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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김선영 기자의 오후에 읽는 도쿄 게재 일자 : 2022년 04월 19일(火)
일본 영화계 뒤늦게 불붙은 ‘미투’… 되돌아온 건 ‘2차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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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영 기자의 오후에 읽는 도쿄

성폭행 폭로된 소노 시온 감독
“소란 끼친 점 사죄한다”면서도
“사실과 다른 부분은 법적 대응”

극보수적 사회 … 피해자 ‘머뭇’
소신 발언 여배우엔 ‘악성 댓글’


“감독이 자기 영화에 출연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성관계를 강요했다. 이를 거부하자 본인 작품에 출연한 여배우를 불러 내 앞에서 성행위를 했다.”

일본 영화계 거장 소노 시온(園子溫) 감독이 여배우들에게 성폭력·희롱을 일삼고 성상납까지 요구했다는 폭로가 쏟아지며 일본 영화계에 뒤늦게 ‘미투(#MeToo)’ 열풍이 불고 있다. 일본 영화계 관계자들의 반응은 “터질 게 터졌다”다. 소노 감독의 성폭력은 영화계에서는 거의 ‘문안 인사’ 수준일 정도로 일상적인 일이었다고 전해진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과거 일본 영화계에는 성희롱과 성폭행, 갑질이 당연했기에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이 많다”며 “그나마 인지도 있는 여배우들은 본심을 숨기고 잘 피해 가지만, 신인 여배우들은 버틸 힘이 없기에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도쿄(東京) 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소노 감독 외에도 과거 성폭력을 일삼은 일본 영화계 거장들이 매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본인이 가해자로 지목될까 봐 떨고 있다는 증언도 나온다.

지난 2012년 부산 해운대에서 열린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소노 시온 감독. 연합뉴스
일본 영화계는 침묵했던 과거와는 달리 자성과 분노의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지난 13일 영화 원작자인 여성 작가 18명은 “영화 제작 현장에서의 성폭력은 원작자로서도 관계가 없는 게 아니다”며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를 고백하는 것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호소했다. 소노 감독의 작품으로 데뷔한 톱 여배우 요시타카 유리코(吉高由里子)는 SNS를 통해 “이런 일로 듣고 싶지 않았던 분들의 이름이 나왔다”며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꿈으로 향하는 이들을 유린하다니, 정말로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이미 미국·영국·한국을 휩쓸고 간 미투 열풍이 왜 5년 만에 일본에서 뒤늦게 불붙게 된 것일까. 일본의 극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와 성폭력 피해자를 탓하고 손가락질하는 분위기 탓이 크다. 실제로 2017년 5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伊藤詩織)가 유명 방송기자에게 성폭행 당한 사실을 밝힌 이후에도 미투 폭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뒤늦게 시작된 미투 논란에도 일본에서는 여전히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가 성행하고 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소노 감독은 논란이 확산하자 “소란을 끼친 점에 깊이 사죄한다”면서도 “보도된 내용 중에서는 사실과 다른 부분도 있기에 대리인을 통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면서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미투’ 소신 발언을 한 배우 미즈하라 기코(水原希子)도 온라인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가 “일본 연예계에서는 성 가해가 계속 존재했고 나도 남성 감독으로부터 성희롱적 발언을 들은 적이 많다”고 밝히자 온라인에서는 “미즈하라는 한국 혼혈이다”라는 논점과 벗어난 내용의 악플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일본 영화계의 ‘미투 논란’은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피해호소인’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2020년 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의 피해자에게 더불어민주당 핵심 정치인들이 ‘피해 호소인’이라 지칭했던 사건으로, 이 같은 주장은 피해자를 위축시키고 성 가해자 위주의 사고방식을 공고화하는 명백한 2차 가해다.

성범죄, 더 나아가 성범죄를 옹호하는 발언은 한 개인의 영혼까지 죽인다. 성폭력과 2차 가해가 그렇다. 일각에서는 “이번 미투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일본 영화계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평이 나온다. 일본 영화계도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 취급하는 우를 범할 것인가.

김선영 기자 sun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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