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열풍·MZ의 삶·기후위기…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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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일보 선정 2021 ‘올해의 책’ 10권

‘부동산 열풍’부터 ‘1990년대생의 부상’ ‘MZ세대의 새로운 삶’까지…. 문화일보가 선정한 2021년 ‘올해의 책’엔 지금, 이곳의 풍경이 선명히 담겨 있다. 책 한 권이 시대의 복잡다단한 면모를 모두 담아낼 순 없지만, 좋은 책들의 ‘묶음’은 우리가 발 디딘 세상의 윤곽을 그려낸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리스트다. 문화일보 문화부 데스크와 북리뷰팀 기자, 외부 필진(장은수 출판평론가·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등 총 6인이 △주제의 중요도와 새로움 △시대와의 호흡 △완성도 등을 기준으로 치열한 토론을 거쳐 골랐다. 국내서만 대상으로 한 지난해와 달리 번역서도 포함해 20대 신진 작가부터 해외 석학까지 다양한 필자의 역작을 망라했다. 다음 주엔 ‘올해의 책’엔 포함되지 못했으나 이대로 떠나보내기엔 아까운, 기자들의 ‘사심 가득한’ pick을 소개한다. 한 해의 끝, 미처 모르고 지나간 ‘올해의 책’을 놓치지 마시길. 한 주 뒤 무게를 덜어낸 통통 튀는 ‘번외편’도 기대하시길.

북리뷰팀


- 사이보그가 되다 | 김초엽·김원영 지음 | 사계절
보청기·휠체어 쓰는 저자… “과학이 장애를 종식할까?”

SF 소설가 김초엽과 김원영 변호사가 ‘과학’과 ‘장애’의 관계를 고찰했다. 열다섯 살 전후부터 각각 보청기와 휠체어를 사용하며 ‘장애인 사이보그’가 된 두 사람은 “첨단과학이 장애를 ‘종식’할 것”이라는 기술 낙관론에 의문을 표한다. 현실의 사이보그는 영화 속 ‘슈퍼 히어로’와 달리 툭하면 “염증을 일으키고 고장을 내는” 기기를 부착하고 살아간다. 저자들은 과학의 효용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완벽한 기술’이 없는 현실에서 ‘완벽한 치료법이 나올 미래’만을 기다릴 때, 지금 당장 장애인들의 더 나은 삶을 모색하기 위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정상적인 몸’이 되길 기약 없이 꿈꾸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사용하는 기계와 편안하게 공존하는 길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을 공부한 소설가와 법률가의 냉철한 문장들이 이어지지만, 사회 곳곳에서 ‘비장애중심주의’와 마주한 저자들의 경험담은 울컥하는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나윤석 기자


-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지음, 이민아 옮김 | 디플롯
협력·소통으로 진화한 인류… 생존의 필수요소는 ‘친화력’

이것은 얼마나 예쁘고, 또 안심되는 말인가. 올해의 책이 아니라, 올해의 제목 혹은 올해의 문장으로도 꼽을 만하다. 우리는 지금 살아남았다. 강해서가 아니라, 다정했기 때문에. 여기서 다정이란 협력하고 소통하는 능력이다. 그러니까, 인류의 생존 필수 요소는 다름 아닌 ‘친화력’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책이 기존 진화론에 반기를 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부부인 미국 듀크대 인지신경과학 센터의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 두 과학자는 그동안 생물학자들이 진화론을 좁은 틀에 가둬뒀다면서, ‘최적자(Survival of the Fittest)’가 아닌 ‘다정한 자(Survival of the Friendiest)’가 진화의 승자라는 것을 강조한다. 가벼운 힐링 에세이 같은 표지를 했지만, 책은 무겁지 않은 과학서에 가깝다. 문화일보 독자 서평 대회와 김영하 작가의 북클럽에서 다루며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갔고, 현재 교보문고 과학도서 베스트셀러 2위에 올라있다. 박동미 기자


- 완전한 행복 |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파멸 향하는 나르시시스트… ‘나 중심’ 시대의 민낯 그려

지난 6월 출간 후 지금까지 약 20만 부를 판매했다. 말 그대로 ‘스릴러 여왕’의 귀환을 제대로 알린 책.

나르시시즘에 빠진 주인공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을 파멸로 몰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행복은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라 믿는 ‘유나’는 아주 약간의 결핍이나 불운도 용납하지 못한다. 불편한 것, 거슬리는 것은 모두 제거해 버리려는, 이 뒤틀린 욕망은 어디에서 온 걸까.

