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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M 인터뷰 게재 일자 : 2022년 01월 14일(金)
“뮤지컬은 아름다운 거짓말… 배우·연주자·관객이 함께 꾸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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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서울 서대문구의 ‘더 피트 오케스트라’ 연습실에서 만난 김문정 뮤지컬 음악감독. 지휘자로 데뷔한 지 20년이나 됐는데도, 그는 “여전히 지휘봉을 들면 설렌다”고 했다. 신창섭 기자

■ M 인터뷰
- 지휘자 데뷔 20년·거쳐간 작품만 50편… 김문정 음악감독

무대밑 오케스트라 공간은 ‘우주’
단원들은 어둠속 반짝이는 ‘별’
서로 눈도 잘 맞아… 커플 다수
고도의 집중… 그 긴장감이 좋아

모든 예술의 바탕은 결국 사람
그래서 치유·위로 능력 갖는 것
코로나 이후 ‘사치’ 시각에 씁쓸

작품 선택 기준은 마음의 끌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곧 도전


국내 공연 뮤지컬 중 김문정(50) 뮤지컬 음악감독의 귀를, 그리고 손을 거치지 않은 작품이 몇 개나 될까. 국내 최초 뮤지컬 전문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기도 한 김 감독은 오케스트라 피트(음악 연주자들이 자리 잡는 무대 앞 낮은 구역)를 ‘우주’, 그리고 연주자들을 ‘별’에 비유했다. 지휘자로 데뷔한 지 20년. 그동안 그 ‘우주’가 만들어낸 무대는 50편을 훌쩍 넘겼다. ‘명성황후’ ‘레미제라블’ ‘맘마미아’ ‘맨 오브 라만차’ ‘광화문 연가’ 등 공연 마니아가 아니라도 한 번은 봤을, 혹은 한 번은 들었을 바로 그 작품들. 그 세월 동안 그가 만났을 배우와 연주자, 노래, 그리고 관객을 생각하니 그 우주는 감히 눈으로, 또 머리로 크기를 가늠할 곳이 아니구나 싶다. “오케스트라 피트, 그 좁고 어두운 곳이 정말 너무 좋다”는 김 감독을 지난 6일 서울 서대문구 ‘더 피트 오케스트라’ 연습실에서 만났다.

―뮤지컬 음악감독으로서 활동한 지 어느새 20년이다. 기분이 어떤가.

“2001년 ‘둘리’로 공식 데뷔했다. 그게 정말 어제 일 같아서, 20년에 큰 의미를 두고 싶지 않다. 하루하루가 내가 살아온 결과의 연속인 것이고, 매일 내 앞엔 ‘오늘 잘 해내야 할 일’이 놓여 있을 뿐이다. 다만, 알게 모르게 쌓인 노하우가 일을 조금은 수월하게 해주는 것도 같다. 그리고 되돌아보며 ‘아, 많이 해먹었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하.”

―음악을 업으로 삼은 건 30년이다. 꾸준함의 동력은 무엇인가.

“체력과 긍정적인 성격? 뻔한 것 같은데…. 내가 정말 피곤이란 걸 잘 모르는 사람이다. 하하. 아무거나 잘 먹고 잘 자고, 감기도 거의 걸려 본 적이 없다. 또 바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좋은 습관을 어머니에게 물려받았다. 그리고 ‘감사하다’ ‘미안하다’는 말을 잘하는 편이다. 돈도 안 들고 금방 상대방 기분도 풀리고, 내 마음도 편해지는 방법이다. 그 모든 게 동력일 수 있겠다.”

―그래도 지칠 때가 있을 텐데. 음악 외에 리더로서의 역할도 있고.

“스트레스를 받거나 한계에 부딪힐 땐 빨리 태세전환을 한다.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을 극복하려고 너무 애쓰지 않는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그저 버티곤 한다. 다만 리더라서 요구되는 일엔 확실히 집중한다.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든 해야 하는 게 리더의 자리니까…. 그래도 어려울 때는 나도 함께 버티겠다고, 용기와 위안이 돼 주려 노력한다.”

김 감독은 고등학교 시절 학교 합창단에서 지휘도 했고, 동네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이때 함께 밴드에 있었던 멤버가 ‘토이’의 유희열이다. 이들은 변변한 악보 없이 각자 맡은 파트의 멜로디를 따서 합주를 했다. 당시 고3이었던 유희열이 음대에 가겠다며 뜻을 밝혔을 때, 김 감독 역시 음악이 취미 그 이상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그리고 실용음악과에 진학하게 된다.

