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농담에 도 넘은 윌 스미스…‘안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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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아카데미 시상식 폭행사건

제94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벌어진 유례없는 폭행사고는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될 것 같다. 전 세계 영화 애호가들은 각본 없는 범죄현장(크라임 신)을 생방송으로 목격했다. 뺨을 맞은 건 크리스 록이지만 시청자들도 한 방 가격당한 기분이었을 거다.

수사권은 없지만 음악동네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정리해 본다. 턴테이블에 올릴 첫 번째 노래는 1974년에 발표된 ‘왜 그랬을까’다.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이제는 후회해도 어쩔 수 없어요.’ 세 자매(이길효, 영효, 은효)로 구성된 쿨 시스터즈가 불렀는데 가사 내용은 그냥 사사로운 대학생활의 애환 스케치다. ‘시끄러운 찻집에 홀로 앉아서/ 메모지에 낙서만 하고 있다가/ 시험지를 받아 드니 아는 게 없어/ 또르르 연필만 굴리고 있네.’

두 번째 노래는 영탁의 ‘니가 왜 거기서 나와’다. 시상식에선 나오라고 할 때 나가야 한다. 호명되지 않았는데 ‘무시로’ 등장하면 그건 난동이거나 난입이다. 인생 여정엔 남기고 싶은 장면도 있고 넘기고 싶은 순간도 생긴다. 직전까지 남우주연상 유력 후보였고 실제로 수상까지 한 윌 스미스에게 ‘그 순간’만은 도저히 그냥 넘기기 어려웠던 걸까. 아내의 상처를 농담의 소재로 끌어다 쓴 악동 크리스 록이 그날의 ‘구타유발자’였다. ‘너무합니다/ 너무합니다/ 당신은 너무합니다.’(김수희 ‘너무합니다’ 중) ‘너무’는 ‘넘다’에서 나온 말이다. 이번 사건에서 도를 넘은 건 구타자일까 유발자일까. 외국 여론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59%가 ‘누군가의 발언 때문에 그를 때려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로스앤젤레스타임스 3월 29일 보도) ‘그 정도는 참아야지’라고 할 때의 정도가 올바른 길(正道)인지, 아니면 알맞은 한도(程度)인지는 그날그날 풀어야 할 숙제인 듯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주철환 프로듀서·작가·노래채집가

시상식엔 별들이 모인다. 그날도 ‘별의 순간’이 몇 번 있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윤여정 씨가 시상자로 나온 장면이 주목받았다. 수상자가 청각장애배우(트로이 코처)인 걸 예상하고 준비했는지, 아니면 평소에도 그 정도 표현은 가능한 것인지 그는 수어로 ‘축하합니다’를 전달했다. 놀라운 건 수상자가 두 손으로 기쁨을 형상화하는 동안 트로피를 끝까지 대신 들어 준 사실이다. 트로이 코처의 메시지 중 ‘훌륭한 감독은 최고의 소통자(커뮤니케이터)’라는 말이 내게는 강렬했다. 결국은 소통이다. ‘아 한마디 말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고’는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산울림 노래) 난 뒤에야 펼쳐지는 풍경이다. 요즘은 한마디 말이 화살이 되고 총이 되는 그림이 빈번하다. 웃자고 한 말도 웃지 않으면 전쟁이 된다. 그날 눈물로 변명(해명)한 윌 스미스에게 덴절 워싱턴이 해준 조언은 어록에 남을 만하다.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그 순간을 조심해라. 그때 바로 악마가 너에게 찾아오니까.”

재연 프로그램으로 인기 높던 ‘경찰청사람들’(MBC)은 모방범죄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그걸 비켜 가는 방편으로 매번 끝 장면에 실제 경찰이 나와서 “죄를 짓고는 살 수 없습니다”를 반복했다. ‘선을 넘는 녀석들’(폭력성)을 ‘옷소매 붉은 끝동’(권선징악)으로 묶은 셈이다.

다시 세상을 보자. 거짓말과 거친 말이 나란히 활보한다. ‘오직 나만을 위한 그 약속과/ 내 곁에서 날 지켜 준다는 말.’ 이런 좋은 가사로 조항조가 부른 노래 제목이 ‘진실’이 아니라 ‘거짓말’이라는 건 아이러니다. 내게 기술이 있다면 차제에 언어순화번역기를 만들고 싶다. 거짓말은 진실로, 거친 말은 유머로 바꾸는 기능을 심고 싶다. 실수는 위기지만 용서는 기회다. 그래서 마지막은 가왕의 노래로 마무리한다. ‘너를 용서 않으니 내가 괴로워 안 되겠다/ 나의 용서는 너를 잊는 것.’(조용필 ‘큐’ 중) 지금 모질게 다투는 그대들이여. 용서할 기회, 용서 구할 기회를 놓치지 마라.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