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 연상 클라라를 43년간 짝사랑… 비운의 낭만주의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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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남자의 클래식 - 브람스

‘스승’슈만 조울증·이명 고통
클라라 연주여행땐 아이 돌봐
편지 주고받으며 집안일 도와

피아노 3중주 만들어 직접연주
그녀 아들 출산 축복 변주곡도
연민·죄책감 속 평생 독신으로

1853년, 막 20세가 된 신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브람스(1833∼1897)는 낭만주의 음악의 대가 슈만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브람스는 슈만과 그의 부인이자 당시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앞에서 자신의 작품과 연주를 선보였고, 슈만 부부는 그의 연주와 작품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브람스의 비범한 재능에 감탄한 슈만은 음악 평론지인 ‘음악 신보(Neue Zeitschrift fur Musik)’에 ‘새로운 길(Neue Bahn)’이라는 제목의 평론을 기고한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이 시대를 최고의 이상적인 방법으로 표현할 사람이 드디어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요하네스 브람스다.”

이 격양된 평론의 의미는 마침내 베토벤의 뒤를 이어 독일 음악의 명맥을 이어 나갈 후계자가 나타났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슈만의 격찬과 함께 브람스는 순식간에 유명인사가 됐고, 슈만은 브람스의 악보 출판을 돕는 등 브람스의 성공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슈만의 지병인 조울증이 더 심해져 갔다. 슈만은 하루에 22시간이나 작곡에 매달릴 정도로 열정적인 창작 활동을 하다가도 병세가 악화하면 한 음이 길게 들리는 이명 때문에 괴로워했다.

당시 34세의 클라라는 임신 중이었고 이미 여섯 명의 아이가 있었다. 브람스는 한걸음에 달려와 슈만과 클라라를 돌보기 시작한다. 클라라가 연주 여행을 위해 집을 떠나면 브람스가 아이들을 대신 돌보고, 떨어져 있을 때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집안일을 상의하고 도와줬다. 브람스는 클라라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피아노 3중주(Piano Trio No.1 In B Major Op.8)’를 만들어 직접 연주해 주기도 했고, 클라라가 막내아들을 출산했을 때는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Variations on a Theme by Robert Schumann, Op.9)’을 써서 축복해 줬다. 브람스는 편지를 통해 직설적인 감정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사랑하는 클라라, 내가 당신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당신을 위해 헌신하고 싶은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중략) … 나는 당신을 ‘나의 클라라’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사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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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 7월, 이 끔찍한 사랑으로부터 브람스를 구원해 줄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슈만의 죽음이다. 그러나 브람스는 오히려 클라라로부터 멀리 떠나고 만다. 당시 브람스의 나이 23세, 그가 사랑했던 클라라의 나이 37세. 14세 차이는 브람스의 열정적인 사랑 앞에서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브람스는 감성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사랑, 존경, 연민, 죄책감. 브람스가 스승인 슈만과 그의 부인이자 연인인 클라라에게 가져야 했을 복잡한 심경을 헤아리자면 가슴이 뻐근해 온다. 이 끔찍한 이성주의자는 그렇게 복잡한 감정과 함께 사랑 또한 가슴에 묻었다.

브람스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클라라가 죽기까지 43년간이나 자신이 선택한 방법으로 그녀를 사랑했다. 1896년 브람스는 클라라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게 된다. 그는 곧장 40시간을 달려 그녀에게 도착했지만 77세의 클라라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브람스의 건강도 급속도로 쇠약해졌고 이듬해인 1897년 6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 오늘의 추천곡 - 피아노 소곡中 제2번 간주곡

브람스가 60세가 되던 해 완성한 6개의 피아노 소품곡으로 클라라 슈만에게 헌정된 작품이다. 클라라를 향한 연정이 담긴 작품으로, 브람스가 작곡 당시 완성된 것부터 순서대로 클라라에게 서신으로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2번 간주곡(Intermezzo, A Major Op.118, No.2)이 가장 사랑받고 있는데, 브람스 말년 음악이 보여주는 원숙미가 돋보이는 5분 남짓의 짧은 소품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