―뮤지컬이 길이라는 마음의 울림이 언제 있었나.

“대학생때 종종 가수들 세션을 했다. 그러다 뮤지컬 ‘코러스 라인’에 합류하게 됐는데, 이때였다. 가요는 보통 3분 30초 안에 일정한 패턴으로 진행되는데, 뮤지컬에는 1분짜리도, 10분짜리 곡도 있었다. ‘만약 음악을 계속한다면 이런 거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 후에 결혼해 아이를 낳고 잠시 잊었는데 명성황후 건반 연주를 맡으면서 ‘그래, 이거였지!’ 하고 그 기억이 나더라.”

―음악감독만 한 게 아니라, 워킹맘으로도 20년이다. 그게 더 대단하다.

“겁이 없었다. 스물다섯에 결혼해 아이 둘을 낳고 본격적으로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세션 활동을 하고, 공부를 하고, 공연도 보고 그랬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돼서 자각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운 좋게도 ‘젊은 할머니’인 친정엄마의 도움이 있었고, 힘들다는 생각을 별로 못했다. 그래도 육아는 만만치 않았다.”

지난해 12월 김 감독은 ‘이토록 찬란한 어둠’(흐름출판)이라는 자전적 에세이를 출간했다. 데뷔 20주년에 특별히 의미를 뒀다기보다는 자신이 만난 음악들을, 자신과 함께 걸어가는 ‘뮤지컬’을, 일하며 만난 사람들을 써보고 싶었다. 최근 TV 프로그램을 통해 공연 팬이 아닌 이들에게도 유명해진 그는 “과거엔 작품 이야기가 80%였는데, 이제는 내 얘기가 80%가 된 것 같다”며 웃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아니 반면교사라도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어요.” 책은 김 감독의 전문성은 물론이고, 뮤지컬을 통해 성찰한 것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동료와 후배들의 앞날을 열어주고픈 따뜻한 마음도 깃들어 있다. 유려한 문장과 섬세한 표현들이 범상치 않아 물으니 “학교 다닐 때 글 좀 썼다. 상도 꽤 탔다”며 웃었다. 무엇보다 그의 글엔 ‘사람’이 가득했다.



―가족과 동료 등 에세이에서 계속 ‘사람’을 강조한다.

“뮤지컬에서 변하지 않는 건 그걸 만드는 ‘사람들’이다. 소재만 다를 뿐이지, 결국 인간사를 다루는 것이고. 예술은 그래서 치유와 위로의 능력을 갖는다. 점점 그 역할이 커져야 하는 것인데…. 지금은 코로나19라는 너무 큰불이 발등에 떨어져 있어서 그럴 수도 없고, 이해는 하면서도 씁쓸할 때도 있다.”

―일하며 만난 배우와 연주자들, 그러니까 ‘뮤지컬 피플’은 어떤 이들인가.

“감성에 충실하고 돈으로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다. 늘 신선한 음악을 하고 싶고, 뜨거운 열정이 있고, 때로는 원숙미도 있고, 온 세상을 하얗게 덮을 수도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계절로 치면 이들은 사계절을 모두 사는 사람들이다.”

―특히,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가족만큼이나 돈독할 것 같다.

“젊은 시절 만나 이제 각자 가정을 이루기도 했고, 함께 걸어가는 인생의 동반자다. 해마다 설날이 되면 단원들의 가족까지 모두 모여 맞절을 한다. 그때 2세들에겐 세뱃돈도 준다. 이 안에 커플, 부부도 꽤 된다. 어두운 데서 눈으로 호흡하니, 다들 눈도 잘 맞는다. 하하.”

김 감독은 평소 ‘행복’이라는 감정을 의식하며 살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연주자들 앞에서만큼은 가끔 ‘행복’이라 부를 만한 상태가 된다. 말없이 모든 게 통했을 때. 특히, 공연 중 돌발상황이 생겼을 때, 이심전심으로 서로가 원하는 조치를 취할 때다. “정말 그런 순간은 짜릿하고, 보람되고, 서로의 존재감을 확인해요. 아, 역시 이 일이 천직이다 싶으면서 행복하죠. 그렇지만 ‘행복해’란 말은 ‘사랑해’처럼 너무 고귀해서 남용하고 싶지 않아요.” 그는 책에서 단원들과 함께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피트를 ‘우주’라고, 연주자들을 ‘별’이라고 부르며 깊은 애정을 표했다.

