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작가가 쓴 ‘K-스토리’… 글로벌 영화·드라마로 뜬다

  • 문화일보
  • 입력 2022-04-2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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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리우드·OTT서 잇단 ‘러브콜’

- 파친코
4대에 걸친 재일교포 가족서사

-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한국계 10대 소녀의 사랑얘기

- H마트에서 울다
한국인 엄마와 한식에 얽힌 추억

- 이머전시 콘택트
美 사회에서 정체성 찾는 한국인

- 내가 너의 얼굴을 한다면
한국계 미국인이 본 한국 민낯


최근 애플TV+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역주행 중인 소설 ‘파친코’와 넷플릭스 히트작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내사모남)의 공통점은 원작이 한국계 미국 작가들의 소설이라는 점이다. 넓게 보면 ‘K’라는 자장 안에 있는 ‘K-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4대에 걸친 재일교포의 삶을 그린 ‘파친코’는 한국 역사를, ‘내사모남’은 미국 로맨스 소설이지만 주인공이 한국계 여성이다. 더 중요한 건, 이 이야기에 세계가 열광한다는 것. 1990년대 노라 옥자 켈러의 ‘종군 위안부’, 이창래의 ‘제스처 라이프’ 등이 한국계 작가의 작품으로 주목받았으나, 대중적으로는 크게 관심받지 못했다. 국내외로 전달될 통로와 동력도 부족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계 작가들은 할리우드나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러브콜을 받으며, ‘K-스토리텔러’로 급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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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면서 한국인이 아닌 이들은 K면서 K가 아닌, 또 다른 ‘한국’의 이미지와 관념을 제공한다. 글로벌 문화 지형 속에서 ‘K-스토리’를 확장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주목해야 할 한국계 소설가들의 작품을 살펴본다.

◇이민진 ‘파친코’, 글로벌 콘텐츠가 된 한국의 역사 = “역사는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소설 ‘파친코’는 이렇게 시작한다. 어딘지 시큰해지는 강렬한 첫 문장. 엄청난 비극과 시련이 왔지만 어떻게든 살아낼 거야. 소설은 그렇게 선언하는 듯하다. 애플TV+가 제작한 동명 드라마의 오프닝 장면은 이 선언을 형상화한 게 아닐까. 일제강점기와 고단한 재일교포의 삶을 사는 등장 인물들이 춤을 춘다. 더 그래스 루츠의 ‘Let’s Live for Today(오늘을 위해 살자)’에 맞춰.

미국 이민 1.5세인 이민진 작가는 ‘파친코’ 구상부터 취재, 집필까지 꼬박 26년이 걸렸다.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뉴욕타임스(NYT)와 BBC,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추천했지만 한국에서 크게 인기가 없었다. 그러다 한국계 제작진과 윤여정, 이민호 등이 참여한 드라마가 흥행하며 현재 주요 서점 판매 1위다. 이민 가정을 소재로 한 ‘백만장자의 공짜 음식’으로 데뷔한 작가는, 차기작 ‘아메리칸 학원’을 집필 중이다. 출간되면 ‘파친코’를 포함, ‘한국 비극’ 3부작(Korean Trilogy)이 완성된다.

◇제니 한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로맨스 주인공의 피부색을 바꾸다 = 미국 1020이 주로 읽는 영 어덜트(YA)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은 대부분 백인. 그런데 넷플릭스 히트작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내사모남)의 주인공은 한국계 소녀 ‘라라 진’이다. 한국인 이민 가정에서 자란 제니 한 작가는 소수자가 아닌 ‘보통의 존재’인 한국인을 작품 속에 담으려 한다.

미국에서 사는 평범한 10대 소녀 라라 진이 주인공인 ‘내사모남’에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또래 문화이자 글로벌 현상인 K-팝 등 한국의 대중문화적 요소도 들어가 있다. 제작진으로부터 인종을 백인으로 바꾸자는 제안을 받았으나, 끝까지 아시아계를 고집했다는 후문. 그리고 이건 제대로 ‘대박’을 터뜨렸다. 3부작 시리즈는 신드롬을 일으켰고, 인기에 힘입어 마지막 편은 서울에서 촬영했다.

◇미셸 자우너 ‘H마트에서 울다’, 디아스포라적 삶의 반향 = 소설은 아니지만 영화화가 결정된 이 자전적 에세이는 한국계 이민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국 식자재를 파는 미국 내 대형 체인 마트인 ‘H마트’는 이민자들에게 한국이라는 정체성과 고유성을 상징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장소다. 한국과 미국 혼혈인 작가는 엄마와 이모를 암으로 잃은 후, H마트에서 그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자주 사 먹던 김 브랜드를 찾고, 깐 마늘을 큰 통으로 사고, 건어물 코너에서 그만 울고 만다. 이 책은 오바마의 선택을 받으며 화제가 됐는데, 저자는 뮤지션으로도 이미 유명하다. 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보컬이고, 그래미상 후보에도 올랐으며 국내 팬도 많아 두 번이나 내한 공연을 했다. 책은 지난 3월 한국에도 번역, 출간됐다.

◇매리 HK 초이 ‘이머전시 콘택트(Emergency Contact)’, K-정체성을 파고들다 = 매리 초이 작가는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는 한국계의 정체성 혼란에 관심이 많다. 작품마다 한국인 가족과 미국인 친구들 사이에서 정체성을 고민하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예컨대, ‘이머전시 콘택트’의 주인공은 꿈을 펼치고 싶지만, 반대하는 가족들 때문에 집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대학에 진학한다.

패션을 전공하고 잡지사를 다니다 전업작가의 길을 걷게 된 그녀는 데뷔작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두 번째 작품 ‘퍼머넌트 레코드(Permanent record)’는 영화화가 결정됐다. 최근에는 뉴욕에 사는 자매를 등장시킨 ‘요크(yolk)’를 출간하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프랜시스 차 ‘내가 너의 얼굴을 한다면(If I had your face)’, 지금, 여기의 K를 보는 새로운 눈 = 10대 시절을 한국에서 보내 교육 시스템이나 대중문화에 익숙한 프랜시스 차는 CNN 한국지부 기자를 하다 지금은 뉴욕에서 글을 쓴다.

아직 한국어판이 나오지 않은 데뷔작 ‘내가 너의 얼굴을 한다면’은 2020년 타임지 100권 리스트에 오르고, NYT·가디언 등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의 소설은 한국계 미국인의 시선으로 현대 한국의 모습을 담았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성형수술과 룸살롱, 일진 등 지금 한국의 민낯까지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 소설 역시 애플 TV+에서 드라마로 제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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