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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21년 12월 06일(月)
굶주린 민중이 이룬 대혁명… 신분질서 벗자마자 자본질서에 포획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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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의 역사 위에 이제는 패션과 쇼핑과 미식의 도시가 된 파리. 이 도시의 상징인 에펠탑이 높게 솟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 장은수의 지식카페 - ⑩ ‘혁명의 도시’ 파리

빅토르 위고 “혁명의 적은 낡은 세상”… 앙시앵레짐 무너지고 ‘자유·평등·우애’의 세상 열려
하수도까지 개조 ‘천상의 도시’ 꾸몄지만 빈민들 외곽으로 쫓겨나 … 졸라는 “돈이 위생이요 청결이요 건강이다”


“이제부터 파리와 나의 대결이다.”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마지막 장면에서 라스티냐크는 파리의 휘황한 불빛을 내려다보면서 다짐한다. 그의 눈은 사교계를 향한 욕망으로 이글거린다. “벌집에서 꿀을 미리 빨아 먹은 것 같은 시선”이다. 두 딸의 허영을 채워주려고 헌신하다 모든 걸 잃고 쓸쓸히 죽어 간 고리오 영감의 장례식을 치른 직후의 일이다. 순진한 시골 청년 라스티냐크는 영감과 함께 무덤에 묻혔다. 법률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올라온 이 청년은 파리 사교계를 드나들면서, 또 영감의 마지막을 함께하면서 파리를 지배하는 진정한 힘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돈’이었다. 최후의 순간에 고리오는 절규한다. “아! 내가 만일 부자인 데다 재산을 거머쥐고 자식에게 주지 않았다면, 딸년들은 여기에 와 있을 테지. 키스로 내 뺨을 핥을 거야! 지금은 아무도 없군. 돈은 모든 것을 다 준단 말이야, 심지어 딸까지도. 오! 내 돈, 어디에 있느냐?”

‘고리오 영감’에서 발자크는 자본주의 사회의 섬뜩한 진실을 냉정하게 드러낸다. “돈이 바로 생명이고,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돈이 있는 동안 고리오는 딸들에게 쓸모 있는 인간이었으나, 돈이 떨어지자 그를 찾아온 것은 외로운 죽음이었다. 영감의 죽음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번지고 있는 고독사의 원형이다. 돈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인륜을 저버린 비극이 어디서든 벌어진다는 것을 발자크는 예리하게 통찰해 낸다.

파리의 한복판에는 센강이 흐른다. 강 한가운데 시테섬이 있다. 로마 군대는 갈리아 땅을 정복한 후, 이 섬에 성벽을 쌓아 군대를 주둔시켰다. 갈리아의 일족인 파리시족이 오래전부터 거주하던 땅이었다. 파리라는 이름은 이 종족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로마제국기에 센강 왼쪽 기슭이 먼저 개발되고, 6세기 프랑크족이 정복해 프랑크 왕국이 들어선 후 오른쪽 기슭에도 차츰 건물이 들어섰다. 12세기에 이 도시를 둘러싼 성벽이 완성되면서 비로소 오늘날 파리의 윤곽선이 생겨났다.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 시테섬 주변이 정치적·종교적 중심을 이루고, 왼쪽에는 파리대와 함께 지성의 전당이 펼쳐지고, 오른쪽에는 시장이 들어서서 경제가 발전하는 구조다. 프랑스는 중세 이후 현재까지 유럽의 강국이었고, 서양의 역사와 문화를 주도했다. 십자군 전쟁 때 신의 이름을 빌려서 약탈과 학살을 자행한 유럽 군대의 사실상 주력이었고, 영국과 100년 전쟁을 치르면서는 잔 다르크의 신화와 함께 민족국가라는 정치적 유행을 낳았으며, 신교도인 위그노 학살을 일으키면서 추악한 종교 전쟁의 서막을 열기도 했고, 태양왕 루이 14세로 상징되는 앙시앵레짐의 폭정이 본격화한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권력의 탐욕이 낳은 끔찍한 비극의 강물 속에서 프랑스인들은 진실을 향한 성찰을 놓지 않았고, 자유에 대한 갈망을 표현했다. 신의 이름으로 서로를 학살하는 종교 전쟁의 와중에 몽테뉴는 “인간은 천사가 되려다 짐승이 된다”고 경고했다. 자신만 진실을 쥐고 있다는 독선이 비극의 씨앗이라는 것이다. 몽테뉴는 에포케(epokhe·나는 아직 모른다)와 크세주(Que sais-je·내가 무엇을 아는가)를 진실에 접근하는 태도로 생각했다. 진리를 알고 있다는 오만한 판단을 일단 멈추고, 살아 있는 동안 겸손한 태도로 탐구를 거듭하면서 자신의 삶을 끝없이 더 나은 상태로 바꿔가는 ‘에세(Essais)’의 정신이 이로부터 나왔다.

