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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평 게재 일자 : 2021년 12월 09일(木)
‘국가 기본문서’와 대선 후보 감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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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헌법은 자유민주 통일 명문화
북한 주민도 보호해야 할 대상
정전협정만 지키게 해도 평화

한미방위조약이 아프간化 막아
번영 도운 한일조약 위기 상황
나라문서 존중할 대통령 필요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불과 수십 일 앞으로 다가왔다. 대선 후보들과 대선 캠프들이 많은 공약 문서를 쏟아내고 있다. 유권자들도 혼란스럽다. 이런 때일수록 1948년 이후 대한민국의 독립, 존속, 그리고 번영을 뒷받침했던 국가문서들에 비춰 감별(鑑別)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헌법. 선거에서 승리한 대선 후보는 대통령 취임에 즈음하여 헌법 제69조에 따라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로 시작되는 선서를 하게 돼 있다. 어렵게 선출된 대통령이 위헌(違憲)으로 탄핵된다면 국민 모두의 불행이다.

현행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군사분계선(MDL) 이북의 주민들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아울러 제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명하고 있다. 이 조항을 개정하기 전에는 대통령이라도 통일의 깃발을 함부로 내릴 수 없다. 제119조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할 것과 더불어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유권자들은 눈을 밝혀 대선 후보들이 내거는 선거공약들이 과연 합헌적인지 살펴봐야 한다.

둘째, 정전협정. 1953년 이후 현재까지 지속 중인 비전(非戰) 상태는 이 문서에 기초하고 있다. 평양정부가 수시로 정전협정 무력화를 위협하지만, 이 협정문은 어느 일방에 의해 폐기될 수 없다. 한국에서는 당시 대통령이 서명하지 않은 데 대한 오해로 정전협정문이 경시돼 왔다. 정전협정은 원래 국가원수가 아니라 군사령관들이 체결하는 것이다.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참전 16개국 군대와 한국군을 대표해서 서명할 때, 국군 대표 최덕신도 이승만 대통령의 명에 따라 임석했다.

종전선언에 앞서 정전협정만 잘 준수해도 지금보다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 수 있다. 비무장지대(DMZ)의 비무장화, 시체 발굴과 반출, 포로 송환, 실향사민(失鄕私民) 귀향, 서해 5도의 안전보장 등은 평화 의지만 있다면 실현될 수 있는 정전협정의 조항들이다. 민용 선박의 한강 하구 항행에 관한 조항은 국제적으로 한강 수로를 재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다.

셋째, 한미상호방위조약. 정전협정이 소중하지만 그것만으로는 1975년 베트남이나 2021년의 아프가니스탄처럼 됐을 것이다. 한국군끼리 총격전까지 벌였던 격동의 순간들에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있었기에 대한민국 안보가 지켜질 수 있었다. 이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지만, ‘어느 당사국이든지 타 당사국에 통고한 후 1년 후에 본 조약을 종지(終止)시킬 수 있다’고 돼 있다. 한국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조약이라면 미국이 먼저 조약의 종지를 통고할 수도 있다. 한반도 남쪽의 지정학적 가치가 크기는 하지만, 미국으로서는 자국민의 명예나 생명보다 소중할 수는 없다.

넷째, 1965년 한일조약과 1992년 한중수교성명. 한일조약은 1965년 체결 이후 경제발전을 추동했다. 서울보다 평양에 먼저 투자했던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이 신격호의 롯데처럼 성공할 수 없었던 핵심적 이유는 이런 조약문이 없었다는 것이다. 현재 이 조약은 징용 문제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이후 위기에 빠져 있다. 해법은 이미 조약문과 부속 협정문에 들어 있다. 1992년 한중수교성명도 한일기본조약처럼 많은 경제적 이익을 창출했다. 그러나 6·25전쟁 책임에 대한 사과를 명문화하지 못했고, 충칭(重慶)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도왔던 ‘중화민국’과는 비외교적으로 단교함으로써 많은 후과도 남겼다. ‘하나의 중국’ 원칙이 대만에 대한 전쟁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다.

대한민국은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지탱해온 이 국가문서들을 모두 숙독한 대선 후보는 아직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이 문서들과 배치되는 발언들이 눈에 띈다. 물론 아무리 중요한 국가문서라 하더라도 시대에 따라 변경과 폐기가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 또한 국민의 뜻을 먼저 묻는 민주적 절차가 필요하다. 각자의 집문서가 소중한 것처럼 민주 국민이 먼저 나라 문서들을 숙독하고, 차선(次善)이 아니면 차악(次惡)의 대통령이라도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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