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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병종의 시화기행 게재 일자 : 2021년 11월 23일(火)
부지런 떨어도 외피만 훑게 될 뿐… 로마, 너는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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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종, 추색(秋色), 49×38㎝, 혼합재료에 채색.


■ 김병종의 시화기행 - (96) 로마의 시간 여행과 필모그래피

세 번째 방문… 生의 마지막이란 생각에
아침부터 밤까지 다녀도 ‘주마간산’
불가사의 가득한 박물관에 갇힌 느낌

대작 ‘로마인 이야기’ 쓴 시오노 나나미
아예 눌러앉아 20여 년에 걸쳐
흙이 된 인물들을 생생하게 소환
그렇지 않고선 제대로 알 수 없는 도시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이별이 많아진다는 이야기도 되는 것 같다. 문상과 병문안 가는 일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지난주 한 지인의 문병을 다녀왔다. 질풍처럼 달려온 사람이어서 하얀 시트 위에 누워 있는 모습이 낯설었다. 그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의사가 점쟁이처럼 말하더군요. 세 달쯤 남았다고요. 근데 가끔 그 세 달이 지루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오죽 힘들었으면, 싶었다. 이런 말도 했다. 차마 놓을 수 없을 것 같은 인연들도 이제는 훌훌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고통도 지그시 응시하다 보면 거기서 쾌감 같은 것이 생기더라니까요. 찬란하리만큼 앙상해진 육신에 주삿바늘 줄을 줄레줄레 달고서도 눈동자만은 초롱초롱했다. 창밖을 보며 그가 중얼거렸다. 밖엔 단풍이 한창이겠군요. 곧 하얀 눈이 내릴 거고. 마치 생사의 강을 건너가 강 이쪽을 바라보듯 담담했다. 소독약 냄새 자욱한 병원 문을 나서니 노란 은행잎이 우수수 사선으로 날린다.

대저 나고 죽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저렇게 소멸해갈 것이었다면 한여름의 무성함 같은 인생의 푸른 풍경들은 무엇이었더란 말인가.

코로나19가 덮치기 직전 나는 로마에 있었다. 신전의 긴 회랑을 걸을 때 스친 생각 하나. 권력자들 역시 자신이 조만간 덧없이 지고 마는 생명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자기를 데려갈 그 무자비한 ‘시간’에 맞서 가급적 오래 남겨질 만한 것들에 집착했으리라는 것. 그래서 건축가, 조각가, 화가의 손을 빌려 한사코 자신의 육체보다 더 견고하고 오래갈 그 무엇을 자신의 이름으로 만들고 싶어 했으리라는 것. 심지어 하늘에 그 이름이 기록되기를 소망하던 교황들마저 땅 위에 먼저 그 이름을 새기고 싶었으리라는 것. 로마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영화 ‘로마의 휴일’을 다시 보게 됐다. 인생 절정기의 그레고리 펙이 막 피어오르는 꽃봉오리 같은 오드리 헵번과 로마의 유적지를 순례하듯 다니는 일종의 로드무비였다. “세기의 요정” “불멸의 아름다움” 같은 찬사가 주렁주렁 따라다니던 헵번이었지만 만년의 그녀는 마른 넝쿨처럼 쇠약해진 육신으로 삶의 무게를 겨우 지탱해내는 듯 보이다가 예순넷의 나이에 지고 말았다.

해 아래 새것이 없고 지상의 아름다움 가운데 불멸은 없다.

어쨌거나 나로선 세 번째 오는 로마가 이번 생의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 때문에 발길이 분주해진다. 아침이면 호텔을 나오자마자 미리 적어놓은 리스트에 따라 동선을 긋고 다니는데 그렇게 유적지를 돌다 보면 어느새 석양이 된다. 그런데 밤의 로마는 어두운 데다 아연 적막강산이 된다. 시장기가 돌아도 밤이 늦으면 불이 켜진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어두운 도시를 걷다 보면 몸이 거대한 박물관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문제는 그토록 부지런을 떠는데도 불구하고 결국엔 내가 혐오하던 주마간산 여행밖엔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마저 놓치는 것이 태반.

▲  김병종 화가, 가천대 석좌교수
그래서였을까 일본 여자 시오노 나나미(염野七生)는 이 도시를 몇 번 드나들다가 아예 눌러앉아 진검승부 하듯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렇게 20여 년의 세월에 걸쳐 쓴 것이 대작 ‘로마인 이야기’였다. 로마 소재의 영화가 영상으로 로마의 외피(外皮)를 훑고 지나가며 그 안에 가공의 인물들을 삽입해 진행되는 데 반해 ‘로마인 이야기’는 로마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미시와 거시의 렌즈를 차례로 들이대 흙이 된 인물들을 생생하게 소환해내는 영화 같은 문필세계다. 그녀는 광부가 갱도로 파고들어 가듯 로마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초혼하듯 흙이 된 사람들을 소환해 갑옷을 입히고 투구를 씌웠던 셈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처럼 이 도시는 불가사의하다.

오늘은 콜로세움을 건너며 물가의 카페에 앉아 두세 장의 드로잉을 남겼다. 내일은 “로마의 자존심”이라는 캄피돌리오 광장으로 나가보려 한다. 한때 “세계의 머리”로 불렸다는 그 광장에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고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했다는 돌계단 코르도나타(Cortonata)가 있다. 하루를 닫으며 멀리 하얀 비토리오 2세 기념관을 바라본다.

그리고 물어본다. 로마, 너는 누구냐.

화가, 가천대 석좌교수


▲  영화 ‘로마의 휴일’의 한 장면.

■ 로마 필모그래피

공주와 기자의 사랑 그린 ‘로마의 휴일’… 황실의 광기 담은 ‘글래디에이터’


‘영원의 도시’ ‘예술의 도시’ ‘종교의 도시’ ‘역사 도시’ ‘박물관 도시’ 등으로 불리는 로마는 유럽 도시 문명의 원류이기도 하다. 2800여 년의 길고 오랜 역사를 거느린 이 제국의 도시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적으로도 고대와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를 포괄하고 있어 로마 여행은 시간을 가로지르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길가에 뒹구는 돌멩이 하나에도 역사의 사연과 숨결이 숨어 있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고, 특히 미술사를 수놓은 기라성같이 많은 화가, 조각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대표적인 로마 영화로는 ‘로마의 휴일’ ‘글래디에이터’ 등을 들 수 있다. ‘로마의 휴일’은 세기의 요정 오드리 헵번과 훈남 그레고리 펙의 로마에서의 꿈같은 사랑 이야기를, ‘글래디에이터’는 검투사를 내세워 로마 황실의 타락과 광기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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