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으로 ‘인권완박’ 우려… 사법통제 없애 ‘괴물 경찰국가’ 만들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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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규의 Deep Read - 여야의 검수완박 야합

한국, 대륙법계의 전통 형사사법체계가 근간… 대원칙은 경찰·검찰·법원의 ‘다중적 사법 통제’ 따른 인권침해 방지
검수완박 시행 유예 합의는 국민 기만… 범죄의 실체적 진실 발견에 도움 안되고 시민들 ‘고통의 시간’만 연장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추진을 둘러싼 논란이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와 여야 정치권의 합의로 일단 봉합됐지만, 법조계는 물론 시민사회에서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범죄 수사 및 형사사법체계의 대원칙인 ‘사법적 통제’가 배제됨으로써 광범위한 인권 침해가 걱정된다는 목소리, 한국이 ‘경찰국가’라는 앙시앵레짐으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는 형국이다. 비록 유예기간을 둬 법률 시행이 다소 지연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검수완박이며 이는 ‘인권완박’(인권 완전 박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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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소송의 법정신

1789년 프랑스대혁명을 계기로 주권은 국왕으로부터 시민에게로 귀속됐고 사법 권력도 시민의 몫이 됐다. 변화에 맞추어 국왕의 대관(代官)이었던 검사는 사법경찰을 지휘하고 인권을 옹호하는 사회와 공익의 대변자로서 자리 잡고 이로써 근대적인 검찰 제도의 맹아가 잉태됐다. 당시 검사는 ‘사회를 대표해 법원이 법을 제대로 선언하는지 감시하고 그 판결을 집행하는 특별사법관’으로 정의됐다.

이후 1808년 ‘프랑스 형사소송법’(Code d’instruction criminelle)에서 검사는 수사와 기소의 권한을, 수사판사는 예심수사를, 법원은 재판을 각각 담당하게 했다. 특히 수사권을 사법관의 권한으로 하고 경찰을 사법적 통제 아래 뒀다. 또 형사사법에서 ‘전문사법관의 원칙’(Principe des professionnels)을 채택해 배심재판을 제외하고는 전문사법관만 공판에 관여하도록 했다.

수사판사는 우리에겐 없는 특이한 제도인데 모든 수사에 관여하게 해 수사단계에서 판사에 의한 사법적 통제를 도모했다. 19세기 이후 산업화가 고도화되면서 도시 인구가 증가하고, 처리해야 할 사건이 늘어나면서 수사판사가 모든 사건을 감당하기 어려워졌고 수사의 장기화로 인권 침해의 위험이 커졌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검사의 수사권이 확대되고 수사판사의 수사권까지도 검사가 대신하게 됐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검찰 제도는 영국을 제외한 대부분 유럽대륙 국가에 영향을 미쳤고, 우리나라도 대륙법계 전통을 이어받아 형사사법체계를 만들었다. 연원에서 나타난 검찰 제도의 목적은 형사사법에서 법치가 구현되도록 감시하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인권을 보호하도록 하는 것이다.

◇‘경찰국가’ 회귀 위험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3항과 제16조는 체포·구속·압수·수색을 위한 영장 신청권을 검사에게 주고 있다. 헌법 제89조 16항은 검찰총장의 임명에 국무회의의 심의를 요구한다. 이 규정들은 단지 기술적 고려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검사를 수사의 주체로 두고 나아가 수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민의 인권 침해를 감시하겠다는 정신이 밴 흔적이다. 수면 위에 드러난 헌법 규정 속 검사의 권한과 지위뿐만 아니라, 수면 아래 잠긴 거대한 형사사법체계의 근본원리를 안다면 정치적 타협으로 그 근간을 쉽게 바꿀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검수완박의 가장 큰 명분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가 선진사법이라는 건데 이는 잘못됐다. 대륙법계를 채택한 대부분의 유럽은 물론이고 영미법 국가인 미국과 영국 등도 검찰 수사권을 인정한다. 그것이 사법관에 의한 수사의 통제를 도모함으로써 ‘경찰국가의 위험’을 피하고 인권을 보장하자는 취지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건 경찰력은 방대한 정보력과 조직력을 갖고 있고, 그 업무영역도 형사사법뿐 아니라 대테러작전, 질서 유지, 시위 진압, 나아가 국토 경비까지 담당하는 힘 있는 기관이다. 이게 형사사법의 영역에서라도 사법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고려에서 검사를 수사의 주재자로 두게 한 이유다.

