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들어간 드라마… ‘대본집’, 서점가를 강타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최우식·김다미 주연의 드라마 ‘그 해 우리는’의 한 장면. 드라마 흥행에 대본집도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 해 우리는’ 8만부 돌파하며
2월 셋째 주 베스트셀러 2위
해외서도 판권계약 문의 쇄도

‘기생충’ ‘옷소매…’ 등도 인기
드라마 기획 단계부터 접촉도

“청춘의 순간들을 정말 ‘내 것’처럼 담고 싶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기록이 될 수 있다면’, 이 작은 생각으로 시작한 이야기였습니다.”(‘그 해 우리는’ 대본집, 작가의 말 중에서)

한류 열풍 속에 국내 드라마들이 연이어 글로벌 시장에서 흥행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가운데 영상을 글로 옮긴 대본집도 이례적으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이나은 작가가 쓴 ‘그 해 우리는’ 대본집(김영사)은 출간과 함께 판매량 10만 부에 육박하며 대형 베스트셀러에 등극할 조짐이다. 이와 함께 ‘갯마을 차차차’ ‘옷소매 붉은 끝동’ ‘기생충’ 등 다양한 영화·드라마 각본집도 수만 부 이상 팔리는 등 소설·에세이가 주류인 시장에서 새로운 ‘킬러 콘텐츠’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갯마을 차차차’대본집

◇한류 열풍에 해외 판권 문의 잇달아

2일 출판계에 따르면 ‘그 해 우리는’ 대본집 1권은 출간 직후 교보문고 2월 셋째 주 베스트셀러 2위에 올랐다. 지난 1월 중순부터 예약 판매를 시작했는데 1·2권을 합해 벌써 8만 부 정도 나갔다고 한다. 여성 독자가 77.1%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했으며, 연령별로는 20대 여성(33.4％)과 30대 여성(20.5％)이 전체 독자의 절반 이상이었다. 김영사 측은 “예약 판매 현황을 보면서 물량을 인쇄했다”며 “초판은 각 권당 4만 부, 2쇄도 수만 부를 찍었다”고 말했다. 보통 초판의 경우 3000부 내외, 많아야 5000∼7000부를 찍는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물량이다. ‘그 해 우리는’은 10대 후반에 만나 20대에 이별한 남녀가 스물아홉에 재회해 지난 시절을 곱씹으며 새로운 사랑을 써내려가는 드라마다. 사랑하면서도 낮은 자존감에 뒷걸음질 치고 상대방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섬세한 감정 묘사는 이 작품을 흔해 빠진 ‘청춘 멜로’에 머무르지 않게 했다. 대본집은 최우식·김다미 등 주요 배우의 사인 인쇄본에 작가가 직접 선정한 회차별 명대사까지 실었다. 이 작가는 “청춘을 지나는 사람도, 청춘이 그리운 사람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을 때 꺼내보는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비영어 TV 부문 4위에 오르는 등 드라마가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은 덕분에 외국 출판사의 판권 계약 문의도 쇄도하고 있다. 대만의 경우 10여 개 출판사가 판권 경쟁에 뛰어들었으며 일본·인도네시아 출판사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김민경 김영사 편집자는 “일반 단행본은 분야마다 고정 독자층이 있는 반면, 드라마·영화 대본집은 작가·감독 지망생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를 겨냥한다”며 “출판사로선 독자층을 확장하는 기회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평소 책을 잘 읽지 않는 독자라도 드라마의 열혈팬으로서 대본집을 ‘책’이라기보다 ‘굿즈’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한 해 약 300종을 출간하는 대형 출판사인 김영사는 2019년 무렵부터 ‘단 하나의 사랑’ ‘킹덤’ ‘스토브리그’ ‘오월의 청춘’ 등 대본집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예스24 관계자는 “영화 관객이 같은 작품을 ‘n차 관람’하듯 대본집을 여러 권 중복 구매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킬러 콘텐츠 부상에 기획 단계부터 제작사 접촉

‘그 해 우리는’ 같은 폭발적 흥행은 아니라도 소설·에세이 못지않은 사랑을 받은 대본집은 여럿 있다. 신민아·김선호 주연의 ‘갯마을 차차차’ 대본집(북로그컴퍼니)은 1만8000부가량 팔렸으며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시나리오집(플레인아카이브)은 3만 부 이상 나갔다. 아이돌 출신 이준호의 달달한 로맨스 사극 연기로 신드롬을 낳은 ‘옷소매 붉은 끝동’(청어람) 대본집도 예스24 1월 넷째 주 종합 베스트셀러 2위에 오르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대본집이 출판 시장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면서 출판사들은 드라마 사전 기획 단계에서 제작사와 접촉하기도 한다. 김 편집자는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 이미 판권 경쟁이 치열해져 기회를 놓칠 수 있다”며 “제작 발표회를 꼼꼼히 챙기면서 작가나 배우의 인지도, 콘텐츠 폭발력 등을 고려해 미리 대본집 출간을 협의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대본집 인기에 전문 출판사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실제로 ‘갯마을 차차차’를 낸 북로그컴퍼니는 이 외에도 ‘괴물’ ‘연모’ ‘비밀의 숲’을 비롯해 노희경 작가의 전작을 출간했다. 이 출판사가 한 해 내놓는 라인업의 절반 이상이 대본집이다. 블루레이 제작사인 플레인아카이브 역시 ‘기생충’ 외에 영화 ‘캐롤’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어느 가족’ 각본집을 출간했으며 지금은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 개봉 20주년을 기념한 책을 준비 중이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