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문10답>유럽發 에너지 위기…전세계 또다시 공포

러, 우크라와 군사위기 고조속 가스관 차단 ‘에너지 무기화’
국제 LNG 가격 역대 최고치…‘原電’이 해법으로 재부상

유럽 풍력발전 저하가 1차원인
신재생 에너지 한계 잇단 지적

최근 러 몽니에 에너지난 가속
우크라 나토 편입 조짐에 반발
아말 - 유럽 가스관 공급 끊어

韓도 에너지 위기 불똥 가능성
석탄 발전 비중 늘려야할 수도

原電, 탄소중립 달성·수요 충족
佛마크롱 “10억유로 투자” 밝혀


한동안 잠잠했던 유럽발(發) 에너지 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다시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유럽의 주력 에너지원인 천연가스 부족은 원유는 물론 석탄 등 대체연료 가격을 연쇄적으로 자극해 전 세계적 ‘E플레이션 (Energy+Inflation)’을 촉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풍력에너지 발전 부족이 촉발했던 올여름 1차 에너지 위기와 달리 최근 위기는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지정학적 갈등이 불거지며 발생했다는 차이가 있다. 유럽 천연가스의 40% 이상을 공급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편에 선 유럽을 압박하기 위해 일부러 천연가스 공급을 줄이고 있다는 얘기다.

1. 추운 겨울 앞두고 유럽 에너지 가격 연일 천정부지

지난 21일 유럽 천연가스의 주요 가격 지표인 네덜란드 TTF 거래소의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메가와트시(㎿h)당 사상 최고가인 180유로(약 24만1800원)까지 치솟았다. 이는 전일 종가 134유로에 비해 34%나 오른 가격이다. 22일 가격은 165유로로 소폭 하락하기는 했지만 20유로 선에서 거래되던 올해 초에 비해 8배 이상으로 오르며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다. 천연가스 가격 급등은 유럽 곳곳의 전기요금 인상에 직접적 원인이 됐다. 지난 19일 유럽전력거래소(EPEX Spot)에서 프랑스의 다음 날 공급분 전기는 ㎿h당 382.08유로에 거래됐다. 2009년 이후 12년 만의 최고가 기록이다. 같은 거래소에서 독일의 다음 날 공급분 전기 역시 331.37유로로 역대 3위 가격을 기록했다. 이베리아전력거래소(OMIE)에서는 스페인의 전력 도매가격이 339.84유로로 역대 최고가 기록을 썼다.


2. 가격 상승 1차 원인은 풍력발전 저하 등 에너지 생산량 급감

사실 조짐은 여름부터 있었다. 지난 9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영국의 전기요금이 전년 동기 대비 7배로 급등했다고 대서특필했다. 영국은 전체 전기 생산의 4분의 1을 풍력에 의존하는 국가로, 북해의 바람이 잦아들면서 풍력발전으로 생산하는 전기의 양이 급감한 것이 원인이었다. 영국뿐 아니라 아일랜드는 물론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등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전기요금이 급등했다. 당시 언론은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 과정이 급격하게 이어지며 석탄 등 기존 에너지원을 활용하는 발전소의 가동이 중단되는 단계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지적했다. 기후와 날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신재생에너지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였다.


3. 러시아의 유럽행 가스관 일부 차단도 에너지난 가속

당시 일부 유럽 국가는 전기요금 급등이 유럽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높이려는 러시아가 가스 수출을 줄였기 때문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이 사안에 대해 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러시아는 펄쩍 뛰었다. 그러나 충분히 의심이 갈 만한 상황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독일로 이어지는 1230㎞에 달하는 가스관 노드스트림2의 완공을 앞둔 상태로 독일에 해당 가스관의 조속한 승인을 압박하고 있었다. 실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유럽의 의혹 제기는 당치 않다면서도 “독일 당국이 만약 내일 노드스트림2 가동을 승인해주면 바로 모레 175억㎥의 가스 공급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미국 등은 해당 가스관이 개통될 경우 러시아가 가스를 무기화할 수 있다면서 가스관 승인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4. 왜 러시아는 가스관을 차단했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위기감이 고조되며 러시아의 가스 무기화는 점점 노골화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지난 18일부터 벨라루스를 거쳐 독일로 연결되는 ‘야말-유럽’ 가스관의 수송량을 조금씩 줄이기 시작하더니 21일부터는 아예 가스 공급을 중단한 상태다. 이에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역대 최고가로 폭등했지만 러시아 측은 오히려 유럽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최근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로부터 사들이는 가스 계약을 기존 ‘장기’에서 ‘단기’로 바꾸는 바람에 안정된 가격에 원활한 가스 공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유럽 국가는 최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러시아의 앞마당에 해당하는 우크라이나의 가입 여부를 검토하는 등 동진(東進)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대해 러시아가 반발, 이 같은 가스 무기화에 나선 것으로 해석한다.


