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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Deep Read 게재 일자 : 2021년 11월 25일(木)
21세기 선진경제에 1960년대 최빈국 성장론… 이재명 ‘국주성’은 시대착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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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희숙의 Deep Read - 이재명 국가주도성장론의 맹점

韓, 이미 글로벌 선진국 대열에…민간 역량 커지고 시장주도 기반 강해 ‘국주성’ 유효성 상실

경제파이 키우기 기본은 개인·기업의 자유와 창의, 국가는 보조 역할… 李, 한국경제 몰이해 속 ‘박정희 소환’


이달 초 대구를 방문한 여당 대선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소환하며 자신의 국가주도성장론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자신도 박 전 대통령과 같은 국가주도성장을 제안하고 있으니 소속당을 따지지 말고 지지해 달라는 취지였다.

과거 국가 주도로 경제성장을 이룬 건 시장주도성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없었기 때문이다. 민간 역량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지금 국가주도성장은 시효가 끝났다. 21세기 글로벌 선진국인 지금 상황을 1960년대 세계 최빈국이었던 시절과 동일 선상에 놓고 ‘국가주도성’에서 박정희와의 유사성을 인정받으려 하는 것부터 한국 경제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는 것이다.

◇국가 역할의 변천

버트런드 러셀의 관찰에 따르면, 역사를 관통하는 패턴은 ‘사회의 결속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보다 더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으면서 사회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통용돼왔지만, 산업혁명 이후의 시장경제에서는 특히 중요하다. 경제 전체 파이를 키울 수 있는 것은 각 개인의 선택지가 얼마나 넓고 그것들을 얼마나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각자 운용할 수 있는지에 전적으로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선험적 가치의 문제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역사적 경험으로 증명된 문제이기도 하다. 사회주의 70년의 실험이 보여준 것은 중앙집권적 계획이나 통제가 개인의 자발적 에너지와 창의성에 결코 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런 개인들의 노력과 경쟁이 전체 공동체의 복지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전체의 판을 짜는 것, 즉 제도 틀을 확립하고 환경 변화에 따라 조정해가는 것이다. 각 개인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역량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국가는 힘을 제한하고 절제해야 하는 반면, 국민 모두에게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반대로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해야 한다.

그렇기에 각 시대의 요구가 무엇인지에 따라 국가와 개인의 관계는 변화를 겪어왔다. 산업혁명 이후 대공황까지 시장의 발흥기에는 국가가 보이지 않을수록 좋다는 ‘최소국가’의 시기였고, 시장의 부작용이 불거진 대공황 이후 1970년대까지는 ‘큰 국가’의 시기였다. 국가 확장의 부작용이 커진 1980년대 이후에는 신자유주의, ‘작은 국가’의 바람을 맞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현재는 사회 결속을 위한 적극적 국가 역할이 강조되는 또 다른 조정기라 할 수 있다.

◇국가 주도의 성취와 한계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현재까지 축적된 지혜는 ‘큰 국가 작은 국가 논쟁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개인의 창의와 혁신 활동을 위한 공간은 언제나 극대화돼야 하고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은 최소화돼야 하지만, 기회 보장을 위한 사회투자와 기술 인프라를 위한 시장 바깥에서의 국가 역할은 사회의 응집력이 위협받을 때 그 필요성이 증가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 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지금 사회통합이 강조되는 것이 좋은 예이다.

경제성장의 주체가 시장이고, 정부의 역할은 제도 틀을 관리하고 사회통합을 유지하는 것에 국한된다는 것에 새삼 이견을 제시할 이유가 없다. 우리 헌법이 ‘대한민국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정하고 있는 것도 같은 정신이다.

그렇다면 지금에 와서 국가주도성장을 제기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한국 경제의 성취와 한계에 대한 순전한 몰이해다. 박정희 시절 국가 주도로 경제성장을 시도한 것은 시장주도성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없었기 때문이다.

