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프랑스 오페라 선구자…기교 일색 이탈리아와 차별화

  • 문화일보
  • 입력 2022-04-14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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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남자의 클래식 - 샤를 구노

‘돈 조반니’관람후 작곡가 꿈
‘파우스트’초연 기대이하 성적
수차례 개정 작업후 대성공
프랑스 대표적 오페라 우뚝
‘로미오와 줄리엣’도 큰 호응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한 오페라 작곡가는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와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 아름다운 프랑스 음악으로 영혼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두 장르가 융합돼 탄생한 오페라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오페라가 됐고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바로 샤를 구노(1818∼1893)의 이야기다.

구노는 파리에서 미술가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구노가 5세가 되던 해, 그의 아버지는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피아노 교습으로 돈을 벌어 어렵게 생계를 꾸려나가게 된다. 어머니는 물론 구노에게도 직접 피아노를 가르쳤고 어려운 형편에도 교육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11세가 되던 1829년, 구노는 생 루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이 시기부터 화성학을 공부하며 음악가의 꿈을 키워간다.

14세 무렵, 구노는 어머니와 함께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를 관람하게 되는데, 이날의 감동으로 그는 훗날 오페라 작곡가가 되리라 결심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8세가 되던 1836년, 그는 파리음악원에 입학해 알레비와 르쉬외르에게 작곡을, 짐머만에게 피아노를 사사한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839년, 구노는 신인 음악가의 등용문인 로마대상에 칸타타 ‘페르낭’을 출품해 당당히 대상을 수상하게 된다. 대상 특전으로 주어진 3년간의 로마 유학에서 구노는 르네상스 시대 음악가인 팔레스트리나의 작품에 심취하게 되고 종교음악에 대한 연구와 작곡에 몰두한다. 이 시기 종교음악 작품 여럿을 작곡하게 되는데, 유학 중 오스트리아 빈으로 건너가 자신의 미사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구노는 파리의 미시옹 에트랑제르 교회의 오르가니스트 겸 성가대 지휘자 자리를 얻었으나, 성직자의 길을 걷기 위해 1846년 생 쉴피스 신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바로 이듬해 구노는 사제가 되길 포기하고 다시 평신도로서 작곡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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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부터 구노는 오페라 작곡에 전념해 33세가 되던 1851년 오페라 ‘사포’를, 1854년엔 ‘피투성이가 된 수녀’를 발표했지만 큰 호응을 이끌지는 못했다. 1859년에는 앞서 1852년부터 야심 차게 집필하기 시작한 오페라 ‘파우스트’가 파리 리리크 극장에서 초연됐지만 역시 기대 이하의 결과였다. 그러나 1869년 몇 번의 개정작업을 통해 파리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재공연에서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는 당시 가창 기교가 일색이던 이탈리아풍 오페라와 구분되는 것이었고, 마침내 프랑스풍 오페라의 탄생을 알리는 시금석과도 같은 것이었다. 오늘날까지도 비제의 ‘카르멘’과 더불어 프랑스를 대표하고 또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후 1864년엔 오페라 ‘미레이유’를 발표하고, 49세가 되던 1867년엔 파리 리리크 극장에서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을 초연하며 또 한 번의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오늘의 추천곡
- 아리아 ‘정결하고 순수한 집이여’


극 중 3막에 등장하는 파우스트(테너)의 아리아로 프랑스적인 색채와 서정성이 일품인 작품이다.

극 중 3막 ‘마르그리트의 집 정원’, 마르그리트를 흠모하는 지벨은 그녀에게 전할 꽃을 어루만지며 ‘꽃의 노래’를 부른다. ‘온몸이 떨려 오네, 거룩하고 순수한 영혼이 배어 있는 이곳은 나를 풍요로움으로 감싸 오네. 오! 이곳의 자연이 그녀에게 숨결을 불어넣어 아름답고 성숙한 여인으로 피어나게 했구나. 오! 정결한 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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