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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병종의 시화기행 게재 일자 : 2022년 01월 18일(火)
요절한 大家… 사랑 앞에선 마냥 서툴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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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종, 여인 초상, 45.5×53㎝, 혼합재료에 먹과 채색, 1987.


■ 김병종의 시화기행 - (103) 바티칸 미술관의 천재들 (中)

37세로 세상 떠난 라파엘로
제빵사 딸과 평생 연인으로
“그녀 없으면 작업 안돼”투정
아내 자리는 내어주지 않아

다빈치 화풍 자기것으로 소화
‘아테네학당’등 대작 많이 남겨
경쟁자 여겼던 미켈란젤로엔
‘천지창조’ 본후 감동받고 경외


바티칸 미술관의 정문 앞에 서면 그 아치형 돌담 위에 새겨진 두 사람을 저절로 쳐다보게 된다. 미켈란젤로는 알겠는데 다른 하나는 누굴까. 미켈란젤로와 어깨를 견줄 만한 화가나 조각가라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떠오르지만 그는 아니다. 그렇다면 누구?

바로 라파엘로이다. 르네상스의 3대 거장으로 불리며 회화와 건축에 걸쳐 소위 피렌체파(派)의 봉우리를 이룬 주인공이다. 통상 어떤 미술관에 가면 유난히 한 화가나 조각가에 대해 입체적인 공부를 하게 된다. 화집을 술렁술렁 넘길 때와는 다르게 작품이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매번 비행기를 타고 발품을 들이는 것이리라.

이번 바티칸 미술관을 둘러 보면서는 부쩍 라파엘로라는 미술가에게 관심이 갔다. 그 선골(仙骨)풍의 아름다운 젊은이가 누구였길래 기라성 같은 불세출의 화가, 조각가 중에서도 유독 미켈란젤로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미술관의 문 위에 그 형상이 올려져 있는 것일까. 라파엘로 하면 ‘그리스도의 변용’이나 ‘아테네 학당’ 같은 작품에 대한 단편 지식과 일찍 요절했다는 정도의 이해밖에 없던 나로선 부쩍 그에 대해 여러 궁금증이 들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생물학적으로 장수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작품을, 그것도 대작 중심으로 남겼다는 사실이다.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아로새긴 바티칸 미술관의 ‘아테네 학당’만 하더라도 그 크기가 5m와 8m에 달하고 역시 바티칸 미술관 소장의 ‘그리스도의 변용’ 역시 세로 4m가 넘는 대작이다.

그런데 실제로 ‘아테네 학당’ 앞에 섰을 때는 그 공간이 확산돼 마치 대형 스크린을 보는 듯한 스케일이 느껴졌다. 수십 명의 인물이 내 앞으로 걸어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작품에는 도무지 삶의 출렁이는 변곡점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다. 한결같이 원숙하고, 한결같이 완성도 높으며 한결같이 야심만만한 데다 대가풍이다. 초기의 미숙함이 노출되지 않는다. 그는 누구일까. 그런데 숙소에 돌아와 그에 관한 기록을 뒤적이다가 동일하게 겹쳐지는 하나의 특징을 알게 됐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한 뛰어난 스승과 선배 작가들의 작품을 자기식으로 소화해냈다는 것. 선배 작가들이 세월을 두고 연마해 우러나온 화풍이나 기법을 자기화하는 데에 능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젊디젊은 나이에 했던 작품들도 그토록 원숙하게 느껴졌던 것일까. 기록에 의하면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인간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존경해 그의 원근법을 차용하고 화풍을 원용하였지만 미켈란젤로와는 내내 불편한 관계였고 게다가 내심 경쟁상대로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작업하면서 끊임없이 대선배 미켈란젤로를 의식했고 특히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그릴 당시에 그 역시 바티칸의 한 벽면을 자신의 그림으로 채우고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천지창조’의 일부가 공개되던 때 작품을 보고 크게 감동한 라파엘로가 50여 명이 등장하는 인물 중 주요 인물 하나를 급히 수정해 미켈란젤로의 얼굴로 바꿔 그렸다는 사실로 미뤄보아 미켈란젤로에 대한 예술가로서의 경외와 흠모는 컸던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수려한 미남자였던 그는 여인들에게 인기가 많았지만 평생 제빵사의 딸을 연모해 자기 곁에 연인으로 두고 그녀의 모습을 그렸단다. 그중엔 파격적인 반라의 모습으로 그린 작품도 있는데, 이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 비견될 만큼 매력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성녀와 창부 사이에 선 듯 우아하고 신비스러운 느낌과 함께 다분히 관능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 반라 여인의 왼쪽 팔뚝 팔찌에는 라파엘로(RAPHAEL)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마치 여인이 자신의 소유물이라도 된 듯 그렇게 이름을 새겨 넣었으니 치기도 보통 치기가 아니었던 듯하다. 그런데 정작 그토록 사랑하던 여인이었으면서도 결혼하지 않은 채 12년 동안이나 연인의 관계로만 지낸다. 따라서 제빵사의 딸 ‘라 포르나리나’는 이 유명 화가의 아내 아닌 정부로만 남아있어야 했다. 라파엘로는 그림을 그리는 옆에 늘 그녀가 머물러 있기를 원했고 그녀가 없으면 작업이 안 된다고 투정을 부렸지만 그러면서도 아내의 자리는 내어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게는 ‘사랑보다 그림’이 더 소중한 그 무엇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예술가는 지극히 이기적인 존재라고 아니할 수 없다.