소설은 지나친 자기애와 그릇된 자존감이 어떻게 인간을 망가트리는지 보여주며, 모두가 ‘세상의 중심은 나’라고 외치는 이 시대의 민낯을 드러낸다. 완전하고 완벽한 행복이 있을 수 있을까. 속도감 있는 전개와 예측 불허의 결말 등 정유정표 서스펜스는 변함없이 ‘믿고 볼만’하고, 책장을 덮으면서는 긴 여운 속에 수많은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된다. 재미와 메시지를 두루 갖췄으니, ‘완전한’ 올해의 책이다. 박동미 기자


- 지금 다시 계몽 | 스티븐 핑커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이성을 좇는 한 세상은 진보”… 데이터로 증명하는 낙관론

모두가 힘들고 우울한 시기,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는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며 진보하고 있다”는 낙관론으로 우리를 북돋는다. 860쪽짜리 ‘벽돌책’에 담긴 방대한 통계와 그래프를 갖고서. 18세기 계몽주의 출현 이후 인권·수명·빈곤율·행복 등 다방면에 걸친 지표가 개선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증적 자료들은 인간 이성에 대한 핑커의 믿음이 한 보수주의자의 허무맹랑한 환상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인류사의 폭력’이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킨 세계적 베스트셀러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2012년)와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한층 깊어진 사유와 풍부한 근거를 담았다. 물론 ‘우상향(右上向)’ 그래프가 넘쳐난다고 해서 개인의 힘겨운 삶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과 이성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갖고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가면 된다. 영국 가디언이 ‘올해의 필독서’로 꼽았고, 빌 게이츠는 “내 생애 가장 훌륭한 책”이라고 평했다. 나윤석 기자


-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 임지현 지음 | 휴머니스트
도덕적 정당성 위해 기억왜곡… ‘피해자 코스프레’를 멈춰라!

초국가적(transnational) 역사의 관점에서 일국(一國)사 패러다임을 비판하는 작업을 주도해 온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 그가 14년간의 작업 끝에 내놓은 민족주의 연구서이자 전작 ‘기억 전쟁’(2019년)의 연장선에 있는 책이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란 “후속 세대가 앞세대의 희생자 경험과 지위를 세습하고, 이를 통해 현재 자신들의 민족주의에 도덕적 정당성과 정치적 알리바이를 부여하는 기억 서사”를 말한다. 임 교수는 과연 ‘희생자 민족’과 ‘가해자 민족’만 있는가, ‘희생자 민족 안의 나쁜 개인’이나 ‘희생자 민족 안의 가해자’는 없는가 하는 불편한 질문들을 던진다. 심화하는 불평등과 코로나19 사태 등의 충격으로 극우 파시즘뿐 아니라 타인종·타민족·타성별·타계층에 대한 혐오가 판치고 있는 21세기.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라는 집단적 기억 서사에 대한 비판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향한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오남석 기자


- 한국주택 유전자 1·2 | 박철수 지음 | 마티
‘집’은 왜 욕망의 대상이 됐나… 한국주택 100년史 족보 훑다

모으고 또 모으다 영혼까지 끌어모았다는 의미에서 ‘영끌 투자’라는 유행어를 낳은 한국의 아파트 열풍. 단독주택과 타운하우스 등 수많은 주거 형태 가운데 아파트는 어떻게 해서 한국인들의 비교불가능한 욕망의 대상이 됐을까. 주거문화사 연구자인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지난 100년간의 한국 근·현대 주택의 계보를 추적함으로써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했다. 명실상부한 한국 주택의 ‘보학(譜學)’이자 ‘한국인 주거 공간 100년의 아카이브’라 할 만하다. 이를 통해 일일이 다 언급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주택유형의 서로 다른 형질이 우열을 다투며 변형되고, 살아남은 인자들이 결합해 오늘날 한국 주택의 DNA를 구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흔히 족보들이 그렇듯, 이 책은 ‘벽돌책’이다. 1·2권 총합 1362쪽에 달한다. 그러나 저자는 풍부한 에피소드와 문헌 자료, 시각 자료를 동원해 이 두꺼운 책을 전혀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간다. 오남석 기자


- K-를 생각한다 | 임명묵 지음 | 사이드웨이
‘K’가 상징하는 눈부신 성과…그 이면의 피로와 스트레스

‘1994년생 임명묵’이라는 스타 논객의 탄생을 알린 책. 1990년대생의 눈으로 1990년대생을 바라본 ‘K-를 생각한다’를 이후 비슷한 연배의 저자들이 쓴 책이 연이어 나왔으나 완성도와 화제성에서 단연 압도적이었다.

