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105년만에 디폴트 임박… 서방 채권자 “루블화 안받는다”

채권이자 상환만기 하루앞으로
러 “1454억원 루블화로 주겠다”
서방은 “달러로 지급해야” 거부
양측 ‘고의 부도’ 책임 공방까지
美 Fed 금리인상 결정도 ‘촉각’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서방의 전방위 제재에 직면한 러시아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여부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러시아가 외화 표시 채권의 이자를 루블화로 지급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서방의 채권자들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아 디폴트는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에 따라 러시아 디폴트의 책임을 놓고 러시아와 서방 간 ‘고의 부도’ 공방도 거세게 나타나는 형국이다.

15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러시아가 16일까지 갚아야 하는 외화(달러와 유로화) 표시 채권 이자는 1억1700만 달러(약 1454억 원)에 달한다. 러시아가 외화 이자를 갚지 못해 디폴트를 선언할 경우 1917년 볼셰비키혁명 이후 최초의 외화 디폴트가 된다. 당시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끈 볼셰비키 정부는 혁명으로 차르(황제)를 몰아낸 뒤 제정 러시아의 채무 변제를 거부했다. 루블화 채권에 대한 디폴트는 1998년에도 한 차례 발생한 바 있다. 러시아는 1998년 루블화 채권에 대해 디폴트를 선언하고 외화 표시 채권에 대해서는 모라토리엄(채무지불유예)을 선언했다.

서방과 러시아의 ‘고의 부도’ 공방도 거세지고 있다. 러시아가 채권 이자에 대해 아예 모른 척하겠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는 이자를 루블화로 지급하겠다는 입장이다. 서방이 6430억 달러에 달하는 러시아 외환보유액 중 약 절반에 해당하는 3000억 달러를 동결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 측이 이를 두고 “서방이 러시아를 고의 부도로 몰아넣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이에 서방 채권자들은 ‘불가’ 입장이다. 이자 지급 기한이 도래한 외화 표시 채권에 루블화 지급 가능 옵션이 없기 때문에 정상 지급돼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서방은 루블화 가치 하락을 피하기 위해 달러화 유출을 막으려는 러시아에 고의 부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 또 서방은 러시아가 고의 부도를 통해 서방 금융기관에 혼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의심도 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 디폴트는 자금 부족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 디폴트 시 세계 경제에 미칠 파장에도 관심이 쏠린다. 당장 16일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후 밝힐 통화 정책 방향에 영향이 예상된다. 실제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 선언 당시 미국 거대 헤지펀드인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붕괴와 금융시장 전체의 불안을 초래한 바 있다.

임정환 기자 yom7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