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더 시리기 전에 우리 로망 지리산 가자… 석송 파이팅!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석송 친구들이 한라산에 올라 찍은 백록담.

■ 사랑합니다 - 40여 년을 함께한 석송 친구들

얘들아, 40년이 폴짝!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10년, 또 10년, 또또, 또또또…이렇게 40여 년이 지났구나. 징하다. 어찌 긴 시간을 빠개지지 않고 친구로 지내왔을까. ‘석송’이란 우리 모임의 이름 때문일까? 돌처럼 단단하고 소나무처럼 푸르다는 뜻의 석송. 유신 시절에나 어울릴 법한 낡고 촌스러운 이름 아래서 우린 잘도 어우러져 왔구나. 고1 때 까까머리에 까만 교복을 입고 학교 앞 분식집에서 처음 만난 우리. 메밀국수를 먹으며 서로 어색하게 소개를 하던 기억이 난다. 나, 승기, 철신, 계진이는 직할시에서 자라 초·중학교를 나왔고 정주, 제국, 세건, 치완, 필재는 시·군 단위 출신이었지만 촌스럽기는 다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 시절 우리의 고교 생활이란 게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같았으니까. 사실 그때 우리가 만나서 뭘 했는지 또렷하게 떠오르는 건 별로 없어. 메밀국수를 먹었던 것과 가끔 농구를 했던 것 말곤 특별한 기억이 나지 않아.

오히려 우린 고등학교 졸업 후에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지. 과외를 금지하고 졸업정원제로 대학 문을 넓혀준 전두환의 덕(?)을 쪼금 보면서, 우린 모두 서울로 대학을 들어왔고, 자연스레 더 뭉쳤지. 스무 살 우리들의 아지트였던 제기동 승기네 아파트가 지금도 생생하다. 우린 5공화국에 결박된 시대를 한탄하며 술을 마셨고, 카드를 치며 밤을 새웠지. 새벽 여명이 밝아 올 때쯤 모두 술에 취하고 심신이 바닥났는데, 그때까지도 냉정함을 잃지 않은 철신이가 판을 싹쓸이하곤 했었지. 1984년 어느 날엔 신림동서 함께 술을 마시다 늦은 밤 여관에 들어갔다가 처음으로 야한 비디오를 접하고 문화적 충격에 빠진 적도 있었지. 그때 우리 중 누군가가 말했잖아 “여관은 잠자러 오는 곳이 아니구나….”

대학 졸업 후 취직, 대학원, 인턴 레지던트 등 각자 사회인, 생활인으로 발을 내디디면서도 우린 안 만나면 몸이 결린 듯, 시간만 나면 얼굴을 맞댔지. 그러다 결혼을 생각하는 친구가 있으면, 예비신부들을 불러 ‘청문회’를 열었지. “이 녀석이 정말 나쁜 놈인데, 왜 이런 놈하고 살려고 하느냐”고. “인생 망치고 싶지 않으면 아직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헤어지라”고. 우리의 송곳 질문과 우격다짐에 예비신부들은 울먹이기도 했지만 우리는 철저한 검증을 위해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지. 돌이켜보면 그때 왜 그렇게 ‘난리블루스 청문회’를 강행했는지 몰라. 그때 우리 배우자들이 겪은 인격침해와 막말 피해를 생각하면 요즘 장관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는 청문회도 아니지. 거저먹는 거야. 그렇게 우리는 혼인하고 애들을 낳고 키우고, 이제 우리의 아이들이 벌써 결혼할 때가 되었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중장년이 되었구나, 친구들아. 눈이 침침해져 백내장 수술을 언제쯤 해야 하나 고민하고, 이가 시큰거리고 흔들려 임플란트를 서너 개씩 박았고, 야밤에 소변을 못 참고 몇 차례씩 화장실을 들락거려 ‘야관문’이 정말 전립선에 좋은지 궁금해하지. 그래서 요즘 우리 모두 공감하고 다짐한 게 있잖아. “우리가 다 함께 산에 가고 바다에 가고 재밌게 놀 수 있는 시간이 10년도 안 남았다”고. 남미 이구아수 폭포에 같이 가자고. 이구아수에 가기 전에라도 무시로 만나서 놀자고. 백두산에 꼭 가자고. 그전에 전국 국립공원부터 돌자고. 우리는 장장 12시간에 걸쳐 설악산 등반에 성공했고, 덕유산에서 최고의 설경을 만끽했으며, 한라산 백록담의 파란 물도 눈에 담았지.

얘들아, 난 너희들과 이구아수에 가고 싶다. 멕시코에서 공부할 때 이구아수에 가 본 적이 있는 세건이가 어마어마한 경관과 경외감에 대해 얘기했지. 이구아수를 본 루스벨트 대통령 부인이 “불쌍하구나, 나이아가라여!”라고 말했다고. 난 나이아가라 폭포보다 훨씬 장엄한 이구아수에 가서 그 앞에서 우리의 삶을 반추해보고 싶다.

얘들아, 엊그제 승기가 카톡에 올렸더라. 조만간 지리산 가자고. 가자, 지리산. 지리산은 우리에게 로망의 산이잖아. 무릎이 더 시리기 전에, 연골이 더 닳기 전에, 골다공증이 오기 전에, 지리산에 가자. 천왕봉에 올라 산 그리메를 보며 황홀해지자.

너희들과 같이 나이 들어가는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