임명묵은 ‘세대론’뿐 아니라 집단주의적 방역정책, 불공정한 교육 현장 등 다양한 주제를 오가며 한국 사회를 ‘스케치’했다. 이를 통해 K-팝·K-드라마 등 ‘K’가 상징하는 대한민국의 눈부신 성과와 그 이면에 있는 피로와 스트레스를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임명묵은 “K에 함축된 상향의식, 속도 지상주의는 세계화의 급류가 빚어낸 오늘날의 세계와 적절히 조응한다”며 “K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세계를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해준다”고 말한다. 7개월 만에 5쇄를 찍고 1만 3000부 이상 팔렸다. 이 책 출간 직후 정치인 이준석이 사상 첫 ‘30대 당 대표’에 오르는 등 정치·사회 전반에 ‘세대교체’가 중요한 화두로 부상하기도 했다. 나윤석 기자


- 청년 도배사 이야기 | 배윤슬 지음 | 궁리
SKY 출신 청년의 육체노동… 뿌리깊은 ‘학벌주의’에 경종

연세대를 나온 ‘머리 좋은’ 청년이 ‘몸 쓰는’ 도배를 한다고? 책날개에 적힌 저자 이력을 확인한 독자라면 누구나 이런 호기심을 품고 책을 읽어내려갔을 것이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그만두고 2년간 도배 현장에서 겪은 일을 기록한 책은 관습에 구애받지 않는 MZ세대의 새로운 삶을 보여줬다. 비슷한 시기 중동의 분쟁 지역으로 떠난 간호사, 남극으로 간 요리사 등이 쓴 책이 연이어 나오며 ‘MZ세대의 인생론’이 출판계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청년 도배사’는 말한다. “스스로 만족한다면 내 직업을 하찮게 여길 이유가 없다.”

하지만 문득 이런 의문도 생긴다. 과연 저자가 이름 없는 지방대 졸업생이었다고 해도 이만한 주목을 받았을까. ‘SKY 출신 고학력자의 별난 선택’이라는 후광이 책에 대한 뜨거운 관심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완성도와는 별개로 ‘청년 도배사 이야기’는 뿌리 깊은 학벌주의의 한 단면을 확인시켰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한 뒷맛을 남긴다. 나윤석 기자

- 트릭 미러 | 지아 톨렌티노 지음, 노지양 옮김 | 생각의힘
‘좋아요·하트’ 없인 못살아… SNS집착하는 왜곡된 세상

한국에 임명묵이 있다면 미국 뉴욕엔 지아 톨렌티노가 있다. 임명묵이 묵직하고 진중하다면, 톨렌티노는 까칠하고 날렵하다. ‘뉴요커’ 기자 톨렌티노는 데뷔작 ‘트릭 미러’로 “밀레니얼 세대의 수전 손태그”라는 별칭을 얻었다. 9편의 에세이를 관통하는 소재는 인터넷과 SNS. 저자가 11세 때인 1999년 블로그에 처음 글을 올릴 때만 해도 “인터넷은 상당히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자유와 해방의 공간으로 기대를 모았던 인터넷은 이제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의 세계”로 변했다. ‘좋아요’와 ‘하트’를 받지 못하면 불안한 디지털 중독자들은 끊임없이 ‘미덕’을 부풀리고 과시한다. 이런 SNS 집착은 ‘온라인 자아’와 ‘실제 자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중도’가 아닌 ‘극단’이 주목받는 분위기를 조장했다. 가차없는 자기비판과 우리 시대에 대한 집요한 성찰을 담은 책은, ‘왜곡된 거울’이라는 뜻의 제목처럼 투명 유리에 비친 상(像)이 참모습인지를 숙고하게 한다. 나윤석 기자


- 고래가 가는 곳 | 리베카 긱스 지음, 배동근 옮김 | 바다출판사
바다 표류하는 병든 고래… 기후변화 재앙을 추적하다

인류가 당면한 최대 현안 중 하나가 기후위기임을 드러내듯 ‘환경’에 관한 수많은 책이 쏟아진 한 해였다. 그 가운데서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은 ‘고래’를 통해 기후변화의 징조를 포착한 구체성, 그리고 아름답고 시적인 문장 덕분이다. “레이철 카슨의 1962년 작 ‘침묵의 봄’에 필적할 만한 환경 논픽션”이라는 평가가 아깝지 않다. 책은 호주 해변에 혹등고래 한 마리가 떠밀려 내려오며 시작한다. 고래 몸은 독성 화학물질에 중독돼 있었고, 배 속엔 엄청난 양의 쓰레기와 플라스틱이 들어차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병든 고래’가 바다를 표류하는 ‘고래 낙하’가 수십만 건씩 발생하고 있다. 1000그루 나무와 맞먹는 탄소 흡수 효과를 내는 생명체였던 고래가 지구적 규모로 진행된 ‘환경재앙’의 표본이 된 것이다. ‘헤아리다’는 뜻의 원제(Fathoms)처럼, 자연과 다른 생명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인류의 미래도 없다는 것을 잔잔하고 고요하게 설득한다. 나윤석 기자


■ 책이 주는 위로와 용기

여기, 10권의 책이 있습니다. 저마다 독자의 선택을 기다리며 고개를 빼꼼히 내민 수많은 책 가운데 문화일보가 정성스레 골랐습니다. 지금 우리는 여러모로 힘겨운 시기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새해엔 오늘보다 밝은 내일이 펼쳐지길 소망합니다. 문화일보가 선정한 ‘올해의 책’과 함께 지치지 않을 용기를, 그리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