같은 사정으로 정부 주도 개발을 시도한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정부는 부패의 원천이 됐을 뿐 경제성장은 지지부진했지만, 우리는 극히 드문 성공사례가 됐다. 소위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 모델’이다. 상대적으로 유능하고 청렴한 지도자와 관료 그룹이 경제 발전이라는 명확한 목표에 다른 모든 정책 수단을 복속시켜 민간부문을 지휘하고 자원을 배분하는 강력한 국가주도성장이다. 집중적인 인적자본 투자를 통해 대다수 국민을 경제성장으로부터 소외시키지 않음으로써 성장과 분배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남미국가들과의 차별점이기도 했다.

◇與 대선 후보의 시대착오

그러나 이 국가 주도 모델의 문제점은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분명해졌다. 지금 우리 경제가 선진 모델로 발전하기 위해 극복해야 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 바로 ‘국가주도성’이다.

일례로, 정부 주도로 단기간 집중 투자된 교육부문의 발전은 전 세계 개발도상국이 열광한 ‘성공 스토리’였지만, 70∼80명의 아이를 한 교실에서 공부시키기 위해 획일적 주입식 교육에 의존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그 철저한 중앙통제적 교육이 지금 우리나라가 선도적이고 창의적인 나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병목’이라는 점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다.

경직적인 공무원 문화, 강력한 거미줄 규제, 정부 주도 노사관계, 관치금융 등 경제의 많은 측면이 과거 국가주도성장의 유산 속에서 21세기형 선진경제로의 발전을 틀어막고 있다. 국가주도성장 공식을 극복하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인 지금, 국가주도성장을 다시 자랑스레 내미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이유다.

과거 박정희 정권 때 이뤘던 경제 도약의 본질은 ‘국가 주도’ 이전에 ‘상황에 맞는 전략’으로 해석돼야 한다. 시장 기반이 없어 정부가 나서야 했고, 자원과 자본이 없고 기술에 목마르니 세계시장을 학교로 삼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꿈꾸며 시장친화적 유인체계를 정책에 내장했다. 그러기 위해 정부는 시장과 긴밀히 소통하며 지원을 위한 성과지표를 만들고 조정해갔다. 무엇보다 국민과 기업의 역량에 투자해 사람 중심의 성장을 이뤘다. 그 과정에서 자원을 동원하고 조직했던 국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민간 역량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지금 국가주도성장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위험한 빚잔치 우려

박정희 시대에서 찾아야 하는 교훈은 ‘기본에 충실하되 환경 변화를 직시한 전략의 중요성’이다. 소득주도성장에 이어 국가주도성장까지 재정을 들이부어 환심만 사겠다는 빚잔치 포퓰리즘으로 포스트 코로나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헤쳐나갈 수는 없다. 다음 정부는 국민이 마음껏 뛸 수 있는 질 좋은 잔디 구장 같은 경제전략을 내놓아야 한다.

전 국회의원, 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세줄 요약

국가 역할의 변천 : 산업혁명 이후 국가와 개인의 관계는 ‘최소국가-큰 국가-작은 국가’ 등으로 변화를 겪어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현재는 사회 결속을 위한 ‘적극적 국가’ 역할이 강조되는 또 다른 조정기임.

국가주도의 성취와 한계 : 현재까지 축적된 지혜는 ‘큰 국가 작은 국가 논쟁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 하지만 기본은 경제성장 주체가 시장이고, 정부 역할은 제도 틀을 관리하고 사회통합을 유지하는 것에 국한된다는 것.

與 대선 후보의 시대착오 : 국가주도성은 선진모델 발전에 있어 가장 큰 장애. 민간 역량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지금 ‘국주성’은 유효성을 잃음. ‘국주성’은 국가재정을 들이부어 단기적 환심을 사겠다는 빚잔치 포퓰리즘임.


■ 용어 설명

‘발전국가 모델’은 정부의 시장 개입을 통해 압축적 산업화를 달성하는 발전 모델. 1993년 세계은행 보고서는 당시 한국 등 발전국가모델을 채택한 국가들의 발전을 ‘동아시아의 기적’이라 부름.

‘국가주도성’이란 경제·교육 등 정책 형성 과정에 국가가 강력하게 개입하는 것. 시대의 변화와 함께 그에 대한 안티테제로 경제의 ‘민간주도성’, 교육의 ‘자기 주도성’ 등 개념이 정착하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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