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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병종의 시화기행 게재 일자 : 2022년 01월 11일(火)
끌·망치·붓으로 천국을 설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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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종, 어린성자, 68×62㎝, 종이에채색, 1987.


■ 김병종의 시화기행 - (102) 바티칸 미술관의 천재들<上>

89세까지 산 미켈란젤로와
37세로 세상 떠난 라파엘로
생물학적 삶의 길이 상관없이
일생에 걸쳐 재능 잘 쓴 그들

문맹률 높았던 시대였기에
‘비주얼랭귀지’ 호소력 높아
예술가들이 진리의 길 안내
바티칸은‘ 미와 종교의 접점’


엊그제 새 책을 들고 이어령 선생을 뵙고 왔다. 육신은 더할 수 없이 말라 있었지만 언어는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이와 대화하다 보면 종종 그 종횡무진과 전광석화의 언어들 앞에서 ‘천재’라는 말이 머리를 스치곤 했다.

중국에 명재상을 여러 명 길러낸 대석학이 있었다. 그 문하에서 동문수학했던 제자들이 어느 날 노스승을 찾아와 물었다. 저희들 중 누가 가장 뛰어났습니까. 스승은 빙그레 웃더니 글자 네 개를 썼다. 장생구시(張生求是). 그리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오래 사는 일이다. 즉 가장 오래 사는 자가 가장 뛰어난 자이다. 경우는 다르지만 니체도 비슷한 말을 했다. 천재란 가진 재능을 일생에 걸쳐 잘 나누어 쓰고 가는 사람이라고. 물론 그 ‘일생’은 중국인처럼 생물학적으로 오래 산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바티칸 미술관을 둘러 보는 동안 ‘천재’라는 말이 머릿속을 뱅글뱅글 돌아다녔다. 그곳이야말로 한 생애를 살다간 천재들의 향연장이었다.

그들이 남기고 간 작품들을 보기 위해 동서남북에서 일 년 열두 달 사람들이 모여든다.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볼 수 있으면 행운이라고 할 만큼 거의 늘 관람객으로 장사진이란다(다행히 비수기여서 나는 계단을 보며 걸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엄청난 보물창고로 들어가는 아치형 석조 문 위에는 두 사람의 형상이 서로 시선이 엇갈리며 상대 쪽을 향하고 있다. 하나는 미켈란젤로의 노년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라파엘로의 청년 모습이다(하긴 그들에게는 중년이나 노년이 없었다). 미켈란젤로는 평균 수명 40세 남짓하던 시절에 그 두 배가 넘는 89세까지 살았고 라파엘로는 서른일곱 해를 살고 갔다. 하지만 그 생물학적 삶의 길고 짧음과는 관계없이 니체식으로 말한다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재능을 나름의 생애 동안 각각 잘 쓰고 간 예술가들이었다.


특히 미켈란젤로는 사도 바울처럼 독신으로 살면서 그야말로 미(美)의 사도로만 살다간 사람이었다. 바울이 말과 글, 발로 로고스를 전파했다면 미켈란젤로는 끌과 망치와 붓, 그리고 그것을 든 손으로 천국을 설파했다.

사실 성경 보급도 잘 안 돼 있는데다 문맹률까지 높았던 그의 시대에는 버벌 랭귀지보다 비주얼 랭귀지가 더 호소력을 가진 시대였다. 성경은 성직자들의 전유물이다시피 했고 그 보급은 제한적이었다. 그런 형편에서 종교와 미는 만날 수 있을까 정도가 아니라 완벽하게 그 둘이 겹쳐졌던 것이다. 허다한 경우, 사제는 비켜서있다시피 했고 영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예술가들이 비주얼 랭귀지로 진리의 길안내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미의 궁극으로 파고 들어가면 거기서 우주를 디자인하신 대예술가 창조주를 뵈올 수 있으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의 시각적 해석이 무한한 창조세계를 자신들의 상상력 안에 제한시켜 버린 것도 사실이지만 초기 기독교 성장에 기여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다 나중에는, 급기야 이콘을 파괴해야 진정한 신앙을 얻게 된다는 논쟁에 이르기도 했지만 말이다.

사실 시각화되지 못하는 종교는 쇠퇴와 사멸을 면하지 못한다. 이를테면 심오한 도교(道敎) 같은 경우에도 시각적 심벌을 만들어내지 못함으로써 쇠퇴하였고 유교 또한 훌륭한 경전들에도 불구하고 명료한 시각 상징물로 전파되지 못함으로써 힘을 잃고 만다. 초기 기독교는 박해와 위기에도 불구하고 물고기 형상과 십자가 심벌로 은밀하게 그 세(勢)를 불려 나갔다. 예수께서는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더 복되도다(요한복음 20:27)”고 하셨는데 인간이 시각에 의지하여 추론하고 상상한다는 사실을 그분도 아시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기에 자식을 주시겠다는 ‘언어 약속’에도 불구하고 흔들렸던 아브라함을 굳이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저 별처럼 많이’라고 시각적 약속으로 확증시켰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바티칸이야말로 미와 종교의 접점이었다. 창조와 천국에 대한 비언어적 실재를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확실히 미켈란젤로 시대의 사람들은 ‘창세기’를 성경보다는 그의 ‘천지창조’ 그림으로 보았고 믿었다.

이는 마치 내가 모세를 상상하면 어렸을 때 보았던 영화 ‘십계’의 배우 찰턴 헤스턴이 떠오르는 것과 같은 연상작용이다. 이 나이가 되기까지 모세를 떠올리다 보면 배우 헤스턴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이니 시각 잔상이란 기억 표상에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모른다. 그렇다. 시각은 확실히 힘이 세다. 꼬박 한나절을 돌았지만 미술관은 반도 보지 못했다. 내일 다시 오는 수밖에. 밖으로 나오니 햇빛이 눈부시다. 돌아서서 내가 방금 나온 집을 되돌아본다. 저곳은 교회인가 미술관인가.

화가, 가천대 석좌교수

▲  김병종 작가가 바티칸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 바티칸 미술관은…
원래 교황 거주지였지만 1506년 소장품 공개하며 18세기 후반 미술관 전환


바티칸 미술관은 원래 교황들의 거주지였으나 1506년 교황 율리오 2세 때 교황청 소장의 미술품들을 일반인에게 공개하기 시작하면서 18세기 후반부터 완전히 미술관으로 개조되었다. 바티칸 미술관은 피나코테카 회화 미술관(Pinacoteca Art Gallery), 키아라몬티 미술관(Museo Chiaramonti) 등 몇 개의 미술관을 총괄하는 군집형이다. 2019년에만도 700만 명 가까운 관람객이 다녀갔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와 무려 40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최후의 심판,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과 그리스도 변모 등 헤아릴 수 없는 명작들이 소장돼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88일간 폐쇄되었는데 이는 세계 2차대전 이래 최장 기간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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