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부모라는 원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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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음악평론가

정치인 자식 잘못 저지르면
반대 진영선 신이 나서 욕해

왜 부모에게 돌을 던지는가
지금 충분히 지옥에 있거늘

내 자식이 뒤통수 치더라도
결정적 한방이 아니길 빌 뿐

몇 년 전에 프레디 머큐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러 갔다. 영화 중간에 프레디 머큐리가 피아노를 치며 ‘보헤미안 랩소디’를 부르는 장면이 나왔다. 첫 가사가 ‘엄마, 방금 사람을 죽였어요(Mama, just killed a man)’였는데, 첫 소절을 듣는 순간 갑자기 거의 통곡에 가까운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터진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옆에 사람들이 있는데도 한동안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왜 그랬을까. ‘엄마(Mama)’라는 말이 가슴을 때렸던 것 같다. 인생을 막 출발하려던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아들과 그 어머니의 절망이 그대로 가슴에 와 박혔다. 바닥 모를 절망의 심연으로 떨어진 아들과 어머니를 붙잡고 나도 같이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끔 유명 인사의 자식이 사고를 쳤다는 뉴스를 보는 경우가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알려지지 않았을 일이, 유명인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이다. 그때마다 신이 나서 그 부모에게 욕을 해대는 사람들이 있다. 부모의 인성이 그러니 자식이 그렇다는 둥, 가정교육을 잘못해서 그렇다는 둥 말이 많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사람들이 참 잔인하다는 생각을 한다. 자식을 둔 부모로서, 나는 그들을 향해 섣불리 돌팔매질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식을 키워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자식이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도 자식을 낳기 전에는 그것을 몰랐다. 그래서 멋모르고 자식을 낳았다. 처음에는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나름대로 자식에 대한 로망도 품었다. 하지만 그것이 헛된 소망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지 알게 됐다. 그다음부터 내 가슴을 짓누르는 것은 어쨌든 자식을 이 세상에 내보낸 부모로서 져야 할 무한한 책임감과 부모임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무력감이었다.

자식 문제에서만큼은 세상 어느 부모도 오만해서는 안 된다. 남의 자식에 대해, 다른 부모에 대해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 착한 자식을 둔 부모들은 ‘내 자식은 착해. 내가 그렇게 키웠으니까’ 하고 자부할지 모른다. 그래, 세상의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나쁜 짓을 하라고 가르치겠는가. 누구나 자기 자식이 훌륭하게 자라기를 바랄 것이다. 그리고 그걸 위해 부모들은 정성을 다한다. 하지만 부모의 이런 로망이 언제나 행복하게 실현되는 건 아니다.

사람들은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 자식이 잘못되는 것은 가정교육이 잘못됐거나 부모가 잘못된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쉽게 얘기한다. 하지만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이런 가설을 뒤집는 예, 즉 부모는 훌륭한데 자식은 품행이 형편없거나 반대로 부모는 형편없는데 자식은 훌륭한 경우를 너무도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자식 때문에 속이 썩는 친구가 하나 있다. 부모는 누구보다 올바르게 살고 있는데, 물질 지향적인 자식은 끊임없이 돈과 관련된 사고를 치고 다닌다. 누구보다 검소하고, 삶의 가치를 전혀 물질적인 것에 두지 않는 부모인데도 자식은 그렇다. 그 친구는 나를 볼 때마다 이렇게 된 것이 자기 탓 같다며 울곤 한다.

인간의 성품과 행동을 결정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할 것이다. 나는 그중에서도 타고난 기질(지극히 생물학적인)을 삼각형의 불변하는 밑변으로 본다. 그 위에 환경이나 교육 등의 가변적인 요소가 가미돼 한 인간의 성품이 결정된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것을 천성은 몇 퍼센트, 가정교육 몇 퍼센트, 환경 몇 퍼센트 이렇게 정확히 나눠서 얘기할 수 있을까. 그렇게 수량적으로 계산해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인간의 성품과 행동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고,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누군가 잘못을 저지르면 가정교육이 잘못됐다느니, 청소년기에 겪은 부모의 이혼이 결정적인 원인이라는 등 멋대로 분석한다. 남의 가정사를 제멋대로 난도질한다.

특히, 정치인의 자식이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반대 진영 사람들이 신이 나서 그 정치인을 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행태를 좋게 보지 않는다. 이제 성인이 된 자식이 저지른 사고를 왜 부모가 책임져야 하는가. 왜 그 부모에게 돌을 던지는가. 돌을 던지며 ‘내 자식은 그렇지 않아’라고 스스로 위안하고 싶은 것인가. 돌을 던지지 않더라도 그 부모는 지금 충분히 지옥 속에 있거늘.

언제라도 부모의 뒤통수를 칠 수 있는 것이 자식이다. 그런 만큼 우리 모두 자식 문제에서만큼은 겸손해야 한다. 누구의 자식이 사고를 쳤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 부모가 감내해야 할 지옥과 같은 고통을 생각한다. 그때마다 말할 수 없이 가슴이 아프다. 지금 부모로서 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앞으로 혹시 내 자식이 내 뒤통수를 치더라도 그것이 내 인생을 피폐하게 만들 정도의 결정적인 한 방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