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걸작 뒤로한 채…‘未完’으로 안식을 찾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병종, 애통도, 72×71㎝, 골판지에 먹과 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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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종의 시화기행 - (99) 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 피에타’

‘일 중독자’ 묘사되는 미켈란젤로
죽는날까지 손에서 작업도구 안놔

병약한 몸으로 초인적 작업량
조각·그림·詩 ‘전방위 예술가’

스스로를 고립시킨 강박·집착서
어머니 품에 안긴 예수처럼 떠나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3부작 중 이제 마지막 미완성 피에타 앞에 서게 된다. 작품이 전시돼 있는 스포르체스코성은 지금까지의 화려함을 극한 성당이나 미술관, 박물관에 비해 무채색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유별난 장식들도 없고 다분히 금욕적이다. 마치 오래된 목조 주택의 학교 같은 이곳이 왠지 편안하다. 그런데 창녀 마리아의 남루한 조각상을 지나 미완성 피에타 앞에 섰을 때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예기치 않게 춤추는 이 감정의 변주는 무엇일까. 그 수많은 걸작을 지나 왜 하필 이 미완성 피에타 앞에서 울컥한 것일까. 스물네 살의 청년이 만들었던 그 숨 막힐 듯한 기교와 완벽한 구도의 성 베드로 성당 피에타에서 못 느꼈던 감정 말이다.(하긴 성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는 겹겹이 싸인 관람객들 때문에, 그리고 다음 작품으로 이동해야 하는 까닭에 피에타의 아우라를 음미할 겨를이 없긴 했다)

어쩌면 그것은 미완성 피에타와 겹쳐서 순간적으로 곤고했던 미켈란젤로의 생애가 떠올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세상을 떠나기 나흘 전까지 그는 이 작업에 매달렸다고 한다. 지상을 떠나갈 시간이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차마 끌과 망치를 놓을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생애의 마지막 나날은 피에타를 완성해야만 한다는 절박감 때문에 이어진 것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일평생 여인의 따뜻한 손길 한 번 체험하지 못한 채 끌과 망치가 아내요, 자식이었던 삶이었다. 그 미완성 피에타 앞에서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들도 함께 생각했던 것 같다. 나의 날은 얼마나 남은 것일까.

성경은 우리에게 “날(日) 계수(계산)하는 지혜를 가지라”고 쓰고 있다. 우리에게 빌려준 시간이 차면 그 주인이 다시 찾으러 오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되면 하던 일을 미완성인 채로 두고 자리에서 일어서야 한다. 그래서 사제들은 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며 헤어지는 인사를 나눴을 것이다. 끝을 기억하라.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하지만 결국에는 미완성인 채로 이 생을 끝마치게 될 것이라는 의미.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병종 화가, 가천대 석좌교수

