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과 목도리 짜 ‘소녀상’ 둘러줘…‘역사의 현장’ 체험“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부산 부산진구 개림중학교에서 고봉주(가운데) 교사가 생태환경동아리 ‘제로웨이스트 꼼지락’ 2학년 학생들과 함께 뜨개활동을 하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 - 부산 개림중학교 고봉주 교사

佛혁명과 학교생활 연계 공부
유럽에서의 인종차별 등 토론

역사는 단순한 암기과목 아닌
거대한 인류 시간 흐름 살피기
현재 자신의 위치 발견하는 일
학생들 삶의 방향 설정에 도움

“매년 겨울이면 학생들과 뜨개질을 하는데 몇 해 전 한참 이슈가 되던 위안부소녀상을 찾아간 적이 있어요. 교과서에서 접하던 동상을 실제로 보고, 직접 뜬 목도리를 둘러줬는데 학생들이 ‘역사의 현장’에 서 있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습니다. 과거의 역사가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몸소 체험하며 생각해보는 뜻깊은 시간이었죠.”

역사는 대다수의 학생이 어려워한다. 방대한 분량과 생소한 용어, 시간과 공간의 사건 순서에 대한 입체적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부산 부산진구 개림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고봉주(여·41) 교사는 학생들의 어려움을 잘 안다. 그래서 그는 어려운 역사를 어렵지 않게 가르치려고 애쓴다.

우선 학생들에게 ‘나무’보다는 ‘숲’을 끊임없이 보게 한다. 수업시간에는 개별 사건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가르치긴 하지만 그 시대가 요구하는 생각과 정신에 의해서 특정 사건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큰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계속 북돋는다. 고 교사는 지난해 1년 내내 세계사를 수업했는데, 학생들이 처음에는 세계사의 방대한 양과 낯선 용어들 때문에 과목 자체를 힘들어했지만, 2학기부턴 역사적인 흐름을 읽고 예측하는 능력이 어느 정도 길러진 게 보였다. 역사의 발전 과정이 소수의 권력 독점에서 다수의 민주주의로, 닫힌 사회에서 열린 사회로, 탈권위주의, 평화, 인권, 다원주의 등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 과정을 아이들이 큰 흐름 속에 이해하게 된 것이다.

고 교사는 “역사 공부는 거대한 인류의 시간 흐름을 살펴보면서 궁극적으로는 현재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발견하는 일”이라며 “역사를 배우면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학생 본인의 삶과 역사를 연결지어 질문하도록 가르친다. 프랑스 혁명을 배우고 학교생활의 부당한 점을 생각하며 그 이유와 해결방법을 찾아보게 하거나, 인종차별을 주제로 한 수업이 끝난 뒤 유럽에서 당하는 동양인 차별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동남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에 대해서도 열띤 토론을 벌이는 식으로 말이다. 그는 “학생들이 세계사를 통해서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씩은 바뀌어 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볼 때 가르치는 보람이 크다”며 “역사 과목을 생각했을 때 어렵고 암기투성이인 과목이 아니라 내 삶과 연결된 학문이라고 인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 교사의 역사 사랑은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됐다. 그가 초등학교 6학년 때 TV 프로그램에서 ‘지구가 아프대요’라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는데 30년이 지난 뒤에도 환경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계속 지속돼 온다는 사실을 자각했을 때는 놀랐고,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환경문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때마침 개림중이 지난해 생태환경 연구학교로 지정되면서 ‘기후행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학교 차원에서 수업과 창의적 체험활동, 자유학년제 등에 생태환경교육을 연계해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교사와 학생들이 환경 관련 이슈들을 공유하며 체험 중심의 환경 활동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고 교사는 학생들과 지난해 4월에 새싹보리를 심어 키우면서 생명이 자라나는 과정을 관찰하고, 키운 새싹보리를 이용해 다양한 요리를 시도하며 채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고 교사는 코로나19 상황 속 학생들이 많이 위축돼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학생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거듭 부탁하고 강조했다. 그는 “학생들이 실패를 두려워해서 도전하기도 전에 미리 마음속으로 재단해 도전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며 “실패는 도전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값진 경험”이라며 학생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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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경 기자 verit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