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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Premium Life 게재 일자 : 2022년 04월 20일(水)
1.8㎜ 가장 얇은 시계 손목에 ‘걸작’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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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불가리가 출시한 ‘옥토 피니시모 울트라’. 두께 1.8㎜로 세계에서 가장 얇은 기계식 시계 기록을 또다시 경신했다. 불가리는 하이 주얼러와 워치 메이커 양쪽 모두에서 정상급 자리를 지키는 몇 안 되는 하우스로 꼽힌다. 아래는 티타늄 합금 등으로 세공한 초정밀 부품들. 불가리 제공

■ Premium Life
- 불가리 ‘옥토 컬렉션’ 10년… 세계 최정상 반열에

시계 디자인 거장 제랄드 젠타 마지막 작품 ‘옥토’
팔각형-원형 조화로운 디자인에 고급 기술까지 과시

티타늄·텅스텐 소재 ‘옥토 피니시모 울트라’ 역사 새로 써
자체기술로 인력 3년간 쏟아부어 단 10개만 생산
작년엔 ‘퍼페추얼 캘린더’ 앞세워 시계업계 오스카상


‘우리는 왜 명품 시계를 사는가.’

명품 시계는 언제까지 살아남을까. 1970년대 배터리를 사용하는 ‘쿼츠(Quartz·전자식) 시계’가 등장하면서 비싸고 관리가 어렵고 심지어 더 부정확했던 기계식 시계의 종말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였다. 하지만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들은 쿼츠 시계와 시장을 분리, 새로운 가치와 스토리를 만들어내며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위기는 또 있었다. 2020년 애플워치가 스위스 시계 판매량 전체를 뛰어넘었을 때 이번에야말로 명품 시계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편의성과 각종 기술은 물론 디자인 철학과 고객 경험에서마저 럭셔리 시계 브랜드들이 애플을 확실하게 압도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계는 또다시 살아남았다. 그저 살아남기만 한 것이 아니다.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와 럭셔리 시계, 심지어 중저가 시계 브랜드까지 가리지 않고 신제품과 함께 이슈가 쏟아져 나왔다. 인기 모델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매장 앞에 줄을 섰고, 되팔기만 하면 원래 가격의 2배 가까이 웃돈이 붙어 거래되는 일도 더 이상 낯선 광경이 아니게 됐다. 오늘날 여전히 명품 시계는 건재하다. 오히려 숱한 도전을 계기로 브랜드와 제품에 담긴 헤리티지를 재정립하며 더욱 강해졌다.

전 세계적으로 롤렉스에 대한 품귀현상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보다 위 단계 하이엔드 브랜드 시장에서도 돈이 있어도 매장에서 구매할 수 없는 시계가 즐비하다. 시계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파텍필립의 ‘노틸러스’와 오데마피게의 ‘로열 오크’는 현재 구매 예약조차 받지 않으며 대부분 모델의 리셀가가 1억 원을 돌파했을 만큼 절정의 인기를 자랑한다.

스포츠 시계의 정수로 꼽히는 이들 모델의 공통점은 모두 전설적인 디자이너 제랄드 젠타(Gerald genta·1931∼2011)의 손을 거쳤다는 것이다. 젠타가 디자인에 관여했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제품의 가격이 크게 뛰는 것은 물론 그의 디자인을 오마주한 이른바 ‘젠타류’ 시계들이 아직까지 현대 시계 산업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 숱한 하이엔드 브랜드들을 위기의 문턱에서 구해낸 뒤 현대 시계 디자인의 역사까지 새로 쓰고 2011년 세상을 떠난 젠타의 마지막 작품으로 꼽히는 모델 불가리 옥토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흔히 고가 시계로 갈수록 시계 전문 브랜드와 패션 브랜드 시계 사이의 격차가 극명하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시계의 무브먼트와 마감, 역사성 등 모든 분야에서 패션 브랜드는 시계만 전문으로 제작하는 브랜드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단, 예외로 인정받는 브랜드들이 있다. 불가리와 까르띠에, 피아제, 쇼파드 등이 보석 세공 기술과 워치 메이킹 기술 양쪽에서 모두 세계적 수준에 도달한 극소수 예외사례로 인정받는다. 단순히 겉만 번지르르하게 시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이얼의 마감, 무브먼트의 정밀성과 예술성, 역사성까지 어지간한 럭셔리 시계 브랜드를 압도할 수 있어야 한다. 불가리가 시계를 대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이미 1920년대부터 세르펜티 컬렉션을 중심으로 예술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하이주얼리 시계 제품을 만들어왔던 불가리는 2010년 젠타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세웠던 브랜드 제랄드 젠타S.A를 완전히 인수하며 하이 컴플리케이션 기술과 디자인 유산까지 그대로 이어받았다.

