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학·병역까지 ‘만 나이’ 적용 추진… 대인관계 호칭정리 복잡해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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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문10답 - ‘나이 계산법 통일’ 일상변화

출생 이듬해 생일 지나야 ‘1세’
개정안 마련해 내년 시행 목표
연 나이 써왔던 개별법도 정비

전세계서 한국만 세는 나이 써
법적·사회적 계산법 달라 혼선
취준생 80%“취업에 도움될것”

같은 해 태어나도 나이 제각각
서열 중시하는 문화 가진 한국
형·동생의 개념도 변화 불가피

우리나라에서 “너 몇 살이야”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크게 두 가지다. 흔히‘세는 나이’로 대답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부는 만 나이로 계산해 답하기도 한다. 이렇게 법적·사회적 나이 계산법이 통일되지 않아 일상생활에서의 혼란은 물론, 사회복지서비스 등 행정서비스를 받거나, 각종 계약을 체결 또는 해석할 때 문제가 생기고 있다.

이에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우리 사회 나이 계산법을 ‘만 나이’ 기준으로 통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다양한 나이 계산법과 유래, 한국식 나이 계산법에 따른 혼란상, 해외 사례 등을 심층적으로 살펴본다.


1. 우리나라의 나이 계산법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세는 나이(한국식 나이) △만 나이(국제통용 기준) △연 나이(현재 연도-출생 연도) 계산법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 어떤 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3가지 나이를 갖게 되는 것이다. 한국식 나이 계산법인 ‘세는 나이’는 일상에서 주로 사용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1살이 되고 해가 바뀔 때마다 한 살씩 더 먹게 되는 셈법이다. 우리나라도 국제표준이자 출생일을 기준으로 하는 ‘만 나이’를 1962년부터 민법상 공식적으로 적용하고 민사와 행정 분야 등에 한정해 사용하고 있지만, 취학·병역 등 행정편의를 위해 ‘연 나이’도 혼용하고 있다.


2. 언제부터 어떻게 만 나이로 통일되나

인수위는 우선 민법과 행정기본법에 ‘만 나이’ 계산법과 표기 규정을 마련해 민사와 행정 분야에서의 ‘만 나이’ 사용 원칙을 확립할 계획이다. 이후 현재 ‘연 나이’ 계산법을 채택하고 있는 개별법도 정비할 방침이다.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정책을 수립하거나 공문서를 작성할 때 ‘만 나이’만을 사용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현재 ‘행정 효율과 협업 촉진에 관한 규정’에는 공문서 등 작성 시 나이 표기에 관한 명시적 규정이 없다. 사적인 영역과 관련된 민법과 공적인 영역을 다루는 행정기본법이 개정되면, 그동안 개별법에 따라 달라졌던 나이에 관한 규정이 만 나이로 통일된다. 인수위는 내년까지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올해 안에 개정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3. ‘세는 나이’ ‘연 나이’ ‘만 나이’ 각각 어떻게 적용되고 있나

한국식 나이인 ‘세는 나이’로 계산할 경우 태어나자마자 1살이 된다. 출생일부터 1살로 치고, 다음 해 1월 1일이 되면 1살이 더 늘어나 2살이 된다. 다음으로 국제통용 기준인 ‘만 나이’는 실제 살아온 시간을 반영한다. 출생일 기준 0살부터 시작해서 1년이 지날 때마다 1살씩 증가한다. 마지막으로 현재 연도에서 출생 연도를 빼서 계산하는 ‘연 나이’가 있다. 일정 연령에 이르는 해의 1월 1일부터 해당 나이로 취급한다. 병역법의 경우 병역 자원의 통일적 관리를 위해 연도를 기준으로 나이를 계산하고, 청소년보호법에서도 연도를 기준으로 청소년 여부를 구분하고 있다.


4. 나이 셈법에 따른 혼란은

법적·사회적 나이 계산법이 통일되지 않으면서 국민이 행정서비스를 받거나 각종 계약을 체결할 때 혼선·분쟁이 지속돼 사회·경제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 정부가 “30세 미만에게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예방접종을 권장하지 않는다”고 발표했을 때 접종 현장에서는 ‘연 나이’인지 ‘만 나이’인지 혼란이 빚어졌다. 최근 한 기업 노사는 단체협약상 임금피크제 적용연령으로 규정된 56세의 의미에 대해 법정 다툼을 벌인 끝에 만 55세라는 대법원 판결을 받아 내기도 했다. 자동차 보험계약 시 연령 한정 운전특약 적용연령은 약관상 ‘만 나이’로 계산하지만 별도의 설명이 없어 ‘세는 나이’로 해석하고 계약한 경우 실제 교통사고 시 보험금을 지급 받지 못해 분쟁이 발생하는 상황도 다수 있었다.


5. ‘세는 나이’의 기원과 의미는

한국식 ‘세는 나이’의 기원은 명확하지는 않지만, 고대 중국 등 과거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주로 사용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는 나이’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說)이 있다. 인간 존중 사상의 영향으로 배 속의 태아도 하나의 생명으로 인정해 나이 개념을 적용하는 ‘생명 존중’ 정신의 산물이라거나, 고대 아시아 지역이 서양보다 숫자 ‘0(Zero)’ 개념이 늦게 정착했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임신 중절(낙태)은 오랫동안 죄가 아니었고, ‘0’ 개념에 대한 인식도 중국이 유럽보다 빨랐다는 점에서 논리적 근거가 뚜렷한 이야기는 아니다.

