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5대도시 이끄는 ‘다양성 5人’… 팬데믹 속 ‘새로운 상징’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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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adership 클래스

방역 최전선서 국가 리더십 공백 메운 ‘지역 수장들’

-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
역대 두번째 ‘흑인 시장’ 기록
‘변화하는 미국 상징’ 자리매김

- 프란치스카 기파이 베를린시장
통독 시대 최초 여성시장 기록
이민자 많은 노이쾰른 구청장

- 사디크 칸 런던시장
첫 무슬림 시장…존슨과 대립각
작년 재선 성공…총리 도전 전망

- 안 이달고 파리시장
佛 최초 여성 대통령 담론 형성
4월 대선서 당선 가능성은 낮아

-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보수적 日 정계서 유리천장 깨
개혁 이미지로 아베 입지 위협

3년째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다수의 국가 지도자들이 리더십 위기에 직면했다. 최근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처럼 일생일대의 정치적 위기에 몰리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정치 성향에 따라 첨예하게 갈린 여론 탓에 국가적 단위의 방역 정책이 의도했던 성과를 내지 못한 경우가 빈번해지면서 방역 주체가 정책이 보다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도시로 옮겨 가는 사례도 늘었다.

특히 전 세계 확진자의 90% 이상이 수도를 포함한 대도시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시장들이 방역 최전선에서 리더십 공백을 메울 책임을 부여받았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탄소 중립, 자전거·보행자 기반 시설 개발 등 팬데믹과 함께 도시의 리더들은 ‘변혁적’ 복구 작업에 전념하기 시작했다”며 “실존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더 포용적이고, 공평하고,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이 같은 구상은 도시 주도형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시작해 더 나아가 국제 사회 어젠다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개발도상국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된 지구환경금융(GEF)도 “코로나19는 위기 관련 자원을 계획하고 동원하는 데 있어 국가, 주, 시 단위 정부 간 조율의 중요성을 일깨웠다”고 짚었다.

이런 가운데 주요 도시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각종 연구기관 조사에서 상위권을 놓치지 않는 뉴욕(미국), 런던(영국), 파리(프랑스), 베를린(독일), 도쿄(東京·일본) 등이 여성과 유색 인종 그리고 이민자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팬데믹 기간 흑인은 백인보다 2배 더 빨리 사망했고, 4배 더 빨리 병원 신세를 졌다. 다수의 여성과 유색 인종들은 저임금을 받고 보건·의료 업계에 종사하며 감염 상황에 빈번히 노출됐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만연했던 불평등이 팬데믹으로 인해 그 뿌리까지 들춰진 상황에서 어떤 소수자들은 한 도시의 최고 권력을 새롭게 움켜쥐었다. 일부는 자신의 리더십을 인정받고 집권기를 연장하기도 했다. 전자에는 올해 초 역대 두 번째 흑인 뉴욕시장으로 취임한 에릭 애덤스와 동·서독 통일 이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베를린시장에 선출된 프란치스카 기파이가, 후자에는 무슬림(이슬람 교도) 또는 여성으로서 최초의 역사를 써 내려간 사디크 칸 런던시장과 안 이달고 파리시장 그리고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 등이 속한다.

