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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우석의 푸드로지 게재 일자 : 2022년 04월 28일(木)
육회 비벼내고 게살로도 쓱쓱… 건강하게 섞인 ‘맛의 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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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년 가까이 영업해 온 노포 울산 함양집의 육회 비빔밥. 진주식 비빔밥이다.

■ 이우석의 푸드로지 - 비빔밥

계란 고명·김가루·고추장…
오방색 들어있는 ‘한국맛’

어떤재료 넣고 비벼도 조화
새순·꽃잎도 장맛과 어울려

일제강점기에도 팔린 메뉴
울산 함양집 1920년대 개업

화려하고도 영양 균형 맞아
이젠 ‘세계인의 음식’으로


춘래불사춘, 세상이 어지럽다. 많은 부분이 엇갈린다. 기나긴 병마도, 외국의 전쟁도, 시끌시끌 잇따라 치르는 선거도 한몫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화합과 조화가 중요한 시기인 듯하다.

원래 어지러운 음식이 하나 있다. 이것저것을 섞어 놓았다고 해서 골동(骨董)을 써 골동반(骨董飯)이라 부르는 비빔밥 얘기다. 골(汨) 자를 쓰기도 한다. 비빔밥은 밥에 고기와 나물, 장을 섞어 비벼 먹는 우리 전통 음식이다. 한국인 식성의 특징인 ‘복합적인 맛’을 추구하는 대표 음식이다.

밥에 반찬을 넣고 쓱쓱 비벼 한입에 털어 넣으니 간편하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식이섬유 등 영양 균형도 맞다. 어찌 보면 샌드위치에 비견된다. 비빔밥이나 햄버거나 원리는 같은 음식이지만 건강식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비빔밥을 두고 “날것도 익힌 것도 아닌 그 중간 항(項), 자연과 문명을 서로 조합하려는 시스템 속에서 음식을 만들어 낸 것이 비빔밥”이라며 ‘맛의 교향곡’이라 예찬했다. 또 우리 문화의 힘이 바로 ‘비빔밥’ 같은 조화로움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비빔밥은 각각의 구성 요소가 한데 섞이며 새로운 맛과 시너지를 내도록 고안된 음식이다.

시의전서 등 고문헌에는 ‘부?밥’으로 등장한다. 오래전부터 먹어 온 음식이다. 여느 음식보다 역사가 길다. 선비들은 제삿밥으로, 농부는 새참으로 밥을 비볐다. 걸인은 빌어 오며 저절로 비벼진 밥을 먹었다. 급식 이전 세대들은 학교에서 양철 도시락에 여러 반찬을 넣고 흔들어 섞은 비빔밥에 대한 기억이 있다. 한국인이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왕후장상과 장삼이사가 모두 즐겼던 음식이 비빔밥이다.

제사상의 면면을 보면 바로 비빔밥 재료가 된다. 안동 헛제삿밥과 진주비빔밥은 제사상을 물린 후 만들어 먹던 음식이다. 그래서 비빔밥의 모양새를 보면 오방색(五方色)이 다 들었다. 음양오행사상에서 나온 색이 오방색이다. 청(동쪽), 적(남쪽), 백(서쪽), 흑(북쪽), 황(중앙) 등 방위를 의미한다. 계란으로 알고명을 만들고 푸성귀, 김 가루, 고기에 고추장을 더하면 오방색이 생겨난다. 덕분에 비빔밥이 보기도 좋고 맛도 있다.

▲  사진 위부터 소금에 절인 성게를 얹어 내는 성게 비빔밥, 재료를 단정하게 올린 전주비빔밥, 산나물을 넣은 산채 비빔밥.
김치, 불고기와 함께 비빔밥은 ‘한류 음식’이다. 화려한 데다 채소를 많이 쓰니 외국에서도 인기가 높다. 특히 할리우드 스타, 팝 뮤지션이 자주 언급하는 바람에 덩달아 한식 대표 스타가 됐다. 1997년 내한했을 때 비빔밥에 대만족하고 이후 무한한 애정을 표시한 마이클 잭슨이 대표적이다. 어디를 가나 비빔밥이 최고였다고 말하고 다녔다. 당시 마이클 잭슨이 투숙했던 서울신라호텔에는 고추장과 고기 고명 대신 간장과 채소를 쓴 ‘마이클잭슨 비빔밥’이 메뉴로 등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귀네스 팰트로, 패리스 힐턴, 니컬러스 케이지 등이 비빔밥 예찬을 펼친 스타들이다.