동서양의 달력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그나마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체로 동아시아는 음력, 유럽은 양력 문화권이었다. 음력을 사용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매년 새 달력을 내놨는데, 인간의 질서를 자연의 주기에 맞추는 음력에서는 날짜 변동이 심해 생일을 기준으로 삼을 만한 확실한 날을 새 달력이 시작되는 새해 첫날로 정했다. 이에 따라 음력의 시간관념에서는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태어나자마자 사람의 나이를 한 살로 쳤다는 것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용호(왼쪽)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사법행정분과 간사와 박순애 인수위원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원회 공동기자회견장에서 법적, 사회적 나이 계산법 통일에 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6. 일본, 중국 등 다른 동아시아 국가는 어떻게 나이를 계산하나

오늘날의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세는 나이’를 폐지했다. 일본은 1902년 ‘만 나이’를 공식 적용했고, 1950년부터는 ‘세는 나이’를 법으로 금지했다. 중국에서는 1960∼1970년대 진행된 문화대혁명 이후, 북한은 1980년대 이후 ‘만 나이’만 쓰고 있다.

‘나이 셈법’을 통일하자는 주장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높은 편이다.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 24∼27일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7명(71%)이 한국식 나이를 폐지하고 ‘만 나이’를 사용하는 것에 찬성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1896년 양력이 도입된 이후로도 지금껏 음력 설을 지내고 있다. 일제가 양력 명절을 강요한 탓에 음력에 대한 한국인의 애착이 강하다고 하는데, 법적 나이가 ‘만 나이’로 통일되더라도 ‘세는 나이’로 형·동생을 정하는 일상의 시간관념까지 바뀔지는 지켜볼 일이다.


7. 만 나이 적용 여론은

만 나이 기준 적용에 대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고, 표준화 시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취업준비생들을 중심으로 우호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HR테크 기업 인크루트가 지난 14일 ‘만 나이 기준으로 계산법을 통일할 시 취업 활동에 미칠 영향과 취업연령 압박감’을 알아보기 위해 직장인과 취업준비생 95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80.4%가 만 나이 기준 계산법 시행 시 본인의 취업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도움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은 19.6%로, 10명 중 2명은 적용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법적 나이가 만 나이로 통일되더라도 세는 나이로 형·동생을 정하는 일상의 시간관념까지 바뀌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정착까지 인식 개선 문제 등 혼선이 있을 수 있다.


8. 포털 사이트에서는 나이를 어떻게 표기하나

네이버와 다음 등 국내 포털들은 인물의 세는 나이를 먼저 쓰고, 만 나이를 따로 표기하고 있다. 네이버의 인물 검색 결과에서는 생년월일만 나오지만, 프로필 등 해당 인물 정보에서는 세는 나이와 만 나이를 함께 표시하고 있다. 또 네이버에서 인물의 이름 뒤에 나이를 붙여 검색하면 세는 나이를 우선 적고, 괄호 안에 만 나이를 함께 표기한다. 다음도 네이버와 같다. 검색창에서는 나이가 나타나지 않지만, 인물 검색으로 들어가면 세는 나이와 만 나이를 같이 볼 수 있다. 단 다음카페의 회원정보에서는 세는 나이만 쓰고 있다. 세계 최대 검색엔진인 구글은 검색 인물의 나이를 만 나이로 통일해 표기하고 있으며 ‘만’ 자를 별도로 표시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구글은 전 세계적인 사이트이기 때문에 만국 공통인 만 나이만 적시하고 있다.


9. 그동안 왜 나이 계산법을 통일하지 못했나

한국 사회가 정서적으로 나이를 중시하는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칠순이나 팔순 등 나이를 세는 용어도 세는 나이를 기준으로 하며, 태어난 해를 대표하는 ‘띠’도 세는 나이에 따라서 정해지는 등 나이와 관련된 관습도 적지 않다. 사적으로 만날 때 세는 나이를 기준으로 형·오빠·누나·언니 등의 호칭으로 서열을 나누는 게 익숙할 정도로 나이가 일종의 ‘거대한 기수’로 적용돼 왔던 게 현실이다. 심지어 만 나이를 적용한다면 내 생일을 기점으로 서열이 정해질 수 있어 기존 대인 관계에서 호칭이 복잡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길이를 잴 때 미터법을 국제 기준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어도 일부 국가에서는 야드나 인치 등을 고집하고 있는 것처럼 오랜 기간 통용돼 온 관성을 쉽게 바꿀 수 없기 때문”이라며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식 태양력이 채택됐지만 여전히 절기 등에서 음력을 고집하는 것도 비슷한 예”라고 말했다.


10. 만 나이 도입을 위한 시도는 없었나

황주홍(당시 민주평화당) 의원은 지난 2019년 1월 ‘연령 계산 및 표시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에는 공문서에 만 나이만 기재하도록 의무화하고, 만 나이로 계산·표시하는 것을 권장하는 내용이 담겼으나 계류된 상태로 방치되다 흐지부지됐다. 지난해 6월에는 이장섭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3인이 ‘연령 계산 및 표시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고, 이 법안은 같은 해 11월 국회 전체 회의 상정을 거쳐 현재 소위원회 심사에 계류 중이다.

지난 1월 17일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국제표준인 만 나이로 통일시키겠다는 공약을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다. 한국식 나이와 해외에서 통용되는 나이 기준이 달라 혼선이 생기자, 나이 계산법을 통일하자는 취지였다. 윤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만 나이 도입은 현실화될 전망이다.

김성훈·최지영·김도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