앙시앵레짐이 인간 자유를 억누르고 사상을 박해할 때, 볼테르는 ‘캉디드’ ‘자디그’ 같은 ‘철학 단편’을 통해서 봉건적 미몽을 풍자하고 종교적 광신을 비판함으로써 자유를 옹호하고 관용을 호소했다. “이성은 온화하고, 인정이 있으며, 너그러움을 고취하고, 불화를 잠재우며, 덕성을 확고히 하고, 강제로 법을 유지하기보다 법에 복종하는 것을 즐겁게 만든다.”

무엇보다 볼테르는 지식인의 존재 양식을 발명했다. 유대 상인 장 칼라스가 재판을 받고 억울하게 사형을 당하자, 볼테르는 즉각 행동에 나섰다. 사건의 경위를 조사해 칼라스의 무고함을 밝혀내고 기고와 행위를 통해 권력에 맞서는 여론을 일으켰다. 에밀 졸라, 장 폴 사르트르, 미셸 푸코 등으로 이어지는 위대한 전통의 시작이었다. 그 덕분에 프랑스에서는 어용들을 감히 지식인으로 부르지 않게 됐다.

볼테르의 자유는 디드로·달랑베르·루소 등으로 이어지는 계몽의 씨앗이 됐고,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적 토대로 자라났다. 혁명의 방아쇠는 ‘빵’이었다. 굶주린 민중이 봉기하고, 낡은 신분 질서에 염증을 느낀 부르주아가 호응했다. 여성들은 신도시 베르사유로 행진해 루이 16세의 항복을 받아냈다.

왕정은 폐지되고 교회가 공격당했다. “인간은 권리에 있어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 생존한다”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 있었고, 마침내 왕의 목을 베어낸 후 ‘자유·평등·우애’에 바탕을 두고 평민들이 협력해서 자신을 다스리는 세상이 열렸다.

‘93년’에서 빅토르 위고는 말한다. “혁명에는 적 하나가 있는데, 그것이 낡은 세상이고, 따라서 혁명이 그것에 무자비한 것일세. 혁명은 왕 속에 있는 왕권을, 귀족 속에 있는 과두정치를, 군인 속에 있는 독재를, 사제 속에 있는 미신을, 판관 속에 있는 야만을, 한마디로 모든 유형의 폭군 속에 있는 모든 폭정을 뿌리째 뽑아낸다네. 수술이 두려움을 주지만, 혁명은 그 일을 확신 넘치는 손으로 감행한다네.”

미숙한 자유는 혼란과 공포, 배신과 반동을 불러왔다. 1799년 혼란을 틈타서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주의 혁명의 길을 막았다. 19세기 내내 파리는 반동 왕정이 가져온 숨 막히는 억압과 해방을 갈망하는 시민 봉기가 교차하면서 피의 강물로 적셔졌다. 특히, 노동자 계급이 일어선 1848년 2월 혁명은 날로 위력을 더해가는 자본주의의 폭풍 속에서 새로운 지배 계급으로 올라선 부르주아 계급에 큰 충격을 줬다. 이로부터 “벌레가 과일 속에 파고들어 만들어 낸 구불구불한 길”들과 지저분하고 오래된 주택에 사는 ‘수상하고 위험한 노동자들’을 몰아내고, 파리를 깨끗하고 위생적인 부르주아 도시로 바꾸는 파리 대개조 계획이 시작된다. 모델은 베르사유였고, 지휘자는 조르주 외젠 오스만이었다.