전기 작가 로맹 롤랑은 ‘미켈란젤로의 생애’에서 그를 일종의 “일 중독자”로 묘사한다. 동시에 어떤 사제보다도 더 많이 금식하고 기도했던 사람으로 그리고 있다. “나는 과거의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일을 뼈가 부서지도록 해야 한다. 밤이나 낮이나 일 이외의 것은 생각지도 못한다.” 저자는 그가 종종 침식의 시간마저 잃어버릴 정도로 죄수 같은 삶을 살았다고 썼다. 심지어 옷을 입고 작업화를 신은 채 잠들곤 했을 정도였다. 좋은 대리석을 보면 일 욕심 때문에 우선 계약부터 해놓았다가 지키지 못하기 일쑤였고 돌산 전체를 조각하고 싶다고 하는가 하면 교회고 궁궐이고 자신이 다 할 수 있다고까지 했다고 한다. “… 지난 12년 동안 피로에 지쳐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여러 가지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나는 비참합니다.” 한 편지에서 그는 그렇게 썼다. 일종의 조울 상태가 계속됐던 것 같다. 일하다가 마른 빵 한두 조각에 와인 한 잔 정도를 먹는 것이 그의 식사였다고 하는데 놀랍게도 이런 빈약한 영양 상태와 병약한 몸으로 초인적인 작품량을 소화해낸 것이었으니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그림과 조각, 건축 그리고 300여 편에 이르는 시(詩)까지 그는 그야말로 르네상스적 전방위 예술가였던 것이다. 이 불세출의 천재는 그러나 자신이 조각가나 예술가로 불리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다고 한다. “나는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일 뿐이다”고 말하곤 했다 하는데 그것은 자신이 하고 있는 조각이나 회화의 위상이 가문의 그것만 못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동시에 그의 서신은 늘 “나는 비참하다” “나는 괴롭다” “모두들 나의 죽음을 바라고 있다” “나는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는 식으로 시종하고 있는데 신경증과 광기·강박, 그 위에 작업에 대한 과도한 열정으로 종종 자신을 극한까지 몰고 갔던 것이다. 미켈란젤로야말로 죽음으로 어머니의 품에 안긴 예수처럼 마지막 피에타를 완성하지 못한 채 손에서 망치를 툭 떨어뜨림으로써 비로소 안식과 평안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탁월한 미술사학자이자 문학가인 토마스 기르스트는 말했다. “50년, 100년 후에도 불멸의 작품으로 남아 있을지 결정하는 것은 오직 후대일 뿐”이라고. 미켈란젤로는 일평생을 숨 가쁘게 돌을 쪼고 그림을 그리며 자신만이 체험하는 실패와 성공의 뒤안길에서 놀라운 집중과 정신력으로 걸작들을 만들어 냈다. 날마다 자기만의 지하로 내려가서 끌과 망치를 들면서 저 “스프레자투라(Sprezzatura : 무심과 고요)” 속에 스스로를 유배시켰던 것이다. 그가 후대의 평가에 집착했던 것 같은 기록이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니체는 말했다. “번갯불을 일으키려는 자는 반드시 구름에 오래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미켈란젤로야말로 폭풍과 고요의 구름 속에 오래 머물러서 섬광과 불빛을 일으킨 사람이었다.

화가, 가천대 석좌교수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 피에타 3부작. 왼쪽부터 베드로 대성당, 피렌체 대성당, 론다니니의 피에타로 마지막 작품은 미완성이다.

■ 피에타 3부작은…

24살 조각가 ‘바티칸 스타’로 만든 첫 작품
죽음 예감한 듯 편안한 형상의 마지막 작품

걸작 중의 걸작인 피에타 연작의 첫 작품은 미켈란젤로가 1499년 스물네 살의 나이로 완성시킨 것이었다. 피렌체의 애송이였던 미켈란젤로는 이 첫 피에타로 바티칸에서 일약 정상급 조각가로 대접받게 된다. 십자가상에서 숨진 채 내려진 예수. 축 늘어진 모습으로 그의 모친 마리아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을 대리석에 의해 완벽한 구도와 기법으로 형상화시켰는데 마리아의 얼굴이 지나치게 젊다고 논란이 되기도 했다.

두 번째는 칠순을 넘긴 1547~1555년 사이에 제작됐다고 알려진 피렌체 대성당의 피에타로 예수의 고통을 가장 극대화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모친의 무릎 위에서 축 늘어진 형상의 전작에 비해 경직된 몸을 장정 세 사람이 떠받치고 있는 수직적 구도로 돼 있다. 중심인물도 마리아가 아닌 니고데모로 알려져 있는데 특이한 것은 예수 뒤의 남자 얼굴이 미켈란젤로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미학적이고 조형적인 효과를 극대화시킨 20대 때의 첫 피에타에 비해 예수의 고통을 자신의 그것과 동일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마지막 작품인 ‘론다니니 피에타’는 임박한 죽음을 예감한 듯, 드라마틱한 구도나 기교가 아닌 무심한, 그러면서도 편안한 형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임종 나흘 전까지 이 작품에 매달려 있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