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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병종의 시화기행 게재 일자 : 2021년 11월 30일(火)
쇠사슬에 묶여, 십자가에 매달려… 스승의 길을 따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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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종, 못 세개, 39×35㎝ 혼합재료.


■ 김병종의 시화기행 - (97) 로마, 산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 <上>

예수를 세 번 부정한 베드로
순교자의 운명 택하는 순간
어부서 위대한 삶으로 재탄생

네로 황제가 불사른 ‘광기의 땅’
기독교 성지로 바꾼 작은 밀알


“내가 자유와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불의 강(江)을 건너는 외에는 도리가 없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이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언제까지나 제자로만 머물러 있는 것은 스승에 대한 좋은 보답이 아니다.” 자신의 삶 자체가 질풍노도였던 시인이자 철학자는 마지막으로 “위대한 삶”을 이렇게 규정했다. “어떤 이들이 체험하는,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삶”이라고. 산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 미켈란젤로의 모세상과 함께 베드로가 로마로 압송돼 올 때 그를 묶었다는 쇠사슬이 여태 보관돼 있대서 유명해진 성당이라고 했다.

▲  혼합재료성당 안에 보관돼 있는 베드로를 묶은 쇠사슬.

마호가니 목재문의 좌우에는 각각 쇠사슬과 모세상의 작은 액자가 부조처럼 박혀 있다. 베드로의 실존이 피부로 다가온다. 스승을 세 번 배신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하며 부인했던 제자는 자기 생업의 현장에 부활해 나타난 예수를 만난 후 비로소 일어서서 로마 쪽을 바라본다. 더 이상 작은 어촌에서 어부로만 생존해가는 것은 진리를 위해 죽음의 길을 간 스승에 대한 보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승 예수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그 역시 “불의 강”을 건너는 외에는 도리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는 “죽음으로써 다시 태어나기 위해”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고난의 길, 슬픔의 길)의 로마행을 결심한다. 하지만 막상 로마 입성을 앞두고 결심은 두려움으로 출렁이는데 이때 다시 어디론가 가고 있는 스승 예수를 만나게 된다. 제자는 “쿠오바디스 도미네? 어디로 가십니까, 주님”하고 물었고 스승은 “네가 버린 양들을 위해 로마로 들어가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려 한다”고 대답한다. 비로소 디베라 바닷가에서 만났을 때, 자신의 배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던 스승이 “내 양을 먹이라”고 간곡하게 당부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돌아서서 죽기 위해 로마로 들어간다. 그리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네로의 박해가 극에 달하던 그해에(AD 67년) 죽기 위해 로마로 온 이는 비단 베드로뿐이 아니었다. 바울 역시 쇠사슬에 묶여 로마로 왔고 사형판결을 받은 지 며칠 후 형장에서 목을 베인다. 그야말로 티베르 강이 순교자의 피로 물들만큼 수많은 목숨이 죽어간다. 그런데 이 선혈 낭자한 죽음의 땅 로마는 어떻게 기독교 성지의 하나로 탈바꿈한 걸까. 진실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써 이뤄진 기독교적 역설인가.

▲  김병종 화가, 가천대 석좌교수
이제 로마는 불의 강을 건넌 이들이 이룬 생명의 화원으로 만개해 있다. 성당마다 촛불이 일렁이고 있고 예배와 순례의 발길은 그치는 법이 없다. 역사는 참혹한 죽음의 그림자를 황금빛 광휘에 내어주고 있었다. 성당을 돌아보며 “죄가 더한 곳에 은혜도 넘친다(로마서 5:20)”는 구절을 떠올린다. 바울은 왜 이런 기록을 하게 됐을까. 로마에서 2년여의 지하 감옥 생활을 했던 그였기에 그 죄의 땅에 곧 흩날릴 은혜의 꽃잎을 봤을지도 모른다.

어제 나는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에 가서 예수가 태어나신 말구유가 보관돼 있다는 보석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제는 베드로를 묶어온 쇠사슬 앞에 다시 선다. 다소 유물론적이지만 죄와 은혜의 머나먼 거리는 이곳 로마에서 이 두 오브제에 의해 하나로 연결되고 있었다. 죄의 ‘붉음’을 흔드는 은혜의 ‘하얀’ 진동이 내게는 보색처럼 대비되며 소용돌이쳐온다. 높고 하얀 열주들과 황금빛 천장의 반사 때문일까. 성당을 걸어 나오는데 가벼운 현기(眩氣)를 느낀다. 사실, 이 기우뚱한 안정 감각의 실조는 휘황한 성당이나 교회당에 오면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일종의 질환이다.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고개를 드는, 나는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피하고 싶은 애처로움이 그런 식의 신체 반응으로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햇빛이 쏟아지는 들녘에서 죽음의 광기로 부풀어 오른 로마로 발길을 돌렸던 베드로. 그때가 바로 평범한 시골 어부에서 ‘반석’의 위대한 삶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쇠사슬에 묶여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내딛지 못하는 내게도 어느 날 섬광처럼 그런 순간이 올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어두운 달의 환한 이면처럼 보이지 않은 죽음의 저편마저 환하게 보일 수만 있다면.

화가, 가천대 석좌교수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그린 ‘콘스탄티누스의 꿈’.

■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성녀 헬레나
로마 황제의 ‘기독교 공인’ 뒤엔… 어머니의 설득 있었다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재위 306∼337)의 뒤에는 어머니 헬레나(250∼330)가 있었다.

본래 터키 작은 도시의 여관집 딸로 태어났던 헬레나는 육십이 넘어 기독교로 개종한 후 꾸준히 황제인 아들에게 기독교를 공인하도록 설득한다.

그녀는 꿈에서 본 골고다의 나무 십자가를 실제로 찾아냈는데, 그중 한 십자가를 스치며 지나가던 장례행렬에서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을 보고 그곳에 예수 탄생 교회와 성모교회를 세운다.

한편 아들 콘스탄티누스는 전쟁터로 가던 중 갑자기 하늘 높이 십자가 형상과 함께 “이것으로 이기리라”는 글자가 나타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데, 그날 밤 꿈속에서 다시 그 장면을 만나는 신비체험을 한다.

이후 개종을 결심하고 이어서 기독교를 공인하게 된다.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이 이야기를 ‘콘스탄티누스의 꿈’으로 그렸고 작품은 현재 아레초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 프레스코화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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