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꽁꽁 얼어 있던 고려지(高麗池)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무언가가 얼음 밑바닥에 부딪히는 소리 같다가도 쩍 하고 갈라지는 것 같은 소리가 의외로 크게 들린다. 무섭기도 하지만 가장 일찍 당도하는 봄의 신호가 아닐까. 보이지 않는 데서 극적인 등장을 준비하고 있는 봄.

삭풍 속에서도 봄을 기다리는 설렘이 꽃을 마주하는 환희 못지않음을 일깨워주는 이원희. 그의 화면은 대체로 한겨울에서 초봄까지의 대지를 주로 그린다. 봄의 기운을 일각(一刻)이라도 일찍 알려주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 읽힌다. 황톳빛 속살의 대지에 감도는 평화롭고 따스한 아우라의 화면이 일품이다. 요즘도 저런 토속적 풍경이 남아 있을까 싶은 곳들을 어디서 찾아낸 걸까. 구불구불 울퉁불퉁 비탈진 대지에서 우리의 부드럽고도 강인한 원형들이 엿보인다.

이재언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