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의 시:선(詩:選)>진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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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 403동에도 또 옆의 405동에도/ 꼭대기에 어둠이 서 있다./ 어둠 그리고 어둠이 서 있다.// 꼭대기에서 어둠이 꼼짝 않고 있다. 왜 그렇게 멈춰 있는지 모른다./ 고장 난 어둠/ 고장 난 채 서 있는 어둠/ 고장이 무엇인지 모르는 어둠/ 어디선가 미친 듯이 웃어대는 소리가 들리고’

- 이수명 ‘4단지’(시집 ‘도시가스’)

퍽 오래전 일이다. 문학 행사 참여차 목포에 갔다. 행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고, 참여자들의 기분 좋음은 뒤풀이로 이어졌다. 옆자리 선배가 술도 깰 겸 산책이나 다녀오자, 속삭인 건 흥이 한창 오를 때쯤이었다. 우리는 함께 뒤풀이 장소 주변 골목을 쏘다녔다. 방향도 목적도 없이 어두운 골목은 어두운 골목으로 이어지고, 어디서 개가 컹컹 짖기도 하고 가로등이 깜빡이기도 하는, 조용한 밤이었다. 우뚝 멈춰 선 선배가 말했다. “그래. 이게 진짜 밤이지!” 온통 까맣고, 다들 잘 준비를 하는 밤이었다. 진짜 밤이었다. 아마 지금쯤 서울은 불야성이겠지. 흥성대면서 이곳 저곳 옮겨 다니면서 마치 낮인 양 살고 있을 것이다.

늦은 퇴근길에 그날 밤을 떠올렸다. 내가 탄 버스는 도심을 지나 주거 지역 쪽으로 향하는 고가를 건너는 중이었다. 건너편 아파트의 수많은 가구 중 몇몇은 불을 밝히고, 또 몇몇은 불을 끈 채 밤을 살고 있었다. 눈물이 다 나도록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각자의 집에서 지친 육신을 누이고 있으리라. 그럼으로써, 하루치 고단에 대한 보상으로 찾아온 온전한 휴식을 누리고 있으리라. 비록 별거 없이 누추한 모양이더라도, 그런 삶은 숭고하다.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런 삶이 저리 가득 있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괜히 그 주변이 더 어둡고 포근해 보였다. 어느덧 버스는 고가를 지나버리고, 나는 중얼거렸다. “그래. 이게 진짜 밤이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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