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오세창은 당대 최고 전각가이자 서화 감식가였다”

  • 문화일보
  • 입력 2022-03-0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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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고희동이 1924년 시회(詩會) 풍경을 그린 ‘연북향남’. 화가 자신이 맨 왼쪽에 있고 차례로 박한영, 최남선, 오세창이 자리했다. 푸른역사 제공


■ 북촌 근현대미술가들의 전설같은 비화

고희동이 그린 ‘연북향남’에
최남선·승려 박한영과 담겨

오지호, 한국적 인상파 완성
이병직, 조선 내시출신 서화가
김은호, 순종 어진 그린 ‘천재’

한국인 첫 유럽미술학교 입학
배운성은 무용수 최승희 목판
새책 ‘경성의 화가들…’서 소개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배운성의 목판화 ‘장구춤’. 해방 직후부터 가까이 지냈던 무용수 최승희의 모습을 1950년대에 표현했다.

한국 최초 서양화가인 고희동(1886~1965)이 1924년에 그린 ‘연북향남(硏北香南)’은 실존 인물들을 담고 있다. 오른쪽부터 서화가이자 독립운동가 오세창(1864~1953), 시인 겸 역사학자 최남선(1890~1957), 승려 시인 박한영(1870~1948) 등이 있고, 맨 왼쪽에 화가 자신이 자리하고 있다. 매화분과 향로가 놓여 있으니 시회(詩會) 장면으로 보인다.

참석 인물 중 당대 최고의 천재로 불렸던 최남선은 훗날 친일 논란에 휩싸였으나, 오세창은 변절하지 않고 일제강점기 35년을 버텨낸 대표적 인물이다. 역관의 아들로 태어난 오세창은 사역원(司驛員)에서 일하다가 한성순보 기자 생활을 했다. 3·1운동 때 천도교 대표로 참여했던 그는 3년여 옥고를 치른 뒤에도 해방 때까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썼다. 고희동의 그림에서 보듯 예술가들과 어울리기 좋아했던 그는 고서화 수집가로서 감식안이 높았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이 고미술품을 사들일 때 자문역을 했을 정도다. 무엇보다 그는 당대 최고의 전각가였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예술가들도 그가 새긴 인장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또한 서예와 문인화에도 뛰어났으니 르네상스형 인물이었던 셈이다.

고희동의 ‘연북향남’이 수묵담채화인 점은 그가 서양화가이자 동양화가인 점을 상기시킨다. 그는 어렸을 때 동양화단의 좌장 안중식(1861~1919)에게서 그림을 배웠으나 서양화에 매력을 느껴 일본 도쿄미술학교에 유학한다. 5년간 서양화 공부를 하고 1915년 귀국해 새로운 미술 운동을 펼치려 했으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그가 그림을 그리려고 화구 박스를 메고 들로 나가면, 사람들이 엿장수가 왔다고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는 자신과 어울릴만한 서양화 전공자들이 늘어나지 않자 결국 동양화를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한국적 인상파 화법을 완성한 것으로 평가받는 화가 오지호(1905~1982)는 휘문고보에서 고희동 교사를 만나 많은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서양화 작업을 이어가지 못한 스승의 모습에 실망하고, 나혜석 등이 중심이던 고려미술원에서 그림 공부를 한다. 그는 일본 유학 시기에 인상파 화법을 접했는데, 단순한 모방을 벗어나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 낸다.

새로 나온 책 ‘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북촌편’(푸른역사 발행)에는 이처럼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장식한 미술가들의 이야기가 풍성하게 담겨 있다. 부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조선의 명문가 후예들이 살았던 서울 북촌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전설 같은 비화들을 전한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은호의 ‘매란방’. 1929년 중국 베이징에서 만난 경극 배우 매란방의 모습을 회고해 1960년대에 그렸다.

미술사 연구가인 저자 황정수 씨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일본인들에 의해 인사동 지역이 미술 중심지로 새롭게 부상하며 수집가와 후원자들이 드나들었다. 이에 따라 인근의 북촌과 서촌 등에 미술인들이 몰려 살게 됐다. 이 지역에 자리한 중앙고보와 휘문고보는 한국 예술계의 빛나는 인물들을 다수 배출했는데, 미술계에서도 걸출한 작가가 많이 나왔다. 김용준(1904~1967)과 이여성(1901~?)이 중앙 출신이었고, 이여성의 동생 이쾌대(1913~1965)와 장발(1901~2001) 등이 휘문에서 공부했다. 책은 화가, 조각가, 건축가, 공예가 등 장르를 넘어서 30여 명의 개인사를 한국 미술사 속에 아로새기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어려운 작업이었음에도 지치지 않고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당대를 살았던 예술가들의 삶이 고달팠지만 아름다웠던 덕분이다.”

북촌의 미술사에서 각별히 흥미로운 인물은 조선조 마지막 내시 출신 서화가 이병직(1896~1973)이다. 1908년 내시제도가 폐지되자 서화가 김규진 문하에 들어갔는데, 단정한 필치로 매화와 국화 채색화를 그려냈다. 특히 푸른색 대나무 그림에 단아한 화제(畵題)를 넣은 ‘청죽(靑竹)’으로 유명했다. 이병직은 고서화 수집가이기도 했는데, 일연의 ‘삼국유사’를 기와집 수십 채 값으로 사들였을 정도로 좋은 물건엔 돈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북촌 인근의 청운동에 살았던 최재덕(1916~?)도 눈길을 끈다. 그는 김용준, 김환기(1913~1974)와 가까이 지냈고 시인 김광균(1914~1993), 오장환(1918~1951?) 등과도 교우했다. 사업가이기도 했던 김광균은 김환기, 최재덕의 후원자 역할도 했다. 최재덕은 6·25전쟁 때 월북했는데 1960년대 이후로 자취가 묘연하다. 빼어난 감성으로 서정적 그림을 그렸던 그에게 북의 전체주의 예술론이 맞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서울 명륜동 태생인 배운성(1900~1978)은 1923년 독일 레젠부르그미술학교에 들어감으로써 한국인 최초 유럽미술학교 입학생이 된 인물이다. 일제 말기 귀국해 해방 후 ‘배운성미술연구소’를 운영했다. 안국동에 살던 무용수 최승희와 가깝게 지내며 장구춤 장면을 목판화로 수차례 만들었는데, 김은호(1892~1979)가 중국 경극 배우 매란방을 그린 것에 비견된다. 김은호가 무용수의 동작보다는 용모에 치중한 것에 비해 배운성은 최승희 춤의 율동감을 생생히 담아냈다.

그림을 배운 지 21일 만에 순종 어진을 그렸다는 김은호의 이야기는 천재 화가의 아우라를 느끼게 한다. 그의 행적엔 친일 주홍글씨가 새겨져 있지만, 김기창(1913~2001)과 장우성(1912~2005) 등 한국 화단을 이끌어 간 제자들을 키워낸 공이 크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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