역사성과 예술성은 물론, 시계의 마감과 기술력까지 종합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예고한 불가리는 마침내 2012년 옥토 컬렉션을 리뉴얼 론칭한다. 팔각형과 원형이 혼재된 특유의 미니멀하면서도 기하학적인 디자인은 젠타의 철학과 불가리의 비전이 완벽하게 결합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젠타 디자인 특유의 8각형 구조는 이탈리아 하우스 불가리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고대 로마 건축물의 기하학적 모티브와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들어맞는다.

▲  10펜스 동전(1.85㎜)보다 얇은 시계를 만들어낸 불가리의 워치 메이킹 모습.

무작정 젠타의 이름만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2011년 ‘명품 제국’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에 합류한 불가리는 그룹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인하우스 무브먼트 등 시계 제작 전반에 관한 모든 기반을 흡수했다. 불가리는 옥토 라인 출시를 계기로 2010년대 시계 업계의 최고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그 결과 전체 케이스 두께가 5㎜도 되지 않는 얇은 시계에서부터 시계 기술의 극치라 할 수 있는 투르비옹, 날짜, 요일, 월, 윤년 표시를 복합한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 등 기존 하이엔드, 럭셔리 시계 전문 브랜드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고급 기술들을 세계 최정상급으로 매년 쏟아내며 시계 업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올해 불가리는 다시 한 번 자사의 워치 메이킹 능력을 과시하며 하이 주얼러와 워치 메이커 양쪽 모두에서 세계 정상급 자리를 지키겠다는 도발적인 메시지를 분명하게 던졌다. 세계에서 가장 얇은 기계식 시계 ‘옥토 피니시모 울트라(Octo Finissimo Ultra)’를 선보인 것이다. 두께 1.8㎜로 10펜스 동전(1.85㎜)보다도 얇은 시계가 탄생했다. 단 10개만 생산된 이 시계의 개당 가격은 40만 유로(약 5억3600만 원). 티타늄 합금과 텅스텐 탄화물로 제작됐으며 불가리는 이 얇은 시계의 개발을 위해 자체 기술과 시계 공방 인력을 꼬박 3년간 쏟아부었다.

이로써 불가리는 피아제를 제치고 가장 얇은 시계를 만드는 워치 메이커 자리를 탈환했다. 옥토 피니시모 컬렉션이 관련 부문에서 달성한 8번째 세계 신기록이기도 하다. 이처럼 오트 올로제리(Haute Horlogerie·최고급 수공예 시계 제작) 부문에서마저 걸작을 쏟아내면서 오늘날 불가리는 하이엔드 주얼리의 명성을 시계 부문에서까지 가져간 대표 브랜드로 꼽힌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옥토 컬렉션은 스위스 워치 메이킹 노하우와 이탈리아 하우스의 디자인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조화시키며 시계 애호가와 소비자 모두를 만족시켰다. 지난해 ‘옥토 피니시모 퍼페추얼 캘린더’를 앞세워 시계 업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릴 정도로 업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2021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GPHG)’ 최고상 에귀유 도르까지 거머쥔 불가리는 이제 그들의 야망을 더는 숨기지 않는다.

최근 국내 예비 신혼부부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불가리의 기념비적 컬렉션 ‘비제로원’ 밴드를 손가락에 끼우고, 옥토 컬렉션을 손목에 올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불가리는 이달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월드타워점 1층에 팝업스토어를 열고 올해 신제품을 비롯해 주얼리 50여 종·시계 10여 종 등 80여 종의 제품을 선보였다.

이희권 기자 leeheke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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