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다 죽어라’ 헤이트 스피치에 ‘죗값 묻겠다’ 투쟁 끝 승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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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1-12-3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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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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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016년 6월 19일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 관련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 재판에서 처음으로 ‘복합차별’을 인정받아 승소한 뒤, 일본 오사카 지방법원 프레스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응원 메시지가 적힌 한복을 입고 소감을 밝히고 있는 이신혜(가운데) 씨와 변호인단. 오소영 감독 제공


■ 日 혐한단체 상대 4년 법정싸움 다큐 ‘더 한복판으로’

- 주인공 이신혜·영화감독 오소영 단독인터뷰

극우·혐한 단체 ‘재특회’ 상대
‘재일동포 차별’ 첫 판례로 남겨

한국 전통춤 추며 정체성 찾고
항상 ‘한복’만 입고 법정 나가
한복엔 응원 문구 빼곡히 담겨

오 감독 “고통의 시간속에서도
유머 잃지않는 삶의 태도 배워
다큐 ‘더 한복판으로’ 제목은
‘한복·재판 한복판’ 두개의 뜻”


김선영 기자, 정리 = 장서우 기자

“‘나쁜 조선인도 좋은 조선인도 다 죽어라’라는 말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재일(在日·재일 한인)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재특회) 전 회장 사쿠라이 마코토(櫻井誠)가 절 보고 ‘여자라서 놀리기 좋다. 이신혜가 여기 왔으니 죽이자’고 조롱하는 것을 들으며 이 고통을 판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재일동포 2.5세 프리랜서 작가 이신혜(여·50) 씨는 28일 문화일보 단독 인터뷰에서 일본의 극우·혐한 단체인 재특회를 상대로 4년간의 손해배상 소송 끝에 승소한 계기를 덤덤히 풀어놨다. 하지만 이는 상당한 의미를 가진 재판 결과였다. 일본에서 개인이 낸 재판 중 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인 ‘헤이트 스피치’가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에 해당한다는 것을 인정받은 첫 역사적인 판례였기 때문. 이 과정은 다큐멘터리 ‘더 한복판으로’를 통해 영화화됐다. 이 씨는 지난 8일 한국에서 여성인권영화제에 출품돼 공개된 이 작품을 만든 영화감독 오소영(여·49) 씨와 함께한 화상 인터뷰에서 보수적인 일본 사회 속에서 벌인 투쟁의 기록을 털어놓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17년 11월 19일 오사카 우메다역 앞에서 ‘헤이트 스피치’ 시위에 맞서는 카운터스들. 오소영 감독 제공


이 씨가 재특회와 맞서 싸워야겠다고 다짐한 시기는 2013년 2월이었다. 도쿄(東京)의 한 공원에서 재특회 회원들의 ‘헤이트 스피치’를 듣고는 참을 수 없다고 느낀 것. 이후 이 씨가 ‘조선인을 죽이자’는 발언을 일삼는 재특회 회원들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고 방송에 출연하기 시작하자 이제 이 씨가 표적이 됐다. 이 씨는 “날 향한 재특회의 혐오 발언에 대한 죗값을 묻지 않으면 다른 재일 한국인을 상대로 한 ‘헤이트 스피치’가 확산될 것이 뻔하기에 소송을 걸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2014년 8월 재특회의 사쿠라이 전 회장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3년 3개월 뒤인 2017년 11월 29일은 역사적인 날이었다. 일본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 격)가 사쿠라이 전 재특회 회장에게 77만 엔(약 796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이 씨에게 지급하라고 확정판결을 내린 것. 재일동포에 대한 민족 차별과 여성을 향한 성차별이 얽힌 ‘복합차별’을 당했다는 피해 사실이 법정에서 공식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2018년 12월에는 일본의 보수 성향 인터넷 사이트 ‘호슈소쿠호’(保守速報)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최종 승소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강휘선 한국무용연구가로부터 한국무용을 배우고 있는 이신혜(왼쪽) 씨. 오소영 감독 제공


