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이번 대선 시대정신은 ‘미래·통합’… 누가 되든 갈등의 정치 끝내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지난 3일 서울 서대문구 동아시아미래재단 사무실에서 문화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대선 시대정신으로 ‘미래’와 ‘통합’을 강조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 현안 인터뷰
- 네번째 대권 도전했다 사퇴… 손학규 前 대표

1987년후 7명 대통령 거치며
靑 권력 계속해서 커지기만해

이번대선 권력개편 화두 올라
李·尹, 대통령제 집착 버려야

李, 권력 사적 도구화 경계해야
尹, 정치적 합의 통한 포용 필요

“무한 권력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지할 대통령이 되겠다”며 20대 대선에 출마했다. ‘노욕’이라는 비난을 감내하면서도 네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섰지만, 눈 내리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쓸쓸히 손을 흔드는 모습과 “성찰하며 조용히 살겠다”는 메시지를 남긴 채 사퇴했다.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의 이야기다. ‘손학규 징크스’라는 조롱 속에도 당적 없이 꿋꿋이 대선에 도전했던 이유로 손 전 대표는 “국가의 미래 비전을 이야기하는 후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과거에 회초리를 드는 ‘공정’이 아닌 ‘미래’와 ‘통합’이어야 한다”며 대선 이후 갈등과 편 가르기 정치가 재연될 것을 우려했다. 손 전 대표와의 인터뷰는 그가 1월 27일 대선 후보를 사퇴하고 한 달여 만인 지난 3일 서울 서대문구 동아시아미래재단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 두 달 만에 사퇴한 이유는.

“2020년 4·15 총선 이후 정치를 다 끝낼 생각으로 산에도 가고, 막걸리도 마시고 하면서 지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정치가 너무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랫동안 우리나라도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유럽처럼 합의제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치해 왔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국가의 비전이나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논의 없이 오로지 인신공격밖에 없었다. 그래서 30년간 품어 왔던 꿈과 비전이라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 대한 관심은 이미 지나갔고, 메시지를 아무리 내놔도 국민께 전할 기회가 없었다.”

―아쉬움은 없나.

“내가 대선 출마를 선언할 때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권력구조 개편이나 대통령제 축소에 대해 말 한마디 없었다. 그러나 최근엔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통합정부와 개헌을 말하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대통령 권한 축소를 이야기했다. 내가 제시한 게 어느 정도 화두로 올라왔다는 점에서 위안을 받았다.”

―대통령제 폐지와 다당제 연립정부 등을 주장해 왔는데, 이 후보나 윤 후보의 권력구조 개편안은 어떻게 보나.

“이 후보와 윤 후보 모두 대통령 권한 축소를 말하지만, 대통령제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제가 존속해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특히 ‘대통령 4년 중임제’는 오히려 대통령제의 폐해를 키울 수 있다. 이 후보가 청와대와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다른 당도 끌어들이는 통합정부를 구상한 것은 최소한의 플랫폼으로서는 진전된 것이지만, 실제로 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단일화를 선언하면서도 ‘다당제가 소신’이라고 밝혔는데.

“그러면 합당을 선언하지 말았어야 했다. 후보를 사퇴하고 윤 후보를 돕는 것과 다당제를 위해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고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단순히 두 후보의 단일화나 연대가 아니라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합당까지 하기로 한 것은 안 대표 스스로 양당제를 부정해 왔던 사실을 도로 부정한 것이다. 이는 연합정치나 다당제 연립정부 주장과는 궤가 다르다.”

―많은 정치인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수십 년간 비판했지만 바뀌지 않았다.

“1987년 이후 7명의 대통령을 거치면서 청와대 권력은 계속 커져 왔다. 대통령이 되면 권력이 생기니 그 권력을 쓰고 싶어진다. 대통령이 모든 걸 다 하려고 하는 거다. 문재인 대통령도 직접 일자리까지 관장하겠다면서 ‘일자리수석’까지 만들고 정부 부처와 산하 기관, 공기업 기관장·감사·사외이사까지 다 청와대가 정하고 있지 않나. 이번에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 후보 경선에서 경쟁했던 문 대통령의 현재 모습을 어떻게 평가하나.

“문 대통령이 민주주의적인 소양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념 편향적인 독선에 빠져 있더라. 우리나라를 분열과 갈등, 편 가르기 정치로 만든 아주 중대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결국 검찰총장이 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는 상황에 이른 것 아닌가.”