비빔밥은 사실 형식이라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넣는 재료에 따라 ‘○○비빔밥’ 식으로 메뉴 이름이 달라진다. 산채 비빔밥, 콩나물 비빔밥, 육회 비빔밥, 꼬막 비빔밥, 게알 비빔밥, 게장 비빔밥, 젓갈 비빔밥, 낙지 비빔밥, 주꾸미 비빔밥 등이 있다. 용기(그릇)가 이름으로 붙는 경우도 있다. 양푼 비빔밥, 돌솥 비빔밥, 냄비 비빔밥, 항아리 비빔밥 등은 어디에다 밥을 담아내느냐에 따라 붙은 이름이다.

비빔밥으로 유명한 지역명이 붙기도 한다. 가장 유명한 전주비빔밥을 필두로, 이에 필적할 만한 명성을 간직한 진주비빔밥, 전북 익산의 황등비빔밥, 기름에 볶은 밥을 올리는 북한 해주비빔밥 등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통영비빔밥, 함평비빔밥, 평양비빔밥, 거제 멍게비빔밥 등이 맛있다고 알려져 있다.

각종 반찬에 밥을 비비는 것이 비빔밥의 주된 특성이다. 골고루 비비기 위해 소스로 고추장을 쓰거나 간장, 강된장, 양념간장을 쓰기도 한다. 짭조름한 강된장은 밥을 비벼 먹을 때 최고의 소스 구실을 한다. 특히 우렁이를 넣고 자작하게 끊인 된장찌개는 아예 비빔밥용이다. 참기름은 있어도 없어도 되지만, 보통은 넣어야 더욱 맛이 난다. 젓가락을 쓰면 밥알이 뭉개지지 않고 잘 섞인다.

고추장 불고기나 낙지볶음, 주꾸미 볶음, 오징어 볶음 등 양념이 강한 메뉴의 경우 아예 밥을 비벼 먹으라고 김 가루와 콩나물, 상추 등이 든 비빔그릇을 따로 주거나 팔기도 한다. 밥은 주로 쌀밥이지만 고슬고슬한 보리밥이 더 잘 비벼진다.

▲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비빔밥은 외식 메뉴로도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일제강점기에도 팔았다고 한다. 울산에 위치한 함양집은 1920년대에 개업했다. 당시에도 충분히 값나가는 음식이었다. 쌀밥이 기본이며 고기도 들었으니 당연하다. 1937년 종로 화신백화점 옥상 화신식당에서 25전에 팔았다. 당시 경성의 최고 자랑거리는 화신백화점으로 구경 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에 올라가 비빔밥을 먹고 오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후에도 큰 한식당에선 어김없이 비빔밥을 팔았다.

요즘 장맛도 들고 나물도 좋을 때다. 새순이나 꽃을 넣어도 딱이다. 무엇보다 각각 특성보다는 조화와 화합으로 이뤄 낸 맛이 비빔밥의 매력이니, 세상도 잘 비벼 내기만 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으리라.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함양집 = 100여 년 가까이 영업해 온 노포다. 위치는 울산이요, 상호는 함양인데, 비빔밥은 진주식이다. 당연히 육회 비빔밥이다. 일일이 채를 썰고 알고명을 부쳐 올린 손맛 깃든 육회 비빔밥을 쓱쓱 비벼 배춧국과 함께 낸다. 고기가 잔뜩 든 파전도, 메밀묵도 별미다. 울산 남구 중앙로 208번길 12. 전통비빔밥 1만2000원.

◇성미당 = 전주를 대표하는 ‘비빔밥 명가’로 손꼽히는 집. 사골육수에 지은 밥을 고추장에 잘 비벼 격식을 차려 올렸다. 오방색 고명과 함께 남원 명물인 황포묵과 반숙 노른자로 마무리했다. 나물 등 푸성귀의 종류가 아주 다양하고 하나하나 고급스럽다. 전주 완산구 전라감영5길 19-9. 전주전통육회비빔밥 1만5000원.

◇천황식당 = 1915년 개업한 진주비빔밥의 명가다. 때깔 좋고 부드러운 육회를 수북이 올려 준다. 그 옆을 아삭한 배추다짐과 무생채가 보좌한다. 살짝 데쳐 간간하게 양념했다. 여기다 직접 만든 약고추장을 올려 내면 끝이다. 색이 좋아 비빌수록 군침이 돌고 실제로도 섞이며 맛이 든다. 진주 촉석로207번길 3. 육회비빔밥 1만 원.