―오케스트라 피트는 좁고 어둡다.

“비행기 이코노미석만큼이나 다닥다닥 붙어 앉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가, 꼭 여행 떠나기 전 느낌 같기도 하고. 지휘봉을 딱 들면 40개의 눈동자가 날 본다. 그 긴장감이 좋다. 매번 새로운 준비를 하고, 다시 출발하는 그 마음가짐들을 사랑하고 즐기는 것 같다.”

―공연 전 자신만의 의식이 있나.

“연주자들은 악기를 조율하면서 마인드컨트롤을 한다. 지휘자에겐 공연 시작 전, 뒤돌아서 관객에게 인사할 때다. 공연장의 고요와 적막이 ‘이제 너에게 노를 맡긴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심호흡을 하고, 인사를 한다.”

1997년 명성황후의 건반 연주자로 시작해 쉼 없이 달려온 그에게 특별하지 않은 작품은 없다. 그럼에도 ‘결정적인’ 작품들은 있었다. ‘맨 오브 라만차’의 오케스트라를 이끌면서 두각을 나타냈고 ‘맘마미아’ 때는 피아노를 치며 지휘를 해 주목을 받았다. ‘내 마음의 풍금’으로는 작곡 능력까지 인정받게 된다.

―국내 뮤지컬 중 안 해 본 작품이 더 적을 것 같다. 지루함 같은 건 없는지.

“명성황후는 25년째, 맨 오브 라만차도 10년째, 어지간한 것은 전부 10년씩 한 것 같다. 그런데 매년, 매회 공연은 다르다. 해마다 배우가 바뀌고, 연주자도 바뀌고, 그리고 관객은 매일 바뀐다. 오래 하다 보면 수월해지기도 하지만, 요즘 감성을 담아 새로운 작품 하듯 만들어야 하니까 쉽지 않다. 매번 집을 한 채 짓는 기분이다. 이번에는 또 어떤 집을 짓게 될까 기대하면서.”

―기술적인 의미나 음악 용어 말고. ‘뮤지컬’이 뭐라 생각하나.

“진실로 아름다운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다. 배우와 연주자는 아름답게 거짓말을 하고, 관객들은 우아하게 속아준다. 한 공연장 안에서 무대와 관객은 함께, 거짓말 같은 꿈을 꾼다. 그 순간은 기억되고, 공연은 영원한 존재가 된다. 이렇게 멋있는 장르가 또 있나.”

그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실로 단순했다. 마음을 끄는 것. 그것은 어쩌면 가장 어려운 조건이기도 하다. 김 감독은 “한번 결정하면 ‘고’ 해야 하기 때문에 고민을 정말 많이 한다”고 했다.

―지금 준비 중인 작품은.

“처음 도전하는 작품이 있다. 영화로도 최근 개봉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한 음악들은 연주하기가 까다롭다. 공부할 게 많다. 지금 다시,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다.”


■ “새해 기운찬 시작을”… 추천 뮤지컬 넘버 3

◇‘위대한 쇼맨’의 ‘디스 이즈 미(This is me)’=무일푼으로 시작해 서커스단을 만들며 인생 역전한 테일러 바넘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영화. “난 상처가 많지만 난 용감하지” “이게 바로 나야”라며 신체적 결함을 지닌 서커스 단원들이 단체로 부르는 주제곡 ‘디스 이즈 미’. 두 주먹을 꼭 쥐고, 눈물 흘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디어 에반 핸슨’의 ‘유 윌 비 파운드(You will be found)’=눈에 띄지 않는 소년 ‘에반 핸슨’이 뜻밖의 사건에 휘말리며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홀로 어둠에 있는 것 같아도, 손 내미는 순간엔 언제나 누군가 있을 거라고 위로하는 노래.

◇‘레드북’의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새로운 여성 캐릭터의 탄생을 알리며 국내 창작 뮤지컬의 수준을 한층 더 끌어올린 작품. ‘레이디’는 ‘젠틀맨’과 결혼하는 게 행복이라고 여기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 왜 여자는 상속을 못 받는지 항의하고, ‘야한 소설’을 쓰며 사회를 교란(?)시키는 여성 ‘안나’가 부르는 노래. 세상의 편견에 맞서며 “나는 나로서 충분해”라고 세상의 모든 여성을 다독인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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