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신임 美대사와 ‘홀브룩 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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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헨리 키신저(98) 전 국무장관이 미국 외교를 상징하는 국제정치학자라면, 리처드 홀브룩(1941∼2010) 전 유엔 대사는 미국의 대표적인 협상가다. 키신저는 ‘외교’ ‘세계질서’ 등 20여 권의 저서와 칼럼 등으로 세계 각국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고, 홀브룩은 1995년 데이턴 평화협정 타결로 록스타급 인기를 누리며 수많은 외교관에게 영감을 줬다. 데이턴 평화협정은 1990년대 발칸반도를 피로 물들인 보스니아 내전을 종식한 협상인데 당시 홀브룩과 함께한 외교관들은 이후 홀브룩 사단으로 불리며 미 국무부의 주류 인맥으로 자리 잡았다.

데이턴협상팀의 부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70)은 마케도니아, 폴란드, 한국, 이라크에 이어 세르비아 대사로 지명, 부임을 준비 중이다. 주한 미 대사를 지내고 코리아소사이어티 이사장이 된 캐슬린 스티븐스(69), 한국·필리핀에 이어 주인도네시아 대사로 활동 중인 성 김 대북정책 특별대표, 유리 김 주알바니아 대사, 마크 내퍼 주베트남 대사도 힐과 호흡을 맞춰 왔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홀브룩 사단으로 볼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일 주한 미 대사로 지명한 필립 골드버그(65)는 데이턴 협상을 전후해 홀브룩 특보를 지냈고, 데이턴 협상 때엔 회담 총괄 역을 맡았다. 홀브룩의 오른팔이 힐이었다면 그는 왼팔 역할을 한 셈이다.

3·9 대선을 앞두고 바이든 행정부가 데이턴 협상 경험자이자 유엔 대북제재결의 1876호 이행 조율 역을 했던 베테랑 외교관을 주한 대사로 낙점한 것은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골드버그에겐 비밀병기가 또 하나 있다. 콜롬비아, 볼리비아, 필리핀 대사로 일하며 권위주의 정부와 협상하는 경험을 쌓았다는 점이다. 지난 1월 그의 내정설이 보도된 후 전직 미 정부 인사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에 이어 에보 모랄레스, 로드리고 두테르테를 상대했던 골드버그가 서울에서 어떤 행보를 할지 주목된다”고 했다. 골드버그는 외교관으론 드물게 독신이다. 유머 감각은 부족하나, 원칙에 충실하고 일에 몰입하는 스타일이라 한다. 홀브룩 스타일의 협상력에 독재자 다루는 법까지 갖춘 인물이 문재인 시대 헝클어진 남·북·미 관계를 어떻게 조율해나갈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