5. 나토 동진에 왜 러시아는 반발하나?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서방의 각종 경고에도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집착하는 속내에는 옛 소련에 대한 향수와 민주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여 있다고 분석했다. 냉전이 종식된 뒤 소련은 15개 나라로 분리되며 해체됐다. 옛 소련에서 독립한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까지 나토 가입을 희망하면서 ‘러시아 영향력’은 옅어지고 ‘민주주의’ 색채는 짙어지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선거를 통해 정권을 창출하고 시민사회 활동도 활발해 민주주의가 점차 뿌리내리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권역이 ‘서구 민주주의’와 맞지 않는다고 주장해왔지만 우크라이나는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며 러시아와 ‘다른 길’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FT는 민주주의가 러시아 바로 앞마당까지 번져 오는 것이 푸틴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는 가장 큰 이유라고 지적했다.


6. 노드스트림2 승인 절차 중인 獨은 어떻게?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에서 독일로 이어지는 노드스트림2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저지할 수 있는 강력한 지렛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노드스트림2의 승인 여부가 해당 가스관의 조속한 승인을 바라는 러시아에 내밀 수 있는 협상 카드가 된다는 의미다. 문제는 노드스트림2 승인의 ‘키’를 쥔 독일이다. 독일은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 시절부터 자국의 안정적인 가스 수급을 위해 러시아와 협력해 노드스트림2를 건설해왔다. 독일 내에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올라프 숄츠 신임 총리 역시 해당 가스관의 승인을 바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맹과의 협력이라는 가치보다 실리적 판단을 우선시하겠다는 의미다. 물론 미국 등은 지속해서 독일을 압박하고 있다. 이에 독일은 일단 내년 상반기까지 노드스트림2의 승인을 보류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7. 내년 美·EU와 러시아 간 협의 전망은?

러시아는 내년 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국과 협상을 시작할 예정이다. 나토도 내년 1월 12일 ‘나토·러시아 위원회’ 소집을 제안했고, 러시아와 독일 역시 내년 초 고위급 회담 개최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지난 24일 미 상원의원 등 주요 인사 20명과 화상 통화를 하며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미국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는 최근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 배치한 군 병력 중 1만여 명을 전격 철수했다. 협상을 앞두고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지대에서 긴장을 다소 완화하려는 의도다. 그러나 궁극적 긴장 완화를 기대하기엔 시기상조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철수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의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8.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당장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작겠지만 장기화할 경우 우리나라도 ‘영향권’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국제 LNG 가격은 최근 100만 BTU(열량단위)당 40달러 중반대까지 치솟으며 역대 최고치에 근접하고 있다. 불과 6개월 사이에 4배 가까이로 오르면서 에너지 인플레이션을 촉발해 온 LNG 가격 폭등세에 ‘기름’을 붓고 있다. 러시아발 유럽 가스 대란까지 장기화하면 억눌러온 도시가스나 전기요금 가격은 가파르게 오르고, 최악의 경우 석탄 발전 비중을 늘려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LNG 업계 관계자는 “해외 수입을 대부분 전담하고 있는 한국가스공사가 동절기 물량을 이미 확보하고 있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 중간에서 가격 인상 부담을 막아온 가스공사나 에너지 공기업도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세먼지 감축과 탄소중립 규제 영향으로 LNG 발전에 대한 의존도는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한국전력과 가스공사는 정부 시책으로 원료비 증가분을 요금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


9. 전반적 에너지난 속 정부 대책은

우리 정부도 미국 주도 아래 인도, 영국 등과 비축유 공동 방출에 동참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와 관련해 내년 1월부터 3개월간 총 317만 배럴의 비축유를 순차적으로 방출할 계획이다. 전체 정부 보유분의 3.3% 정도다. 정유사 수급 불안을 사전에 해소하는 동시에 동절기 수요가 많은 등유·프로판을 혼합 방출해 석유제품 수급 차질을 방지하는 효과가 기대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앞서 지난달 12일 취해진 유류세 20% 인하 조치도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달 초 ℓ당 1800원을 넘어섰던 전국 휘발유 평균가격이 최근 1600원대로 일단 소폭 하락하기는 했으나, 국제 정세, 기후변화, 산유국 상황에 따라 언제 다시 튀어 오를지 모른다는 위기감은 여전하다.


10. 근본적 해결책은 결국 원전 재개뿐

글로벌 에너지난 해소의 열쇠로 저렴하고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원자력발전이 재부상하고 있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수요 증가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대안이란 평가에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원전 연구·개발(R&D)에 정부 자금 10억 유로(1조3770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EU가 원전을 ‘친환경에너지’로 분류해 ‘지속가능한 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에 포함할지도 연말연시를 전후해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우리나라 역시 유력 대선 주자들이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검토 등을 언급하면서 차기 정부에서 탈(脫)원전 정책이 폐기 또는 수정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원전을 지속하기 위해 핵폐기물 처리나 부지 확보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임정환·박수진·이관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