―대통령제의 폐단을 줄이기 위해 새 정부는 어떤 환경을 구성해야 하나.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87년 체제를 끝내자’고 해야 한다. 국회의원 300명 중 내각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250명쯤은 될 거다. 하지만 청와대와 당에 목숨이 달려 있어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다.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독선적인 권위주의를 끝내고 의회가 권력을 갖는 합의제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 의회가 권력을 갖기 위해서는 양당제가 아니라 다당제를 통해 연립정부로 정책적인 통합을 이뤄야 한다.”

―이번 대선을 어떻게 평가하나.

“여야 모두 대통령이 될 사람만을 후보로 모시기에 급급했다. 두 후보 모두 미래 비전에 대해서는 확고한 철학이나 경험, 실적이 없으니 네거티브로 갈 수밖에 없는 거다. 이전 대선에서는 그런대로 시대정신에 맞는 대통령이 뽑혔다면, 지금은 전부 네거티브뿐인 과거가 중심이 되는 정치가 재현되고 있다.”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시대정신을 ‘공정’이라고 하지만, 그보다 ‘미래’와 ‘통합’이다. 공정은 사실 ‘과거에 대한 회초리’다. 공정만 따지면 과거 잘못을 들추고 처벌하게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 공정하지 못했다고 하면서도 문 정부도 다시 편파적이고 진영 논리에 휩싸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또다시 공정을 찾아야 한다면서 윤 후보가 나왔다. 싸움의 정치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없다. 미래를 위해서는 갈등과 분열에서 벗어나 통합해야 한다. 공정만으로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이 후보를 어떻게 평가하나.

“이 후보는 경기지사 시절의 실적으로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선거 공보에 적힌 업적이 신천지 시설 강제 폐쇄, 계곡 불법시설 철거, 공공 배달 앱 출시 같은 것들이다. 그게 나라를 운영할 정도의 실적이라고 할 수 있나. 경기도의 공조직을 사적인 영역으로 두고 측근 정치를 했다.”

―윤 후보에 대해서도 평가해 달라.

“윤 후보도 나라를 경영할 생각이나 준비 없이 검찰총장으로 지내다가 야당이 불러서 대통령 후보로 나온 것 아닌가. 그러다 보니 제시하는 내용은 정권교체뿐이고 국가 비전에 대한 설계가 없다. 윤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국회에는 180석의 야당이 있고, 국민의힘 내부에도 복잡한 요소가 많다. 앞으로 간단하지 않을 거다.”

―두 후보가 고쳐야 할 점은.

“이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권력을 공적인 구조나 기구를 통해 행사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모든 것을 갖게 되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면 으레 사적 권력기구나 비선 실세가 생긴다. 권력의 사적 도구화야말로 대통령제의 폐해다. 윤 후보는 아직도 ‘잘못하면 법대로 잡아넣으면 된다’는 검찰총장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검찰이라면 몰라도 대통령이 되면 법을 운용하는 사람이 돼야지, 법대로 한다는 건 핑계밖에 안 된다. 법에 그렇게 돼 있어도 정치적인 합의로 풀자고 하는 포용과 통합의 자세로 가야 한다.”

―차기 대통령에게 당부할 말은.

“우리에게 다가온 과제는 미래다.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선진국 반열에 제대로 올라서야 한다. 그러려면 편 가르기 갈등과 분쟁의 정치를 끝내야 한다. 정치를 바꾸지 않으면 선진국의 문턱에서 좌절할 수 있다.”

―‘손학규 징크스’라는 말로 조롱도 당했는데 아쉽지는 않나.

“굳이 나를 위해 변명하자면, 내가 서강대 교수를 그만두고 국회의원에 출마하기 전 마지막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내가 뭐가 되는지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하는지’를 지켜봐 달라고 했다. 억지로 때에 맞춰서 하기보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해왔기 때문에 우연히 때가 맞지 않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유감은 없다.”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생각인가.

“정치가 발전하고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자리 잡게 하려고 내가 하려던 것들을 다 이루지 못했다. 앞으로 정치인들, 후배들이 그런 것을 만들어 나갈 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나 도움 되는 일이 있다면 그런 역할을 조용히 하지 않겠나.”

이후민·윤정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