선 이념정당 탈피 전략
지난 4월 보선선 野 압승 견인

위기마다 구원등판 중도 포용
거침없는 결정으로 판 흔들기
자기 뜻은 끝까지 관철 ‘차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맞대결만큼이나 내년 대선에서 주목받는 매치업(match up)이 있다. 바로 여야의 ‘킹메이커’로 불리는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맞대결이다. 이 전 대표는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 2017년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이바지했고, 김 전 위원장은 2012년 경제민주화 가치를 내걸어 박근혜 전 대통령 승리에 일등공신이 됐다.

물밑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기간 이 후보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했고, 선거대책위원회에도 상임고문으로 이름을 올렸다. 김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 직을 맡을 것이 유력하다. 이번 대선이 사상 초유의 ‘0선’ 후보 간의 대결로 치러진다는 점에서 두 백전노장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전적은 장군멍군이다. 이 전 대표는 지난해 4월 21대 총선을 이끌며 민주당을 180석 거여(巨與)로 탈바꿈시켰다. 반면 올해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선 김 전 위원장이 선대위원장을 맡은 국민의힘이 압승을 거뒀다. 두 인사는 닮은 듯 다른 리더십으로도 흥미를 끈다. 내년 대선을 관전하는 또 하나의 포인트다.

◇공통점 : 통찰력·결단력·카리스마 = 오랜 정계경력이 바탕이 된 두 인사의 통찰력은 가장 큰 공통점이다. 이런 통찰력이 바탕이 된, 피도 눈물도 없는 결단력과 카리스마는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우선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엔 이 전 대표의 ‘자기 사람 내치기’가 있었다는 평가가 많다. 이 전 대표는 시스템 공천을 강조했고 결과적으로 측근으로 꼽히는 김현 전 의원과 이화영 전 경기 평화부지사, 이강진 전 세종시 정무부시장 등이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선거마다 공천 불복 등 혼란을 겪었던 민주당은 사실상 처음으로 안정적인 총선을 치렀다.

강력한 카리스마도 이 전 대표의 상징이다. 민주당 대표 시절 윤미향 의원의 정의기억연대 회계부정 의혹을 두고 비판 여론이 일자 “각자 개별적으로 의견을 분출하지 말라”며 함구령을 내렸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에 기권표를 던진 금태섭 전 의원 징계를 두고도 “당내에 이견이 있는 것으로 비치는 건 좋지 않다”며 단속했다. 이러한 스타일을 놓고 ‘상왕’ ‘철권통치’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있지만, 일각에선 열린우리당의 몰락을 지켜본 이 전 대표의 충심이라는 반론도 있다.

김 전 위원장도 거침없는 결정으로 정치판을 흔들어왔다. 20대 총선에서 이 전 대표와 함께 강성 친문(친문재인) 지지자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정청래 의원을 공천 배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 의원은 격하게 반발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승리를 위한 선택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밀어붙였다. 이른바 비례대표 2번 ‘셀프 공천’ 파동 땐 칩거하며 당시 문 대표가 직접 종로구 구기동 자택을 찾아 복귀를 요청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엔 각종 현안마다 주류 세력과 부딪히며 2017년 3월 의원직을 스스로 내던졌다.

2020년 미래통합당은 21대 총선에서 대패하자 김 전 위원장을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하려 했다. 하지만 당내 반대와 임기를 4개월로 한정했다는 점을 문제 삼아 취임을 거부했다. 결국, 4·7 재·보궐선거까지 위원장직을 보장받고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이후 1970년대생 경제 전문가의 대선 출마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등 대대적인 혁신을 강조하며 반발에 부딪힌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등 실정을 공략해 4·7 재·보선을 승리로 이끈다. 제 뜻을 끝까지 관철하고 보는 스타일로 ‘여의도 차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여기에 정세를 읽는 통찰력과 간결한 메시지도 두 사람의 공통점으로 꼽힌다.

◇차이점 : 이념적 vs 실용적 = 두 사람 리더십의 가장 큰 차이는 인사 스타일에서 드러난다. 이 전 대표는 재야 운동권의 ‘큰형님’으로 불릴 만큼 진보 색채가 강하다. 21대 총선은 그의 이념적인 인사 방식을 가장 잘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2019년 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를 겪은 민주당은 21대 총선에서 검찰개혁 완수를 화두로 던졌다. 이 전 대표는 조 전 장관 시절 법무검찰개혁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용민 의원과 ‘조국백서’ 추진위원회에 이름을 올렸던 김남국 의원의 영입을 주도했다. 여기에 사법행정권 남용을 비판하며 법원개혁을 주장한 이수진·이탄희·최기상 의원 등 판사 3인방을 영입해 전략공천까지 단행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앞서 2019년 말엔 공수처 설치 법안과 ‘임대차 3법’ 등 정치권 안팎의 큰 저항을 받았던 쟁점 법안 처리도 밀어붙였다. 모두 민주당 강성 지지층이 처리 강행을 요구했던 법안들이다. 이 전 대표는 지난해 8월 퇴임기자회견에서 거대 여당의 입법독주라는 지적에 대해 “소수자 의견을 충분히 존중하고 반영하면서도 다수의 의견을 채택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가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20년 집권’ 주장도 이념적인 성향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도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뿌리내리려면 적어도 20년은 재집권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진보와 개혁이라는 이념을 앞세워 당과 지지층을 결집하는 이 전 대표 특유의 리더십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김 전 위원장은 이념을 초월한 실용주의자다. 2011년 말 새누리당은 외연 확장 적임자로 김 전 위원장을 낙점하고 러브콜을 보냈다. 그는 2012년 박근혜 대선 캠프에 합류해 경제민주화 공약 설계를 맡았다. ‘좌클릭’이라는 거센 비판에도 경제민주화를 주요 공약으로 밀어붙였고, 중도층의 표를 흡수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을 이끌었다.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당적을 옮겨서도 그의 실용주의적 면모는 이어졌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주도했던 김현종 전 대통령 외교안보특별보좌관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등을 지낸 경영학자인 최운열 전 의원 등 경제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했고, 이념 정당이라는 이미지 탈피를 위해 보수적인 경제 정책을 대거 흡수하는 전략을 펼쳤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 전 대표는 이념적인 리더십으로 지지층을 결집하는 능력이 있었고, 김 전 위원장은 실용적인 지도력으로 중도층을 껴안는 데 집중하는 스타일”이라고 평가했다.

조직 장악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이 전 대표는 친노(친노무현)·친문 좌장답게 직접 운전대를 잡고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스타일이다. 이번 대선에서 상대적으로 친노·친문 세력과의 접점이 적은 이 후보가 이 전 대표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2017년 대선 후보 경선과 2018년 경기지사 후보 경선을 거치며 친문 지지층과 격렬하게 부딪혔던 이 후보는 이 전 대표의 지원으로 수차례 위기를 넘겼다. 황교익 씨의 경기관광공사 사장 내정 논란 때 이 전 대표가 직접 전화를 걸어 사태를 수습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반대로 김 전 위원장은 원외에 머물다가 위기 때 등판하는 구원투수의 성격이 강하다.

손우성 기자 applepi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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