內戰 상처 아물도록 재건 돕는 ‘파란 베레모’… 세계 12곳서 9만명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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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포커스

- 내달 ‘서울 유엔 평화유지 장관회의’ 계기로 본 PKO의 세계

1993년 상록수부대 파견 이후
현재 한국군 PKO 650명 활동
남수단·레바논서 인도적 구호
휴전감시뿐 아니라 선거지원도

1994년 르완다 주민간 살육戰
대원들은 무력 사용못해 후퇴
개입확대 R2P채택했지만 재발
“국제사회 이해관계도 문제” 지적

1993년 6월 29일 오후 3시. 파란 베레모를 쓴 상록수부대 선발대 60명은 서울공항에서 환송식 직후 소말리아로 향했다. 한 달 후인 7월 31일 190여 명의 후발대가 합류했다. 250명에 달하는 평화유지군이 소말리아의 평화를 위해 나선 것은 우리나라가 유엔에 가입한 지 약 2년 만의 일로,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을 위해 해외로 향한 우리나라 첫 파견 부대였다. 이후 18일 현재 650명에 달하는 우리 군인이 PKO 활동을 위해 해외에 나가 있다.

PKO 분야 최고·최대 회의로 155개국의 외교·국방장관 등 800여 명이 참여하는 ‘2021 서울 유엔 평화유지 장관회의’가 다음 달 7∼8일 서울에서 열리는 가운데, 유엔의 도움을 받던 한국이 이제는 세계의 PKO 활동을 이끄는 위치에 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파란 헬멧’ ‘파란 베레모’로 상징되는 PKO의 세계를 짚어 본다.

◇PKO 핵심은 중립

현재 해외에 파견돼 PKO 활동을 하는 우리 부대는 한빛부대와 동명부대가 있다. 한빛부대 부대원 300여 명은 50여 년간의 내전 끝에 수단으로부터 독립한 남수단의 보르 지역 재건을 도우며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고 있다. 레바논에 파견된 동명부대 부대원 350여 명은 레바논과 이스라엘 간의 정전 감시 임무를 하고 있다.

PKO는 ‘Peace Keeping Operation’의 약자로, 국제 평화를 유지하는 활동으로 풀이된다. 내전 등 갈등 상황에서 투입되는 것이 아닌 내전 후 재건 등을 목적으로 하며 중립적 입장에서 민간인 보호와 치안 유지 등 평화적 활동을 한다. 무력을 활용한 분쟁 종결을 목표로 하지 않고 교전 임무도 담당하지 않기에 의무, 공병부대 등 비전투병이 중심이다. 해외 파병교육을 담당하는 국방대 국제평화활동센터의 김효수 센터장은 이날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PKO 참여는 국제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유사시 국제사회의 지지 기반과 명분을 축적하는 기능을 한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현재 전 세계 PKO가 활동 중인 곳은 남수단을 포함해 말리와 키프로스, 코소보 등 12개 지역. 인원은 9만 명에 달한다. 이들이 가장 많이 파견된 곳은 남수단으로 1만8106명이 파견돼 있다. PKO의 주요 활동으로는 먼저 휴전 감시가 있다. 가장 전통적이고 기본적인 기능으로, 경무장한 평화유지군이 분쟁지역에 완충지대를 설정하고 순찰 등을 통해 휴전 또는 정전의 이행상황을 감시한다. 다음으로는 인도적 구호활동 지원인데 도로상 지뢰 제거, 수색, 통신서비스 제공 등을 통해 구호물자 이송도 보호한다. 무장 해제와 동원 해제를 시행하고 감시하는 업무도 주요 업무로 꼽힌다. 이외 선거 시행과 감시도 주요 업무다. 특히 선거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갖추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교통, 통신 등 기능적 지원을 하고 선거관리 당국의 인원, 시설 장비를 보호하고 선거 절차를 감시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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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입 한계… 르완다서 뼈아픈 기억

PKO 활동은 ‘자위(Self defence)’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이행 이외에는 무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내용을 핵심 수칙으로 한다. 무력 사용은 자기방어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수준으로 한정된다.

PKO의 한계로 주로 언급되는 대표적 사례는 1994년 르완다에서의 일로, 당시 르완다 남부 도시에 있던 PKO 대원들은 후투족이 무자비한 살육을 저지르며 기지 쪽으로 진격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온 뒤 급히 철수했고 남은 투치족 주민 2000여 명은 그날 모두 후투족에게 살해당했다. 이후 유엔은 대학살 방지를 위한 특별 고문직을 설치했고 치안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국가에서 유엔의 인도주의적 개입을 확대하는 보호책임(R2P)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2000년 시에라리온, 2012년 콩고민주공화국 등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계속됐다.

유엔 PKO 활동에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꼽히는 건 ‘개입’에 관한 것이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소 안보전략실장은 이날 통화에서 “PKO 활동에서 가장 큰 한계로 지적되는 것은 ‘주권’의 문제”라면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국민을 지켜야 하는 국가가 오히려 국민의 생명을 해치고 인권을 짓밟는 경우 국제사회가 개입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유엔이 무력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R2P가 만들어졌으나 국제사회의 개입을 둘러싼 주권 문제 해결이 난제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유엔 안보리 회원국 간의 이해관계가 PKO 활동에 제약을 건다는 지적도 있다. 시민 안전이나 평화 유지의 목적보다는 국제사회의 관계가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김효수 센터장은 “최근 PKO 활동의 가장 큰 문제는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국내 문제에 더욱 몰입하고 다자주의를 회피함으로써 국제분쟁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협력에 소극적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PKO의 효용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파병 부대들의 임무 수행 제약을 없애고 유엔 임무단장의 지휘통제 권한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단 아비에이 지역의 경우 유엔 아비에이 임시보안군(UNISFA)이 지역 평화를 감시하고 비무장화 임무를 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지역 내 갈등과 인도주의적 위기는 여전한 상황이다.

이에 관해 한 전문가는 “PKO 활동의 목표는 결국 PKO가 필요 없을 정도의 정상 국가가 되도록 돕는 것인데 임무가 장기화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러한 목표가 달성되기에 현재 국제사회는 각국의 이해관계로 복잡하게 얽혀 있고 유엔 PKO는 무력하다”고 꼬집었다.


◇2021 서울 유엔 평화유지 장관회의 = 오는 12월 7일부터 8일까지 열린다. 올해로 4회차며 아시아에서 최초로 개최되는 이번 회의는 평화유지활동(PKO) 분야 최대 규모 회의로서 국제 평화와 안정을 위해 각국의 의견을 모으고 공동의 행동을 촉구하는 자리다. 155개국 국방·외교장관과 국제기구 대표, 민간 전문가 등 800여 명이 참여할 예정으로 특히 선진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스마트 캠프’ 전시회와 첨단 PKO 장비 전시회 등도 함께 개최된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