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알 지식·발칙한 상상으로 버무려낸 ‘SF세계 안내서’

■ 채널을 돌리다가 | 곽재식 지음 | 열린책들

과학소설(SF) 작가이자 대학교수로 방송과 유튜브를 넘나들며 과학과 영화에 대해 ‘썰을 푸는’ 곽재식 작가의 에세이. 타고난 입담의 소유자인 저자가 자신이 애정하는 SF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방법에 대해 쉴 새 없이 이야기한다. 그 덕분에 책은 ‘친근한’ SF 여행 안내서로 다가온다.

저자는 자신이 갖고 있는 기억과 지식을 총동원해 보통의 눈높이로 ‘채널을 돌리듯이’ 수다를 떤다. SF 영화에 드러나는 반전의 유형을 네 가지로 제시한 부분은 흥미롭다. 첫 번째는 ‘붉은 청어’ 수법. 관객은 흉측하게 생긴 외계인이 악당이라 생각하지만, 진짜 악당은 순진한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두 번째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는 ‘미다스의 황금’ 신화처럼 새로운 기술이 오히려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스토리텔링이다. 그리고 세 번째 ‘이게 다 꿈이었다’로 현실에서 상상으로 급격히 전환하거나, 네 번째 ‘기본 합의 뒤집기’처럼 영화 속 산과 들이 실은 외계인의 거대한 우주선이라는 식으로 반전을 꾀해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한다.

‘SF 영화상 가장 큰 괴물’이나 ‘한국 최초의 SF 영화’ 등 저자의 깨알 지식을 발견하는 것도 책의 묘미다. 꿈과 현실이 뒤섞인 영화 ‘토탈 리콜’을 신라 시대 원효 대사가 본다면 줄거리를 노래로 만들어 불교 철학을 소개했을 것이라거나 ‘인디펜던스 데이’를 언급하며 지구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외계인이 구태여 지구를 침공하진 않을 것이란 발칙한 상상도 재미를 더한다. 저자는 반 년간 단편소설 4편을 써내며 ‘곽재식 속도’란 말을 회자시켰다. 창작 비결은 뭘까. 그는 ‘백 투 더 퓨처3’ 원리를 든다.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영화인 ‘백 투 더 퓨처2’에 미치진 못하지만 볼 만한 영화인 ‘백 투 더 퓨처3’가 있듯이 걸작보다는 가능한 수준을 목표로 애쓰다 보면 성과가 나온다는 얘기다. 책에선 ‘외계에서 온 우뢰매’와 ‘그래비티’ ‘화성인 지구 정복’과 ‘듄’ 등 국적과 시대, B급 영화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나란히 동일선에서 작가의 수다 반찬이 된다. 저자는 어릴 적 봤던 우주 괴물과 싸우는 활극도, 철학적 고민이 넘치는 드라마도 모두 SF라고 말한다. 책은 편견 없이 개방적이다. 392쪽, 1만6000원.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