▲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가고일 석상이 파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벤 윌슨의 ‘메트로폴리스’에 따르면, 오스만은 정녕 무자비했다. 유서 깊은 건물이든, 복잡한 골목이든, 낮은 언덕이든 방해되는 것들은 모조리 철거해 버렸다. “아름답고 위생적이고 교통이 편리한 근대 도시”를 위해 곳곳에 대로를 조성하고, 지하엔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유명한 하수관을 배를 띄울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만든다. 곳곳에 넓은 공원과 광장을 조성하고 극장과 카페, 백화점과 공동주택 등을 대량으로 건설하며, 거리 전역에 가스등을 깔아서 한밤에도 대낮처럼 밝은 도시를 거의 인류 최초로 창조한다. 오스만의 작업 결과, 파리는 그 자체로 극장이 된다. 빛이 잘 들고 공기가 잘 통하며, 질서 정연하고 우아하게 치장된 근대의 상징이자 지금 여기에 구현된 천상의 도시였다. 도시 전체가 진열장이고 구경거리였다. 관광객들이 온 세상에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 귀족들·부르주아들과 어울려 살던 노동자들·빈민들은 파리의 외곽으로 모조리 쫓겨나고, 이로 인해 역사상 최초로 출퇴근의 물결이 나타난다. “시의 문 앞에서 멈추어 선 사람의 물결이 차도 위까지 길게 이어졌다. 연장을 지고, 빵 하나씩을 낀 채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이었다.”(‘목로주점’) 새로운 파리의 공간 위생학은 인구 위생학이었고, 또 ‘돈의 위생학’이기도 했다. 졸라는 말한다. “돈은 위생이요, 청결이요, 건강이다.”(‘돈’)

혁명이 약속한 자유와 평등과 우애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패션과 쇼핑과 미식의 도시 파리는 특권 구역이 됐다. 신분의 질서를 벗어나자마자 자본의 질서가 다시 사람들을 포획하면서 우울증을 가져왔다.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는 말한다. “공원에는 좌절된 야심, 불행한 발명가, 이루지 못하고 만 영화, 상처 난 마음, 파란만장하고 폐쇄된 넋이 주로 찾는 산책로가 있다. 이 후미진 은신처는 인생 불구자들의 집합소다.”(‘파리의 우울’) 하지만 자유를 향한 꿈이 포기된 것은 절대 아니다. 에두아르 마네는 술집 카운터에 선 여성을 여신처럼 당당히 묘사함으로써 타락한 도시에서 아름다움을 끌어냈고, 보들레르는 악으로 전락한 도시 곳곳을 산책하면서 악의 흔적에서 기어이 꽃을 찾아냈다. 시인은 외쳤다. “어디라도 좋다,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다면.”

문학평론가


■ 용어설명

베르사유, 현대 신도시의 원형 : 파리 교외에 있는 베르사유는 본래 프랑스 왕실의 사냥터였다. 이곳에 화려한 궁궐을 지은 것은 “내가 곧 국가”라고 선언했던 루이 14세였다. 절대왕정을 상징하는 그는 정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더럽고 시끄러운 도시 파리를 떠나서 깔끔하고 질서 잡힌 신도시를 만들고 싶어 했고, 20년의 공사 끝에 현대 도시의 원형을 창조했다.

직각과 대각으로 시원하게 뚫린 대로들, 아름답게 가꿔 드넓게 펼쳐진 정원 등 도시의 모든 것은 계획된 채 조화롭게 배치돼 한가운데 우뚝 솟은 궁궐을 향했다. 그 가장 높은 곳에는 세상 전체를 내려다보는 왕의 침실이 있었다. 사방의 자연과 온 세상 인간이 모두 정복당한 뒤 왕을 향해 경배하는 듯한 숨 막히는 모양이었다. 파리 시민들은 베르사유를 혐오했다. 혁명 때 그들이 무엇보다 바랐던 일 중 하나가 수도를 인간이 숨 쉬는 도시 파리로 되돌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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