2020년 기준 우리 경찰 인력은 12만6000여 명이다. 의경과 해양경찰을 포함하면 훨씬 늘어난다. 이 중 사법경찰 인력은 약 3만 명. 검찰은 검사 인력 2000명 정도에 일반직 직원을 합해도 1만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 막강한 힘을 가진 경찰이 사법의 영역에서만큼은 검사의 수사권을 통해 통제받도록 하고, 검찰 또한 법원의 재판을 통해 통제받도록 하는 ‘다중적인 사법통제’ 장치를 만들어 놓음으로써 인권 침해를 방지하고자 한 게 근대 형사사법의 정신이다.

◇인권을 위한 사법통제

수사와 재판의 요체는 실체적인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야 시민에게 억울한 사정이 생기지 않는다. 수사·기소 분리는 실체적 진실의 발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요 형사재판에서 수사검사가 직접 공판에 관여하는 경우가 있다. 수사기록만 본 공판 검사가 공소 유지에 필요한 수준으로 사건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섣부르게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면 오판의 가능성만 높인다. 수사기록과 증거기록이 다른 것이 아니다. 경찰의 수사기록은 그대로 법정에서 증거기록이 되므로 그 둘은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함부로 수사와 기소의 분리가 정의인 것처럼 말하면 안 되는 이유다.

국가 제도를 선의에 기대어 만들 수는 없다. 경찰이든 검찰이든 아무리 선한 의지로 뭉친 조직이라 해도 여전히 사법적 통제가 필요하다. 검사뿐 아니라 대법원, 법무부, 법제처, 대한변협, 형사소송법 학계, 민변까지 나서 검수완박에 반대하는 건 사법 통제가 무너졌을 때의 폐해를 잘 알기 때문이다. 이미 검경수사권조정 이후 고소·고발 사건이 제대로 수사되지 않는다는 불만, 경찰이 충분한 법리검토 없이 함부로 불송치 결정한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경찰과 공수처의 무기력한 수사에서 보듯 검찰 수사권 박탈로 인한 수사 공백도 곳곳에서 경험 중이다.

재판도 혼란스러워진다. 검사에 의해 걸러지지 않은 방대한 수사 결과가 그대로 법정에 제출되면서 종전에 검사가 하던 역할을 제1심 재판장이 해야 한다. 재판장은 방대한 정보를 범죄구성요건에 맞춰 다시 정리하느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재판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 시민의 ‘고통의 시간’만 연장된다.

◇여야의 기만술

범죄 수사에 대한 사법적 통제로 선진사법의 틀을 회복해야 하는 마당에 여야 정치권은 검사의 수사권을 단계적으로 완전히 박탈하기로 했다. 그런 식으로 인권 보호장치를 파괴하면서 이를 검찰개혁이라는 말로 호도하는 것은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만 높일 뿐이다. 여야의 검수완박 지연 합의는 기만술이며, 인권완박의 길을 예비할 뿐이다.

변호사, 전 울산지법 부장판사


■ 세줄 요약

형사소송의 법정신 : 1808년 제정된 프랑스 형사소송법은 수사권을 검사의 권한으로 하고 경찰을 사법적 통제 아래 두게 함. 연원에서 나타난 검찰 제도의 목적은 형사사법에서 법치를 구현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것.

‘경찰국가’ 회귀 위험 : 여야의 검수완박 합의는 경찰의 범죄수사에 대한 사법통제를 배제해 인권 침해를 부를 가능성. 검수완박의 지연은 해결책이 아님. 이는 한국을 경찰국가라는 앙시앵레짐으로 회귀시킬 가능성.

인권을 위한 사법통제 : 수사·기소 분리는 실체적 진실의 발견에 도움이 되지 않고 시민의 ‘고통의 시간’만 연장할 것. 여야가 시한부 검수완박에 합의한 것은 국민 기만이며, 결국 ‘인권완박’의 길을 예비할 뿐.

■ 용어 설명

‘프랑스 형사소송법’은 근대적 형사소송법과 대륙법계 검찰 제도의 기원이 된 법. 프랑스대혁명 후인 1808년에 제정된 법안. 역사상 최초로 검사에 범죄수사에 대한 ‘사법적 통제’ 권한을 부여함.

‘사법적 통제’란 범죄 수사에 대한 형사사법 절차에 따른 통제를 말함. 경찰 수사에 대한 검찰의 지휘권 행사 등에 의한 통제, 검사 기소 이후 법원의 재판에 의한 통제 등 중층·다중적 통제를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