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기구하게 살아오셨는데… 원망만 했던 자식, 용서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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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합니다 - 어머니 김덕래 여사

88년 전, 갓 스물 된 삼척 심(沈) 씨 가문의 딸은 강릉 김(金) 씨 맏아들과 혼인했다. 시집을 간 심 씨는 만만치 않은 시동생과 시누이가 일곱이나 됐다. 삶이 순탄할 리 없다. 온갖 갈등에 시달렸다. 딸을 출산하자, 시댁은 그를 날로 업신여겼다. 견디지 못한 심 씨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7개월 갓 지난 딸을 두고.

김 씨 집안은 충격을 받았다. 소용없는 일이지만, 장사를 후하게 치렀다. 3년이 지나자, 김 씨는 또 다른 처녀 선(宣) 씨에게 재취(再娶)했다. 이제 김 씨와 심 씨 사이에 태어난 딸은 어찌 되는가? 김 씨의 모친, 즉 할머니 자식들과 함께 자랐다. 나이가 들자, 어머니가 없고 아버지는 새 장가를 들면서 사실상 부모가 없다는 것을 인식한다. 부모 사랑은 애초부터 연목구어 신세다.

삼촌들과 고모들 사이에서 자란 김 씨 딸은 갓 스물이 넘어 이런저런 사람 소개로 직업군인을 만나 혼인했다. 뒤웅박 팔자로 태어난 것인지, 남편은 혼인하기 무섭게 술에 기대 지내면서 몹시도 힘들어했다. 혼인 생활 11년, 그는 4남매를 두고 요절했다. 36세였다. 김 씨 딸은 부모 복도, 남편 복도 없었다. 하지만 살아야만 했다.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 행상에 나섰다. 삶이 나아질 기미가 없자, 개가(改嫁)했다. 한번 꼬인 팔자라 그런지 중국음식점 요리사였던 두 번째 남편과의 삶도 만만치 않았다. 하루에 12번은 싸우지 않고는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가끔 김 씨 딸은 삶이 너무도 버거워 친부(親父)를 찾아 도움을 호소했다. 하지만 친부는 딸을 처음부터 챙기지 않아서인지 정(情)이라곤 없었다. 만날 때마다 매몰차게 나오자, 친부에 대한 한(恨)을 뼈에 묻었다.

고난이 지속하자, 극단적 선택을 수도 없이 고려했다. 그때마다 자신의 어머니와 자식들이 눈에 밟혀 멈춘다. 날이 가고 달이 가면서 자식들이 장성했다. 조금씩 환경이 나아지자, 그는 삶의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왜 이토록 한 많은 삶을 살아야 했는지를 곱씹었다. 모두가 ‘어머니와 자신의 할머니 사이에서 비롯’됐음을 인식했다. 그렇다고 할머니 손에서 자란 그녀는 어찌할 방법도 없다.

갓 스물 된 여성이 딸아이를 두고 세상을 떠나면서 시어머니에 대한 한이 얼마나 크고 많았을까. 하지만 김 씨의 딸은 그렇게 한을 품고 가신 모친의 산소를 찾을 생각조차 못 했다. 그 누구도 산소를 찾아뵐 것을 권한 적도, 그래야 하는 이유도 알지 못했다. 100세에 돌아가신 자신의 할머니와의 정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또 자신의 처지가 거기서 비롯되었다고 여겨 유감이기도 했을 듯하다.

김 씨의 딸은 내 어머니다. 어느덧 88세 노인이 됐다. 어머니를 모시고 강원 강릉에 계신 모친의 생모 묘소를 찾았다. 양지바른 곳에 편안하게 계신다. 어머니는 자신을 낳아준 생모 묘소를 처음으로 찾았다. 어머니는 한동안 말없이 깊은 생각에 잠기셨다. 이후 나는 외할머니의 원혼을 지니고 삼척에 계시는 외증조할머니 묘소를 찾았다. 90년 가까운 원혼을 화해시켜 드렸다고 생각하니, 안도감이 몰려왔다.

인생이 덧없는 일이라지만, 어머니의 삶을 돌이켰다. 그간 내게 해주신 게 뭐냐? 우리 자식들에게 해주신 게 뭐가 있느냐를 원망하며 살았던 삶에서 벗어나, 어머니의 처지에서 삶을 처음으로 대했다. 이렇게 기구할 수가 없다. 이렇게 슬픈 삶이 또 어디 있을까를 생각했다. 눈물이 마구 쏟아진다. 일자무식인 우리 어머니. 어머니를 그간 원망했던 이 못난 자식은 눈물로 용서를 대신한다. 또 다른 화해를 하는 순간이다. 남은 세월, 더 자주 모셔야겠다.

아들 김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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