◇돌솥밥집 = ‘국제시장 비빔밥집’으로 유명한 곳, 김치찌개와 순두부찌개를 주문하면 돌솥에 지은 밥이 따라 나온다. 계란프라이와 고추장, 나물을 담은 그릇에 비벼 먹으라는 뜻이다. 장은 살짝 넣고 찌개에 비비는 편이 낫다. 미더덕과 꽃게로 끓인 된장찌개가 압권. 짭짤한 찌개 국물은 비빔밥과 잘 어울린다. 마무리는 숭늉을 넣은 돌솥 누룽지다. 부산 중구 광복로37번길 7-1. 7000원.

◇마산집 = 양은 냄비에 내오니 허름한 가정식 비빔밥 같지만 선홍색 육회를 듬뿍 넣었다. 알고 보니 화려한 맛. 무생채와 배추를 다져 곁들였다. 고기가 있지만 계란프라이도 빼놓을 수 없다. 살짝 달짝지근하지만 깊은 맛을 내는 장을 한가득 넣고 비벼 놓으면 색이 아주 곱다. 매콤하게 먹어도 시원한 된장 국물이 있으니 상관없다. 창원시 성산구 상남로 67 경창종합상가. 육회비빔밥 7000원.

◇한일식당 = “육회라면 전주보다 낫지.” 익산 사람들의 자부심이다. 석재로 유명한 황등면에서 자생적으로 발달한 육회 비빔밥이다. 오랜 세월 영업해 온 여러 비빔밥집이 있다. 밥 위에 살짝 간을 한 육회를 듬뿍 올리고 알고명과 다양한 채소를 얹은 밥이 나온다. 미리 비벼 놓은 ‘비빈밥’이다. 존존한 육회가 생명이다. 시원한 맛의 맑은 선짓국을 준다. 익산시 황등면 황등로 106. 1만 원. 특 1만2000원.

◇부일식당 = 한 상 그득 깔리는 산채정식인데 한 사람당 하나씩 비빔그릇이 놓여 있다. 안에는 참기름과 고추장이 들었다. 산채를 올리고 된장을 떠 넣어 비벼 먹으면 담백하고 향긋한 나물이 어느새 밥 전체를 지배한다. 각각의 특별한 향을 내는 산나물이 어쩌면 밥과도 이리 잘 어우러질까. 대자연의 하모니가 한 사발 안에 모두 들었다. 평창군 진부면 진부중앙로 98. 산채정식 1만2000원.

◇장터본가 = 꽃게를 넣고 비벼 먹다니 이런 호사가 또 있나. 게다가 꽃게장 살을 미리 빼놓아 사발에 담긴 밥에 쓱쓱 비벼 먹으면 끝이다. 비빔밥의 혁명이다. 달짝지근한 게살에는 칼칼한 양념이 들어 별다른 푸성귀 없이 콩나물과 김 가루 약간으로도 맛이 살았다. 도둑도 이런 밥도둑이 따로 없다. 목포시 영산로40번길 23. 2만4000원(2인 기준).

◇유창반점 = “아차! 내 정신 좀 봐, 짬뽕을 너무 졸였네.” 해서 탄생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향 가득한 해물 볶음에서 ‘짬뽕의 향기’가 난다. 중화비빔밥, 중국에는 없는 이 요리는 매운맛 즐기는 대구 사람들이 만들었다. 이 집이 원조집이라 불린다. 맵싸한 양념에 밥을 비벼 먹으면 화끈하니 입맛이 살아난다. 대구 중구 명륜로 20. 중화비빔밥 8000원.

◇제일반점 = 모든 게 셀프다. 갖다 먹고 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불친절한 것은 아니다. 부부 둘이 주방을 봐서 그렇다. 아무튼 맛있어서 좋다. 짬뽕을 밥에 비벼 먹는다. 어색할 만도 하지만 짬뽕이 우리가 아는 국물 짬뽕이 아니라 잘 볶은 해물 볶음 형태다. 비비면 밥과 어우러져 더욱 맛있어진다. 울진군 죽변면 죽변중앙로 168-13. 8000원.

◇선영이네 = 연포탕과 낙지철판 등을 파는 낙지 전문 노포인데 점심에는 매콤한 양념에 비벼 먹는 낙지 비빔밥이 인기다. 칼칼한 낙지볶음의 존재감이야 워낙 세니 콩나물과 김 가루만 넣어도 조화롭다. 땀 뻘뻘 흘리며 한 그릇 뚝딱하기 좋도록 시원한 동치미와 조개 국물이 나온다. 서울 중구 을지로3길 30.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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