◇런던, 파리, 베를린, 도쿄서 쓰인 ‘최초’의 역사 = 애덤스는 지난 1일 새벽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대형 크리스털 볼이 타임스스퀘어 광장으로 굴러떨어진 직후 제110대 뉴욕시장으로 정식 취임했다. 잘게 잘린 형형색색의 종이들이 흩날리는 가운데 취임 선서를 읊는 그의 왼손은 어머니가 읽던 성경 위에 놓였고, 높게 쳐든 오른손에는 어머니의 사진이 담긴 액자가 들려 있었다. 애덤스는 ‘흑인 역사의 달’인 2월을 기념해 지난 3일 CBS 방송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하게 된 원천이 어머니였다며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각했다.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한 채 가정집에서 2교대 청소부로 일했던 그의 어머니 도로시 매 애덤스-스트리터는 애덤스가 뉴욕시장 선거 민주당 경선 운동을 벌이고 있던 지난해 심장병을 앓다 83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애덤스는 “그녀는 놀라운 여성이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정말 적었지만, 그녀는 모든 이웃에게 베풀었다. 어머니는 내가 사람들에게 되돌려주는 사람이 되길 원했고, 난 그걸 해냈다”고 그녀를 회고했다. 이어 “노예 농장에서 온 사람이 주요 도시의 시장에 오를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이 나라에선 모든 이들이 열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가능성은 무한하다”며 자신을 변화하는 미국의 상징으로 포지셔닝했다. 뉴욕타임스(NYT)와 같은 언론은 애덤스의 당선을 “민주당 기반의 뉴욕시 심장에 놓여 있는, 흑인·이민자·노동자들의 야망과 같은 것”이었다고 평하면서, 승리 연설 도중 “나는 곧 당신이다. 기도하고, 희망하고, 투쟁하고, 노동하며 수년을 보낸 끝에 우리는 시청으로 향한다”고 했던 그의 발언을 재조명하는 등 선거 결과의 의미를 짚어 냈다.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의 퇴임으로 독일에서 막을 내리는 듯했던 여성 지도자의 시대는 기파이에 의해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기파이는 1949∼1951년 서베를린시장을 지냈던 루이즈 슈뢰더를 제외하면 통독(통일 독일) 시대 최초의 여성 베를린시장이다. 그는 자신이 소속된 사회민주당(SPD)이 총선과 함께 베를린시 지방선거에서도 승리를 거둔 지난해 9월 SNS에 “여성이 수도를 이끌 때가 왔다”는 글을 올리며 젠더 정치를 폈다. 베를린에서도 비교적 가난하고, 이민자 비율이 높은 노이쾰른의 구청장으로 재임할 당시 좋은 평가를 받았던 기파이는 연방정부에서 일해 본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이례적으로 제4차 메르켈 내각 구성원에 포함된 이력이 있다. 당시 SPD 대표였던 올라프 숄츠 현 총리는 “정부 부처 한 곳보다 노이쾰른을 다스리는 일이 어렵다”며 30대에 야당 구성원으로 대연정에 합류하게 된 그를 치하했다. 메르켈과 같이 동독 출신인 기파이가 장관에 임명될 당시 도이체벨레(DW) 등 독일 언론들은 그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제바스티안 쿠르츠 전 오스트리아 총리, 루이지 디마이오 이탈리아 외교장관 등 유럽 정계를 휩쓸고 있는 3040 정치인들에 비견하기도 했다. 기파이의 정식 선출과 함께 독일 연방정부와 베를린시 정부 내각은 모두 역대 가장 성 평등적 내각을 출범시켰는데, 이는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와 상통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팬데믹 와중에 이룬 재선 쾌거, 잠재적 국가지도자로서의 몸값 높여 = 이달고 시장과 칸 시장, 고이케 지사는 모두 팬데믹 기간 중 재선에 성공하고 차기 국가수반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중 그 가능성이 직접적으로 수치화되고 있는 경우는 오는 4월 대선이 예정돼 있는 프랑스에서 좌파 성향의 사회당(PS) 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한 이달고다. 다만 안타깝게도 현지 여론조사에서 이달고 시장에 대한 지지율은 3%에 그치고 있다. 출마 의사를 공식화했던 약 5개월 전(10%)보다도 더 하락한 것으로, 사실상 그의 당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이다. 그러나 그는 최근 영국 일간 가디언 등과의 인터뷰에서 “여론조사 결과가 어떻든 간에 4월의 선거 결과를 기다려 보자”면서 완주 의사를 밝혔다. 승리 여부를 떠나 이달고 시장이 우파 진영의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대표, 발레리 페크레스 일드프랑스 주지사와 함께 ‘프랑스 최초의 여성 대통령’ 담론을 형성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캐서린 아친 파리 도핀대 정치학 교수는 파리와 함께 릴, 마르세유 등 대도시에서 여성 시장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는 데 대해 “여성이 정부 고위직을 맡는 것이 정상화되고 있다”고 평했다.

영국의 존슨 총리가 ‘파티게이트’로 사면초가에 몰린 상황에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에서부터 코로나19 방역 정책까지 사사건건 그와 대립해 온 칸 시장의 행보도 주목된다. 야당인 노동당 출신의 칸 시장이 지난해 5월 재선에 성공했을 때부터 그가 차기 총리직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었다. 아니나 다를까 칸 시장은 파티게이트로 수세에 몰린 존슨 총리를 향해 “전 국민에게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면서, 정작 규칙을 멋대로 바꾸고 어겼다”며 지난달 13일 공개적으로 사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파키스탄계 이민자 출신이자, 최초의 무슬림 런던시장으로서 그는 ‘영국의 트럼프(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로 불리는 존슨 총리뿐 아니라 실제 트럼프 전 대통령과도 테러 문제 등을 두고 공개 설전을 벌이며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공고히 한 바 있다. 업무 능력도 인정받는 분위기다. 2016년 칸 시장 첫 취임 이후 2017년부터 여론조사업체 유거브가 런던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그의 직무 수행 능력을 평가한 결과 올해 1월을 제외한 모든 조사에서 긍정 여론이 부정 여론을 앞섰다.

언론인 출신으로 8선의 정치인을 거쳐 일본 최초의 여성 방위상, 또 최초의 도쿄도지사에 오른 후 재선까지 해낸 고이케 지사는 보수적인 일본 정계에선 드물게 유리 천장을 깨트린 입지전적 인물이다. 극우 성향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 시장들과는 사뭇 결이 다르지만, 개혁 이미지를 내세워 일본 보수의 상징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입지를 위협하는 등 정무 감각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된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총무상과 함께 사실상 총리직으로 여겨지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한 경험이 있는 유일한 여성 정치인으로, 지난해에는 미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여성 59위에 오르는 저력을 보였다.

장서우 기자 suw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