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로 상대 이기는게 능사 아니란것 배워…‘10년의 가치’ 맞먹는 1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8개월의 제1야당 대변인 임기를 마친 임승호(28) 전 국민의힘 대변인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후련한 표정으로 정장 재킷을 벗어 털어 내고 있다. 윤성호 기자

■ M 인터뷰 - 임기 마치고 다시 법학도로…임승호 前 국민의힘 대변인

법학도로 잠시 현실 정치 경험
정치와 법리 사이에 간극 존재
정치인들은 더 넓은 영역 봐야

사고 안내고 임기 마쳐 ‘85점’
대중이 공감할 용어 사용 배워
방송출연 등 활동에 아쉬움도

정치권 청년 기용 필요하지만
할당제보단 실력으로 뽑아야
검증된 목소리 내야 힘도 실려

‘솔직히 요즘 당 상황을 보고 있으면 답답합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활력이 넘쳐나던 신선한 엔진이 꺼져 가는 느낌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아직 대선 후보이던 지난해 11월, 선거대책위원회 구성을 놓고 갈등이 불거지자 임승호(28) 전 국민의힘 대변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대변인단 공개경쟁 선발 토론 ‘나는 국대다’를 통해 제1야당 대변인으로 발탁됐던 임 전 대변인은 이 글에서 ‘몇 주 전까지만 해도 기존의 우리 당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물밀듯 몰려오던 청년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 같지 않으냐’고 따져 물었다.

반응은 엇갈렸다. 한 중진 의원은 ‘개인적인 논평보다는 당을 대변하는 공식 논평에 집중해 달라’고 지적했고, 더불어민주당 선대위는 오히려 ‘청년 대변인의 소신’이라며 감쌌다. 그러나 윤 당선인은 임 전 대변인을 질책하는 대신 대변인단을 직접 만나 귀를 기울였다. 청년 대변인들의 당돌한 건의도 받아들였다. 실망해 떠나가던 2030 표심이 서서히 돌아섰고, 윤 당선인은 20대 지지에 힘입어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이로 승리했다. 제1야당 대변인 임무를 마치고 20대 청년으로 돌아간 임 전 대변인을 지난 6일 국회에서 만나 8개월간 경험한 여의도 정치와 선거에 대해 들어 봤다.

―법학도로서 1년 가까이 현실 정치를 경험했다. 법과 정치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달랐나.

“정치에서도 법을 다루는 영역이 있다. 예를 들어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사건을 법리적으로 해석하면서 법학 지식을 활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거나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는 일들이 있다. 그런 부분에서 괴리가 있었고, 정치인들은 좀 더 넓은 영역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국대다’ 2기 면접에 참여했다. 선배로서 어떤 느낌이었나.

“예선 과정에서부터 훌륭한 분들이 많이 나와 긍정적으로 봤다. 다만 1기 대변인단과는 분명히 차별점을 둬야 할 것 같다. 당장 5월부터 여당 대변인으로 활동하는 2기 대변인단이 공격적으로 비판만 하면 ‘너희가 집권 여당인데, 그래서 무엇을 하겠다는 거냐’는 비판을 들을 수 있다. 이번에 대변인으로 활동할 분들은 공격적인 자세도 좋지만 ‘당신 말도 이해한다, 당신 말도 일리가 있다’는 식으로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20대 청년이 겪은 제1야당 대변인으로서의 8개월은 어땠나.

“다사다난했고, 참 ‘극한 직업’이었다. 기존의 대변인들이 겪을 수 없는 일도 많이 겪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잠적 사건 때도 사실 당황스러웠다. 당 대표와 소통이 안 된 상황에서 함부로 말하면 오해를 빚을 수 있기에 적절한 정치적 용어를 섞어 가면서 더 심한 내홍으로 번지지 않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방송이나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 진의와 다르게 왜곡될 때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8개월의 시간이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용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특정 집단이나 계층이 불편해할 수 있는 용어를 어떻게 지양하는지를 배우며 성숙해졌다.”