▲  김병종 화가, 가천대 석좌교수
어쨌든 천재들의 각축장을 둘러보는 일은 흥미진진하다. 평소 작업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기를 끔찍이도 싫어했던 미켈란젤로의 귀에 젊은 라파엘로가 자신의 그림을 보고 갔고, 그 이후 ‘아테네 학당’의 형태와 구성이 더 웅장하고 스케일 또한 커지면서 동시에 경쟁적으로 더 많은 인물이 들어갔다는 소문이 들려 왔는데 이에 미켈란젤로는 ‘아테네 학당’이 자기 그림을 표절한 것이라고 격분했다고 한다.

경직된 외골수에 모난 성격, 작품에 대한 끝없는 욕심이 있는 미켈란젤로에 비해 라파엘로는 생로병사 중 노와 병을 건너 뛰어버린 듯 영원한 뮤즈 이미지를 견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후대의 사가들 중에는 라파엘로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우아함과 미켈란젤로의 열정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화가라고 평하기도 했다. 미술관 아치문 위의 미켈란젤로는 깡마르고 강퍅해보이는 노년의 모습인데 반해 라파엘로는 영원한 젊음의 표상 같은 형상이며, 서로의 시선은 엇갈려 상대를 향하고 있다. 천재들의 각축장을 둘러보니 시공을 넘어 그들의 맥박과 숨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다.

이것이 바로 허다한 세월 미술관을 찾아다닌 까닭일 것이다.

화가, 가천대 석좌교수

▲  라파엘로, 라 포르나리나(La Fornarina) 1518∼1519, 85×60㎝, 이탈리아 로마 보르게제 미술관.

■ 라파엘로에게 영향 준 선배

다빈치, 아름다운 회화기법
미켈란젤로, 창조성·자존감


라파엘로가 피렌체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를 만난 것은 스물한 살 되던 1504년이었다. 이 한 도시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세 천재가 조우하게 된 것이다. 라파엘로는 자신보다 서른 살가량 많았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부터는 온후한 인품과 섬세하고 아름다운 회화기법의 영향을 받았고, 역시 대선배였던 미켈란젤로로부터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식의 예술가적 창조성과 자존감을 배웠다.

라파엘로는 한때 새로운 벽화 기법을 구사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아틀리에로 가서 수학하기도 했지만, 미켈란젤로와는 경쟁관계에 있게 되는데 특히 라파엘로가 교황 율리오 2세의 서기가 돼 서명실에 ‘아테네 학당’을 제작하고 역시 미켈란젤로가 교황의 명에 따라 시스티나 예배당에 화점화를 그리면서 그 관계는 더 첨예해지게 된다.

라파엘로는 가끔 평생의 연인인 라 포르나리나를 그렸는데 로마 보르게제 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동명의 작품은 파격적이게도 상반신을 거의 벗은 은밀하고 육감적인 모습으로 돼 있다. 주문받아 그린 것이 아닌 오직 화가와 그 연인 두 사람만을 위해 그려진 자전적인 작품으로 추정되는 만큼 다분히 육감적이고 에로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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