4년의 소송 끝에 승리한 뒤 이 씨가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바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었다. “내 사례가 바로 다양한 형태의 복합차별 중 하나”라는 이 씨에게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야말로 전쟁 중 민족적 차별과 여성 차별을 복합적으로 받은 대표적 피해자였다. 이 때문에 이 씨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역시 “복합차별인 만큼, 사회가 피해 사실을 제대로 알려고 노력할 때 해결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헤이트 스피치’에 정면으로 맞서 싸운 이 씨의 마음 한켠에는 두려움이 생겼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 씨가 선택한 묘책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한복을 입고 법정에 들어선 것. 한복은 일본에서 부유하며 살아온 재일 한국인들이 움켜쥔 뿌리였고, 재일동포 1세대인 아버지와 2세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 씨는 어릴 적 어머니의 한복을 입고 한국 전통춤을 추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 왔기 때문.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더 한복판으로’의 포스터. 오소영 감독 제공


이 씨는 “한복을 입으면 어머니와 함께 법정에 나선다는 마음이 들어 든든할 것 같았다”면서 “첫 재판에 한복을 입고 나가니 주변 분들 반응도 좋아 ‘앞으로 재판이 끝날 때까지 매번 다른 한복을 입고 나오겠다’고 덜컥 약속해버렸다”고 말했다. 매번 새로운 한복을 맞춰 입다 보니 비쌀 땐 한 벌에 80만 원씩 들 때도 있었다. 이 씨는 “재판에 승소해서 받은 배상금이 너무 적어 결국 다 한복값으로 들어갔다”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한복은 이 씨에게 자신감만 준 게 아니었다. 한복은 재일동포들의 혐오와의 투쟁에서 ‘무기’가 됐다. 이 씨가 ‘카운터스’(차별에 맞서 싸우는 일본인 시민연대) 회원들에게 한복에 응원의 메시지를 써달라고 청하곤 했다. 이 씨는 “그 수많은 문구 중에서 ‘인간답게 빛을 내뿜으며 살자’는 메시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이 문구는 일본에서 부락 차별반대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써온 말인데, 지금 내가 일본사회 차별의 역사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오소영 감독.


한복은 오 감독이 이 이야기를 영화화하게 한 모티브이기도 했다. 법정에서 한복을 입은 이 씨가 담긴 사진 기사를 본 오 감독은 재일동포 지인을 통해 이 씨와 접촉했고, 1심부터 최종심까지의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오 감독 역시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바로 “고통의 시간에도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유머를 잃지 않는 삶의 태도”, 오 감독이 배운 교훈이었다. 오 감독은 “언니(이 씨)가 투쟁적인 사람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고통스러운 재판과정 속에서도 지인들에게 농담을 던지고, 매번 다른 한복을 입고 나오며 즐거움을 주려 하는 게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제목도 ‘더 한복판으로’라고 붙였다. ‘한복’을 입고 재판 ‘한복판’에 선 여자, 오 감독에게 그게 바로 이 씨였다. 오 감독은 “일본에서 재일동포가 한복을 입는다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며 “한복이 언니의 삶의 방식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카운터스’ 중 한 명으로부터 “우리가 이신혜를 재판 한복판에 세우고 끝까지 응원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참조했다. 이 씨 역시 “지난 몇 년간 내가 투쟁해온 이유는 재일동포들이 일본 중심가의 한복판을 당당하게 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너무 지쳐 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재일동포 인권 문제는 일본 사회의 암묵적 차별을 관통하는 핵심 이슈”라며 “나를 시작으로 수많은 헤이트스피치 관련 재판이 열리고 있기에 이들과 끝까지 함께 싸워 이겨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 씨가 피운 작은 불씨가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일본 사회에서 큰 불꽃으로 타오를 수 있을까. 쉽게 전망하기는 어렵지만 작지만 소중한 변화가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2019년 가와사키(川崎)시가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조례를 통해 혐한 시위를 반복하는 개인에게 벌금을 부과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물론, 일본사회 차별의 벽은 높고도 견고하다.

하지만 이런 변화와 투쟁의 기록이 쌓여 임계점에서 폭발하면 결국 이 씨를 비롯한 재일동포들은 일본 사회의 혐오라는 벽을 넘어설 수 있다. 다큐멘터리 제목처럼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일본 사회의 일원으로서 ‘더 한복판’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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