―대변인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지난해 11월 선대위 인선에 관해 SNS에 글을 썼는데, 2∼3일 뒤에 윤 당선인이 한번 면담하자고 해서 대변인단이 다 같이 만났다. 사실 갈 때는 무서웠다. 검찰총장을 지내신 분이고 유력한 대선 후보이기 때문에 크게 혼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나는 그 자리에서도 ‘잘못된 조언을 받는 것 같다’는 등 윤 당선인이 불편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다. 윤 당선인은 곰곰이 듣고 있다가 ‘청년을 조직 내에 융합해 달라’는 건의에 ‘내가 청와대에 들어가면 보좌역을 두려고 했는데 지금부터 하자’며 바로 지시를 내렸다. 선거 과정에서 ‘쇼트 공약’ ‘한 줄 공약’ 등 청년 보좌역들이 큰 역할을 한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내가 말씀드린 것들이 긍정적으로 작용해서 청년 보좌역들이 당선에 큰 역할을 해 뿌듯하고 기억에 남는다.”

―문제의 글은 어떻게 쓰게 됐나.

“그 글을 올린 뒤 당내 관계자에 따르면 민원이 많이 들어왔다고 하더라. ‘대변인이라는 직함에 어울리는 글이냐’ ‘공당 대변인은 정돈된 말만 해야 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번 대변인단의 명분과 역할이 기존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당 대표가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10만 건이 넘는 문자 투표를 통해 국민의 검증을 받았기 때문에, 국민 정서가 당과 괴리가 있을 때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라고 봤다. 윤 당선인이나 특정 인선을 저격한 것이 아니라 선대위의 방향과 비전에 대해 의문부호를 던진 것이다. 내가 일종의 금기를 깼으니, 2기 대변인단도 그런 순간이 온다면 가감 없이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국민 대변인’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지난해 말 SNS에서 ‘나는 국대다’ 사진과 함께 ‘이때 선택이 내 삶의 변곡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글을 썼다. 1년 전으로 돌아가더라도 참가할 것인지.

“당연히 할 것이다. 사실 영상 심사 합격 문자를 받고 고민했다. 변호사 시험이 1년 미뤄지고 20대도 서서히 저물어 가는데, 20대의 1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나 오고 나서는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조인으로 활동하든, 다른 활동을 하든 도움이 될 수밖에 없는 업무와 사회생활을 배웠기 때문에 후회가 없다. 법학전문대학원을 쉬어 가는 1년이었지만, 인생에 있어 10년 이상의 가치가 있는 1년이었다고 생각한다.”

―대변인 활동을 통해 생각이 바뀐 부분도 있나.

“처음 대변인으로 활동할 때는 방송이나 공적 자리에서 상대와 이야기할 때 ‘내 논리를 무조건 관철시켜야겠다’ ‘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응원해 주는 분들에게서 ‘너의 논리가 맞을 수 있지만, 결국 태도도 중요하다. 조금 더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태도를 보여 줬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8개월 정도 활동하면서 상대의 말도 옳을 수 있다는 것, 상대를 논리적으로 부수고 이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감정도 많이 드러나는 편이었는데, 감정을 통제하고 표정을 관리하는 방법도 많이 배웠다.”

―본인의 활동에 점수를 준다면.

“85점으로 하겠다. 사고 안 내고, 중간에 경질 안 된 것만으로도 신임 대변인으로서는 성과라고 생각한다. 그에 더해 대선에서 승리해 우리가 목표했던 바를 이뤄서, 조금 창피하지만 스스로 높게 평가하고 싶다. 다만 15점을 뺀 이유는 대선 기간에 방송 출연 등의 활동을 만족할 만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대위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지적했을 때 외에도 목이 근질근질한 순간이 많았는데, 목소리를 더 내도 되지 않았나 생각해서 15점은 뺐다.”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 등 2030 청년들이 정치권에서 주목받고 있다. 청년 정치에 대한 생각은.

“청년층이 많이 기용될 필요는 있지만, 실력 있는 청년들이 들어와야 한다. 할당제로 밀어 넣으면 국민이 공감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오히려 청년 정치를 훼손시킬 수 있다. 할당제가 아니라 기회의 장을 열어 주고, 그 기회의 장을 통해 검증된 청년들이 국민의 시선과 일치되는 목소리를 낼 때 청년 정치가 활성화될 것으로 본다.”

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